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안동에 가면, 누가 봐도 이상한 집 한 채가 있다. 분명 양반가의 기품이 서린 유서 깊은 고택이건만, 앞마당에 웬 철길이 가로지르고 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이 살았던 고성 이씨 종택 임청각(臨淸閣) 얘기다. 걸출한 독립운동가를 주인으로 둔 탓에 아흔아홉 칸 종택이었던 임청각도 갖은 수모를 겪었다. 일제에 순종하지 않는 불량한 조선인, 곧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집으로 낙인찍혀 절반가량이 헐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철길이 놓였다. 일제는 부러 먼 길을 돌아가면서까지 임청각 앞마당에 철길을 내어 독립운동의 도도한 기상을 꺾으려 했다. 그러나 그 기상이 쉬 꺾일 것이던가. 정종영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은 바로 임청각의 주인,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에 관한 책이다.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으나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안동의 존경받는 유림이었던 이상룡 선생, 그가 경술국치 이후 어떤 삶을 택했는지 따라가다 보면 상류층의 책임을 실천한 또 하나의 훌륭한 사례를 만나게 된다. 그는 본디 안동의 존경받는 유림으로,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이자 고성 이씨 종파를 이끄는 대지주였다. 1519년 임청각을 지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영석 이석영(穎石 李石營). 그 이름을 세간에 묻거든 십중팔구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할 것이다. 그만큼 이석영 선생은 역사에 기록 몇 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스러져갔다. 한때는 조선을 주름잡는 권문세족의 후계자로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재산은 조선 팔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엄청났고 벼슬은 고종을 지척에서 보좌할 만큼 높았으며, 집안 또한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삼한갑족이라 불리는 명문가였다. 그러나 망국은 오고야 말았다. 나라의 녹을 받던 이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협력할 것인가, 묵인할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묵인만 하면, 그때까지 누리던 것을 그대로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이석영과 그의 형제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다시 없을 선택을 한다. 누대에 걸쳐 쌓은 재산과 지위,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가 전체가 만주로 떠난 것이다.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 올해 6월 남산예장공원에 개관한 ‘이회영기념관’의 주인공인 우당 이회영 선생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의 형이 바로 이석영 선생이다. 그러나 이석영 선생의 존재는 아는 이도 적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전하! 종묘사직을 생각하시어 부디 옥체를 보전하소서!” 사극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사다. 지금도 대통령의 건강은 일급비밀에 해당하지만, 왕조시대 한 나라의 지존이었던 임금의 옥체(玉體)를 살피는 일은 나라의 존망과 직결되는 국가지대사였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어의(御醫)들에게 진료를 받고 뭇 백성은 구경도 하기 힘든 진귀한 탕약을 매일같이 복용해도, 그 옥체를 보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다. 즉위하기까지 받은 스트레스로 임금이 될 무렵에는 이미 몸이 망가져 있는 경우가 많았고, 임금이 되고 나서도 각종 압박과 과로에 시달리며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임금으로 사는 것’도 어렵지만, 임금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임금의 고뇌와 근심은 줄곧 병이 되어 심신을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내려진 진료와 처방은 그 자체로 진귀한 사료이자 사관들이 미처 기록하지 못한 임금들의 내밀한 감정까지 보여주는 솔직한 기록이다. 현직 한의사 이상곤이 쓴 이 책, 《왕의 한의학(사이언스북스)》은 《신동아》 등에 연재한 칼럼을 엮은 것으로, 역사학자가 아닌 이가 썼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의문당(疑問堂). 추사가 유배 시절 대정향교에 써 준 현판이다. 현판을 지그시 바라보면 학문하는 자는 매사에 의문을 가지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대학자의 엄하고도 따뜻한 격려가 느껴져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게 된다. 그러나 문득, 추사의 인생에 불어닥친 거센 풍파가 머리를 스친다. 이것은 과연, 권학문(勸學文)에 관한 것인가. 추사가 평생 고관대작으로 부귀를 누렸다면 그것이 가장 유력한 해석이겠다. 그러나 추사는 혹독한 유배 시절을 거치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현판에는 훨씬 더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라는 이름의 책은 제주대 교육학과 양진건 교수가 유배문화를 연구하며 쓴 학술서 겸 교양서이다. ‘추사 인생 톺아보기’라 할 수 있는 이 한 권을 읽으면 그가 어찌하여 유배됐으며, 섬에서 보낸 8년 3개월의 시간은 어떠했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지난한 세월을 견뎠는지 충분히 그려볼 수 있다. 교육학 전공자인 저자에게 유배문화는 낯선 주제였지만, 유배문학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국문화의 아름다움, 그것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써진다. 저자는 이런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녔다. 또,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움을 더없이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필력도 갖췄다. 글쓴이 정목일은 이처럼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과 그것을 표현하는 필력을 두루 갖춘 서정수필의 대가다. 그는 197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한국의 아름다움을 곡진히 풀어내는 서정수필을 써왔다. 그래서 펴낸 책도 여럿이다. 《한국의 아름다움 77가지》, 《나의 한국미 산책》에 이어 이번 책 《맛 멋 흥 한국에 취하다》까지, 일상에서 만나는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특유의 섬세한 안목으로 꾸준히 포착해왔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한 송이, 도자기 한 점, 병풍 한 폭에 담긴 지극한 아름다움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1장 ‘한국 문화재의 미’, 2장 ‘한국의 생활미학’, 3장 ‘한국의 춤’, 4장 ‘한국의 꽃’, 5장 ‘한국 계절의 미학’, 6장 ‘달빛 서정’의 여섯 가지 주제로 한국미의 다양한 면모를 두루 보여준다. 1장 ‘한국 문화재의 미’에서는 달항아리, 백자와 홍매, 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치열했다. 고단했다. 그리고 잔혹했다.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투쟁이었다. 한 나라의 군주가 된 후에는 무궁한 영광과 환희에 가득 찬 나날이 이어질 것만 같지만, 실상은 가혹한 왕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왕은 왕실 어른과 왕비, 후궁, 세자와 같은 가족에서부터 사관, 신하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사생활 역시 국가대계와 직결되는 공적인 영역이었기에 감시 어린 눈길이 따라다녔고, 성리학 군주의 이상에 따라 언제나 완벽할 것을 요구받았다. 왕도 결국 인간이다. 그런 중압감을 오랜 시간 감당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좋은 음식과 약재에도 조선왕의 평균 수명이 약 47살로 그다지 길지 않았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저자 조민기는 《조선 임금 잔혹사(책비)》를 통해 왕들이 겪어야 했던 잔혹하리만치 거센 압박감을 묵직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서사로 풀어낸다. 저자는 특히 조선의 왕들이 어떻게 왕위에 올랐는지에 주목한다. 왕위에 오르게 된 경위 자체가 재위 중의 치세나 후계 선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젊은 베르테르의...술품?” 그렇다. 젊은 베르테르는, 슬프다 못해 술펐다(?). 슬픈 나머지 술을 퍼마셨다고 볼 수도 있겠다. 베르테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기발한 제목 덕에 이 책을 펴들게 된 것도 사실이다. 베르테르가 술 푸겠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이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우리 술의 매력을 베르테르와 같은 젊은 청년의 감각에 걸맞게 요모조모 풀어낸 책이다. 가객 김창완과 전통주 전문가 명욱이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꼭지에서 2년 동안 주고받은 우리 술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우리 술 입문서로 손색이 없거니와, 내용도 알차다. 1부 <술에 대해 궁금했던 모든 것>에서는 술의 어원과 유래부터 술의 역사까지 두루 다룬다. 발효주와 증류주의 차이,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술 문화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3곳 등 우리 술 전반에 대한 기초 지식을 알차게 담았다. 2부 <전통주 만나러 가볼까?>에서는 조선 3대 명주인 감홍로와 이강주, 죽력고에 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오랜만에 외국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격조 높은 한국문화 책을 만났다. 전통공예를 다룬 좋은 책을 여럿 출판한 ‘수류산방’에서 ‘18세기 조선의 일상과 격조’를 부제로 펴낸 《한국전통공예(Traditional Korean Crafts)》 책이다. 물론 한국 전통공예를 다룬 외국어책은 많지만, 이처럼 귀빈에게 선물하기 좋은 ‘명품’ 느낌의 책은 흔치 않다. 일단, 책이 아름답다. 격조 높은 도록을 연상케 하는 붉은 표지와 넝쿨무늬를 닮은 특색있는 띠지는 첫눈에도 이 책이 품은 고아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낸다. 이렇듯 책인 듯 도록인 듯, 묘한 느낌을 자랑하는 이 책의 정체는 사실 도록이다. 2007년 7월 19일부터 8월 27일까지 한국공예문화진흥원과 주 국제연합 대한민국대표부의 공동 주관 아래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전시 <Traditional Korean Crafts>에 출품된 공예품을 담았다. 출품작들은 각 분야에서 수십 년간 헌신한 한국 최고의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들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지방 무형문화재, 명장, 전수자 등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최고의 장인들이 으뜸 기량을 발휘해 만든 최고의 작품들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중에서 물고를 당했다’ *삼성국문; 의정부, 사헌부, 의금부의 관원들이 함께 패륜을 범한 죄인을 국문하던 일 소설의 실마리는, 《조선왕조실록》에 쓰인 여덟 줄이었다. 이 사건은 단 한 번, 효종 1년(1650년) 2월 27일 기사에 등장한다. 주인을 살해한 죄로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사했다는 기록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종이었던 범인이 자신이 한 남자를 찔러 죽인 것은 자복했으나, 그 남자가 자신의 주인인 것은 한사코 부인한 사실이었다. 작가 김별아는 이 대목을 수상히 여겼다. 그래서 《승정원일기》로 눈을 돌려 효종 즉위년(1649년) 11월 6일부터 사건에 관해 언급한 기사 40여 개를 찾아냈다. 조정에서 단순 살인사건을 이토록 여러 차례 다룰 리는 없기에, 그녀는 작가 특유의 ‘촉’을 발휘해 앙상한 사실의 뼈대에 풍부한 상상력을 덧댔다. 이 책 《구월의 살인》은 이렇듯 한 줌의 기록에서 탄생한 역사추리소설이다. 사실, 책장이 쉬이 넘어가진 않는다. 형사사건에서 쓰던 전문용어가 워낙 많고, 역사소설 특유의 예스러운 문체가 눈에 익을 때까지 시간이 걸린 탓이다. 그러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회기역에서 만나!” 우리는 날마다 지하철을 타고, 또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그 역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무심코 지나치는 지하철역에도 그 나름의 유래와 역사가 숨겨져 있으니, 그런 역사를 알게 된다면 날마다 오가는 지하철이 좀 더 정겹게 느껴질 터이다. 이렇듯 일상에서 역사의 향기를 접하게 해 주는 책이 있다. 바로,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역사강좌를 책으로 엮은 《지하철을 탄 서울 인물史》다. 서울 시민이 날마다 접하는 지하철역을 소재로 한 역사 이야기라니, 그 기획이 절묘하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지하철이라도, 숨겨진 역사를 알고 나면 달리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에 소개된 지하철역은 모두 16개다. 이 역들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 광복 이후 일본식 지명을 청산하기 위해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의 시호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역이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을 따른 을지로입구역과 을지로3ㆍ4가역,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공’을 따른 충무로역, 을사조약에 반발해 자결한 애국지사 민영환의 시호 ‘충정공’을 따른 ‘충정로역’이 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