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북한은 미지의 세계다. 북한을 가본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북한을 잘 모른다. 북한 전반에 대해서도 그러할진대 북한 유물에 대해서는 더더욱 접할 기회가 없다. 그저 옛날 고구려 땅이었으니 고분에 그려진 벽화가 있겠고, 개성이나 평양에도 유물이 좀 있겠거니…하고 짐작하는 정도다. 북한 유물이 궁금하면서도 알아갈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이 책, 《미리 가본 북한유물박물관》이 반가울 법하다. ‘세계 유명 박물관 여행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으로 나온 이 북한 유물 입문서는 기본적으로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지만, 성인 독자도 책장을 넘겨보며 북한에 있는 유물을 빠르게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것처럼, 평양의 중심부에도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조선미술박물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책에서는 북한에 있는 문화유적과 유물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무덤벽화는 벽화관, 조선미술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은 회화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은 유물관으로 묶어 선보인다. 책에 수록된 유물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다섯 가지 유물을 골라보았다. &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57-58) 가시리 가시렵니까 버리고 가시렵니까 나는 어떻게 살라고 버리고 가시렵니까 붙잡아 둘 것이지만 싫어지면 아니올까 서러운 님 보내오니 가시는 듯이 돌아오소서 높고 고운 나라, 고려(高麗)에는 노래가 참 많았다. 이 노래들을 우리는 ‘고려가요(高麗歌謠)’라 부른다. 지은이는 고백한다. 학창시절, 높고 고운 노래(高麗歌謠)를 접하자마자, 간절함 아래 흐르는 짙은 슬픔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그때는 삶도 문장도 서툴기만 하여 공책에 노랫말을 옮겨 적고 서랍 깊숙이 넣어뒀지만, 지금도 그 영혼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 자신하긴 어렵지만, 더 미루면 영영 그 노래들을 이야기하지 못할 듯싶어 용기를 냈다고. 선유가 쓴 이 책 《가시리》는 입에서 입으로, 750년 후인 오늘까지 전해진 고려가요를 실타래 삼아 한 가인(歌人)과 그녀를 둘러싼 두 무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고려시대 악사들이 소속되어 있던 기관 팔방상(坊廂)의 으뜸 가인 아청(鴉靑)과 좌별초와 우별초를 대표하는 무사로 이름 날린 좌(左), 우(右)가 그 주인공이다. 셋은 원나라가 고려를 침공하여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 고려가 원을 피해 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에는 생각보다 책방이 꽤 많다. 물론 번화한 육지와 견줄 바는 아니지만, 책방만 찾아다니는 ‘책방올레’가 있을 만큼 섬 곳곳에 책방이 많은 편이다. 책방마다 개성도 뚜렷해 어디를 가든 그 책방만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의 지은이 장지은은 이런 제주 책방의 매력을 해녀의 물질 못지않은 ‘글질’로 건져 올린다. 스스로 소개하는 문장 역시 담백한 울림이 있다. ‘제주살이 3년 차. 걷는 것, 듣는 것, 읽는 일, 쓰는 일. 네 가지 정도면 나쁘지 않다며 오늘 사는 사람’. 간결하면서도 삶의 운치를 잘 표현해냈다. 이 책은 그녀가 혼인을 계기로 제주에 내려간 뒤, 책방 수십 곳을 직접 살피고 그 가운데 서른 곳을 엄선한 기록이다. 그녀는 새로운 책방을 들른 소식을 대학 선배인 편집자 박주연에게 보냈고, 편집자는 그녀가 보내온 기록을 책방 여행에 목마른 여행자의 마음으로 아껴 읽고 다시 읽다 마침내 책으로 펴냈다. (p.6-7) 현재 제주의 책방은 마흔 곳쯤 된다. 내가 좋아하던 몇 곳이 문을 닫았지만, 또 새로운 몇 곳이 생겨났다. 어떤 책방은 하루에 몇 사람이 찾아오고 어떤 책방은 하루종일 발 디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수덕여관! 예산 덕숭산 자락에 있는 이 여관의 이름은 어딘가 친근한 데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이름난 수덕사 대웅전, 그 대웅전을 품은 수덕사에서 운영하는 공간인 까닭이다. 우리나라 근대 예술가 세 명이 지치고 힘들 때 말없이 품을 내어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여관》 지은이 임수진은 우리나라 근대 예술가들에게 각별한 공간이었던 이 수덕여관을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내게 재능이 있기는 한 건지, 꿈을 이룰 수나 있을지 시시각각 불안한 마음이 들 때, 100년 전의 선배 예술가처럼 수덕여관에 머물며 용기를 얻어보라고 말이다. 작가의 목소리에 힘을 얻은 수덕여관이 그들을 한 명 한 명, 차례로 부른다. 나는 초가집이었습니다. 색색이 고운 덕숭산 자락이 내 터전입니다. 본래 비구니 스님들이 쓰시던 절간이었는데 수덕사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손님들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중략) 그래서일까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늘 잊을 수 없는 3명의 손님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백범일지》에 쓰였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구는 일제 순사로부터 “지주가 전답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상례”라며 고문과 함께 자백을 강요받는다. 그 말을 외려 영광으로 여긴 김구가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다짐한 데서 제목을 빌렸다." - 머리말 중에서 - 《백범일지》에 이어, 오랜만에 독립운동 관련 책으로는 전국민적 사랑과 관심을 받은 책 《뭉우리돌의 바다》이 나왔다. tvN 인기예능 <유퀴즈온더블럭>에 소개된 것도 한몫했지만, 이 책이 가진 가치와 매력을 알아본 눈이 그만큼 많았던 덕분이다. 이 책은 사진작가인 한 청년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여 동안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한 곳 한 곳, 발품을 팔며 셔터를 누른 기록이다. 작가 스스로 뭉우리돌 정신을 가지고 비범한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책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고, 후손들도 만났다. 중국,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 사계리는, 계절마다 매력이 가없다. 봄이면 봄마다 유채꽃이 피고, 여름에는 시원한 사계 앞바다가 펼쳐지고, 산방산과 송악산, 마라도와 형제섬, 가파도가 한눈에 보인다. 그래서 관광객도 많다. 철마다 많은 관광객이 오지만, 대부분은 그저 명소에서 사진만 찍거나 맛집으로 이름난 곳을 찾는 데 그친다. 이 책 《사계人, 사계In 제주 동네 여행》은 그렇게 사계리에 바람처럼 다녀간 사람이라면 모를, 사계리 사람들의 ‘진짜 사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계리에 있는 흔한 명소나 풍경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인 책이라 더욱 새롭다. 뭍에서 살다 사계리로 이주해 온 이주민, 그런 이주민들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인 원주민, 그들의 이야기가 마치 옆에서 듣는 듯, 생생하게 들려온다. 소개된 사람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산방산 유람선 대표, 사계리 책방 ‘어떤 바람’ 주인, 사계리 토끼마을 해녀, 감귤농사 짓는 강태공, 서핑스쿨을 운영하는 해남 서퍼, 25년 유채밭지기… 제주에 있을 법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을, 글쓴이의 표현에 따르면 ‘화분’으로 사는 게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만덕의 성은 김 씨니 탐라국 양가의 딸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의탁할 곳이 없어서 기생집으로 가게 되고…(중략) 번암 채상국(채제공)이 78세에 충간의 담헌에서 쓰노라.” -머릿말 중에서- 김만덕.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흔히 우리나라 역사 속 여성 인물을 이야기할 때 신사임당, 허난설헌, 유관순 등을 첫손에 꼽는 사람은 많아도, 김만덕을 떠올리는 이들은 여전히 드물다. 그러나 김만덕은 우리나라 역사 속 어떤 인물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해낸, 추사 김정희의 표현 그대로 ‘은혜의 빛으로 온 세상을 물들인’ 여인이다. 그녀는 4년 동안 이어진 혹독한 기근 가운데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곡식 오백 석을 마련했고, 죽어가는 수많은 백성을 살려냈다. 이 책 《제주의 빛 김만덕》은 그런 김만덕의 삶을 쉽게, 그러나 깊이 있게 풀어낸 책이다. 마을을 휩쓸고 간 역병으로 갑자기 고아가 된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모두가 칭송하는 ‘만덕 할머니’가 되기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녀의 삶을 오롯이 담아냈다. 그녀는 본디 기생과는 관련이 없는, 양인의 딸이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자상한 부모, 오라버니 만적, 동생 만재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바람처럼 그는 오늘도 섬의 이곳저곳을 누빈다. 무심히 긴 수평선, 바다를 찌르는 곶들, 방풍을 위해 수고로이 쌓은 끝없는 돌담, 앙상한 해송들, 마지막 남은 작은 초가집, 꽃이 다 날아가버린 황량한 억새 들판, 묵묵한 오름들, 그리고 무엇보다 구름들, 아니 바람결, 바람이 헤집어 놓은 구름장 사이로 쏟아지는 하늘빛을 그는 만난다. - 머릿말중에서 - 그렇다. 이 책은 화가 강부언이 섬 이곳저곳을 누비며 그린 그림에, 작가 현길언이 글을 덧댄 한 폭의 시화다. 강부언은 ‘삼무일기(三無日記)’라는 표제를 내걸고 그림을 그려왔다.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뜻의 ‘삼무(三無)’는 제주도 사람들의 강한 자생력과 포용력을 보여주는 제주 특유의 삶의 방식이다. 강부언은 이런 삶 속에서 느낀 그날그날의 감상을 화폭 위에 거침없이 담아냈고, 현길언은 거문고 가락에 맞춰 시를 읊듯 그에 어울리는 글을 풀어냈다. 그 가운데 특히 마음을 울리는 풍경 몇 폭을 소개해본다. # 올레길 제주 걷기 열풍을 불러왔던 ‘올레길’. 올레길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말이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아는 이는 뜻밖에 드물다. 예로부터 제주 집은 길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청자상감국화모란문과형병,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 우리나라 문화재 이름은 참 어렵다. 모두 한자로 되어있어 어지간한 어른도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밑줄 좍좍 그으며 외우기만 했지, 문화재 이름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탓이다. 그래서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한자어로 된 문화재 이름을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역사는 재미없는 암기과목’으로 억울한 낙인이 찍히는 일도 뚜렷이 줄었으리라. 사실 그 뜻을 이해하고 나면, 문화재가 걸어온 길과 지금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더는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만 해도 그렇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들었을 때 어른이라면 뜻을 대강이야 짐작은 하겠지만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 당최 알기 어렵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p.143-144) 반가사유상은 무슨 뜻일까요? 반가(半跏)는 반만(半-반 반) 책상다리(跏-책상다리할 가)를 했다는 뜻입니다. 사유(思惟)는 깊은 생각(思-생각 사, 惟-생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오늘날 대대로 높은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들이 관직을 얻고 가문의 이름을 떨치는 것은 평범하고 우매한 자제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 너희는 폐족의 자식들이다. 만약 폐족이라는 어려움을 딛고 잘 처신하여 이전보다 더 훌륭한 가문을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놀랄 만하고도 훌륭한 일일 것이다. (p.10) ‘폐족의 자식들’. 칼날 같은 이 표현이 폐부를 찌른다. 폐족(廢族)은 조상이 큰 죄를 지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족속을 말한다. 그랬다. 걸출한 당대의 학자이자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전도유망한 관료, 다산 정약용은 임금이 바뀌자 한순간에 폐족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배신과 상처도 컸다. 자신이 총애를 잃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벗들이 정적으로 돌변, 자신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머나먼 강진으로 유배되어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된 마흔 살 정약용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학문에 손을 놓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학자 정약용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천 리 밖에 있는 자신을 탓하며 자식교육에도 손을 놓았다면, 가문에 흐르는 유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