[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이렇게 세밀하게 기록하고, 또 기록한 나라가 있을까 싶을 만큼 조선은 통치 행위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왕의 언행을 기록으로 남긴 나라는 조선 외에도 많다. 중국과 베트남, 일본에도 실록이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수록내용의 다양성과 방대함, 공정성 측면에서 가히 독보적이다. 이 책은 이런 실록의 이모저모를 청소년과 성인도 알기 쉽게, 풍부한 자료사진과 함께 풀어냈다. 사계절이 펴내는 ‘고전맛집’ 시리즈는 ‘어른이 되기 전 꼭 읽어야 할 고전을 쉽고 맛있게 엮는다’는 취지로 기획되었고, 조선왕조실록편은 그중 두 번째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록되고 있었기에 조선의 왕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역사의 책임을 무겁게 의식해야 했다. 내가 한 일을 후대의 누구도 알 수 없다면,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살다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들이, 행동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수백 년 후에도 전례로 쓰이고, 영원히 역사 속에 박제된다면? 그때는 그 누구도 행동을 가벼이 할 수 없었다. 이런 기록문화는 조선왕조를 5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지탱한 ‘역사의 소금’이자, 지배권력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 역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 앞바다에는 해녀가 많다.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심심치 않게 테왁이 보인다. 테왁은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보관하거나 몸을 기대어 쉬는, 그물을 매달아 놓은 동그란 튜브다. 주황색 테왁이 동동 떠 있으면, 그 밑에서 해녀가 열심히 물질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험하지는 않을까? 물속에 잠수장비도 없이 들어가 전복이며 소라를 잡는다는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바닷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숨에 기대어 머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다. 실제로 가끔 해녀들이 작업 중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위험천만한 바닷속에서, 자신의 숨이 허락하는 만큼만 머물다 가는 해녀의 모습은 전 세계를 매혹시켰다. 글쓴이 고희영과 그린이 에바 알머슨도 그중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 글과 그림을 그리고, 통역사로 유명한 안현모가 이를 영문으로 번역해 함께 실은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가 읽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삶의 지혜를 선사한다. 제주가 고향인 지은이 고희영은 어릴 때부터 해녀들을 보며 자랐다. 그녀는 항상 궁금했다. 해녀들은 해가 뜨고 해가 지듯이 바다로 나가고 바다에서 돌아오는데, 그들은 바다가 두렵지 않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에 살다 보면 수시로 제주어가 들린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아니면 얼핏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말들. 제주어로 빠르게 하는 대화는 흡사 외국어나 다름없다. 분명히 한국어는 맞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한번 제주어에 눈을 뜨고 나면 제주어로 된 가게 이름이나 지명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제주어로 하는 대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좀 어렵지만, 제주어를 조금만 알아도 버스정류장을 지나칠 때, 올레길 푯말을 볼 때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저자 현택훈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돌하르방 공장 한편에 버려져 있던 팔 하나 없는 돌하르방, 그 돌하르방을 품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누군가 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잊히기 쉬운 어떤 것, 시인은 그것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제주어도 시인에겐 그런 대상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제주어는 위기다.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했다. 제주어를 쓸 줄 아는 몇 세대가 사라지고 나면, 제주어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된다. 그때는 제주어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지금도 수능이 다가올 무렵이면 온 나라가 들썩들썩하지만, 조선에서도 과거시험은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는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처럼 진로가 다양하지 않던 시대, 과거시험은 벼슬에 나아가 뜻을 펼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자 평생을 바쳐 이뤄내야만 하는 ‘인생과업’이었다. 때로는 일찍 과거에 급제, 순탄하게 벼슬길에 나아가기도 했으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지금의 ‘고시낭인’ 못지않게 ‘과거폐인’도 많았고, 평생을 적성에 맞지 않는 과거시험에 매달리느라 고생하는 이들도 많았다. 다른 길을 찾고 싶어도, 양반은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수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을 삼킨 채 936년간 치러졌던 과거시험. 이 책 《과거제도 조선을 들썩이다》는 그런 과거시험의 모든 것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친절히 풀어낸 책이다. 책에서 풀어내는 과거시험의 이모저모를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1.한양에 사는 것이 과거 급제에 유리했다? 그렇다. 과거시험은 확실히 한양, 그중에서도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에게 여러모로 유리했다. 과거
[우리문화신문= 우지원 기자] ‘말 키우는 오랑캐’, 목호(牧胡)! 목호는 고려 말, 제주도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몽골인이다. 그들은 몽골이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직속령으로 편입한 이래 제주에서 말을 비롯한 각종 가축을 키우며 100여 년 동안 살아가고 있었다.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든 몽골은 제주가 필요했다. 일본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이자 말의 산지로서 제주의 가치는 상당했다. 몽골은 제주를 원이 경영하는 14개 목장 중 하나로 삼고, 약 1,500명의 군사를 주둔시키며 말을 길러냈다. ‘목호’라 불리는 이 군사들은 처음에는 낯선 존재였지만, 점차 제주 토착민과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깊숙이 섞여들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100여 년간 살을 맞대고 살며 이들은 더는 오랑캐가 아닌, 이웃집 아들이자, 남편이자, 가장인 그런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1374년, 최영 장군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깡그리 몰살당한다. 도대체 그 섬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단지 ‘제주의 목호가 일으킨 반란을 최영 장군이 진압한 사건’으로 갈무리하기에는 너무나 응어리진 그해 여름의 역사를, 작가 정용연이 《목호의 난, 1374 제주》이란 한 권의 만화로 숨가쁘게 풀어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 줌의 자살 약을 품에 안고 살아야 했던 혹독한 세월을 임은 어찌 참아내셨단 말입니까? 시인의 안타까운 절규가 귓전을 울린다. 나라 잃은 35년은 실로 혹독한 세월이었다. 독립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임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시간이었다. 갓난아기가 어엿한 성인이 될 만큼의 긴 시간 동안 일제는 흥성했고 독립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임들은 계속 싸웠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의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신념, 그것이 용기의 원천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윤옥 교수가 2019년 펴낸 《여성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는 이런 임들을 위한 헌사다. 이들은 가족을 따라, 혹은 스스로 뜻을 세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하기도 했으며 경찰에 의해 피살되기도, 독살되기도,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의 얼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수많은 ‘임’들 덕분이었다. 이들의 분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주 간략한 서사밖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분투에 비해, 우리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현상금 100만 원. 일제가 약산 김원봉을 잡기 위해 내건 현상금 액수다. 백범 김구에게 걸린 현상금 60만 원의 약 두 배, 오늘날의 값어치로 자그마치 36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일제가 김원봉을 잡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그러나, 약산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현상금 360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흔치 않다. 끊임없이 위험한 일을 도모해야 하고, 밀정은 판치는 가운데, 한번 잘못 발을 디디면 그걸로 끝인 살얼음판. 그는 그 아슬아슬한 빙판 위를 걸어 해방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어쩌면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이 오히려 약산의 영화로운 한때였을지도 모르겠다. 해방 정국에서 그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고,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친일 경찰로 악명 높은 노덕술에게 끌려가 일제 치하에서도 당하지 않았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약산의 삶이 《타짜》, 《식객》 등 만화로 유명한 허영만 화백의 펜 끝에서 생생히 되살아났다. 약산의 일대기를 그린 이 만화, 《독립혁명가 김원봉(가디언)》은 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아 진행된 성남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의식의 모범’이라는 뜻의 《의궤》. 이 《의궤》는 영상도, 사진도 없던 조선에서 많은 복잡한 의식과 행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러졌던 비결이었다. 고려에는 없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 한 행사가 끝나면 그 행사의 모든 것을 세세히 정리해 두는 ‘공식 행사보고서’이자, 행사를 치른 적이 없는 이들도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행사를 준비할 수 있는 ‘행사 지침서’였다. 유지현이 글을 쓰고, 이장미가 그림을 그린 《조선왕실의 보물 의궤》는 ‘의궤’라는 다소 생소한 내용을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에 맞추어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대화체로 된 친근한 설명과 함께 사진과 그림이 풍부히 실려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의궤를 쉽게 이해하는 길잡이로 손색이 없다. 이런 매력을 알아본 독자가 많았던 덕분인지, 2009년 처음 출판됐음에도 아직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책은 모두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의궤를 임금의 탄생, 임금의 활쏘기, 임금의 혼례, 임금의 제사, 임금의 건축, 임금의 행차, 임금의 죽음으로 나누어 각 주제에 해당하는 의궤를 소개한다. 의례와 예법이 발달했던 영ㆍ정조 시대에 많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학교에 다니던 학생. 농사를 짓던 농부. 절에서 참선하던 승려. 시장에서 물건을 팔던 잡화상. 독립은, 이처럼 ‘평범한’ 이들의 꿈이었다. 대한독립은, 이들의 열망이 이루어낸 거대한 기적이었다. 우리는 독립을 향해 내달렸던 평범한 이들을 쉽게 잊곤 한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우는, 혹은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접하는 위인들은 독립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비범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주연이다. 그러나 이런 빛 뒤에는,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는 모두 주인공이었을 이들이, 독립운동사에서는 그 누구도 알아보는 이 없는 초라한 단역으로 아스라이 잊힌 것이다. 양경수 작가는 이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냈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 등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만화책을 여럿 펴내며 재치 넘치는 그림체로 유명했던 그가 이번에는 ‘웃음기를 싹 빼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든 수감자카드에 기록된 이들 가운데 100인을 말끔한 모습으로 되살려냈다. 이 책 《대한독립, 평범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에서는 무대가 끝나고 각자의 배역으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 속 대결에서 패한 자는 왜곡되고, 묵살당하며, 잊혀간다. 지금이야 대권을 잡지 못하거나 정권창출에 실패했다고 해서 목숨이 위태롭진 않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임금이 되지 못하거나 권력 투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가문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살벌한 시절이었다. 그런 냉혹한 시대, 한 인간이 온 힘을 다해 투쟁에 임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역사 속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승자와 패자의 길은 나뉘는 법, 결국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을 아름답고 정의롭게 묘사했고, 약자는 곧 ‘악한 자’로 폄하되어 갖은 오명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편(최문정, 창해)》은 그런 약육강식의 서사구조에 반기를 든다. 과학교사였던 저자는 불합리한 인사 조치에 우울증을 얻어 휴직의 시간을 가졌다. 약자의 설움을 느끼던 그 시절, 평소 관심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보며 시름을 달랬다. 《조선왕조실록》 속 약자들의 모습은 ‘약하다는 이유로 악한 인간으로 몰렸던’ 자신의 모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