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차표를 예매한 우리는 작은 손가방 하나씩을 들고 즐거운 기분으로 열차에 탔다. 사실 이렇게 두 남자가 금산정사 방문 여행을 실현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 두 남자야 의기가 투합했지만, 문제는 사모님의 내부 결재. 연담 거사는 불교 신자로서 법사 자격증까지 있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나는 당시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십일조까지 내는 기독교 신자였다. 나는 화성군 봉담면에 살지만,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교회에 나간다. 그런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3일이나 집을 떠나 전라남도 섬에 있는 스님을 만나러 간다? 아무래도 명분이 없었다. 마침 대학교는 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지방 학회에 출장 간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로 명분을 찾았으나 마땅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궁리 끝에 결국은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우선 며칠 동안 유별나게 아내를 기쁘게 해주었다. 독자 중에는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 꼭 밤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안 하던 방청소도 깨끗이 하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놈 숙제하는 것도 보아주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집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젊은 시절에 나는 방황하는 구도자였다. 기독교의 ‘예수원 방문기’에 이어서 또 다른 구도 여행인 불교의 ‘금산정사 방문기’를 연재한다. 광복절 전날인 1997년 8월 14일 낮 1시 30분, 나는 불교계 친구인 연담 거사와 함께 수원역에서 광주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두 남자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2박 3일 동안 전남 고흥군 건너 남해에 있는 섬, 거금도로 현정(玄靜)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오랫동안 그려 오던 여행이었다. 내가 현정 스님을 최근에 만난 것이 1989년이었으니까 무려 8년이나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8년 만의 외출. 무슨 소설 제목 같기도 하고, 나는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내가 현정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순전히 인연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0년 전인 1987년 어느 날, 나는 이전 직장인 국토개발연구원에서 광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시끄럽고 닭장 같은 아파트가 가득한 대도시가 싫었다. 모처럼 서울을 떠나 출장을 가는 김에 하룻밤을 광주 근처의 산사에서 보내고 싶었다. 나는 직장의 불교 모임인 국불회(國佛會)의 회장 연담 거사에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침식사 때에 보니 인원이 많이 줄었다. 주말에는 방문객을 받지 않고 이미 들어와 있는 방문객도 특별히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모두 낮 12시까지는 떠나야 한다. 아침 식사 뒤에 나는 오거스틴에게 물어서 공동체 식구 중에서 학부형을 소개받았다. 내가 만난 사람은 이솔로몬이라는 사람으로서 매우 착해 보였으며 얼굴에서 평화로움이 배어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중학교 3학년생과 초등학생, 이렇게 두 아들이 있었다. 중학생 아들은 지금 황지중학교를 다니는데, 고등학교는 간디고등학교로 보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큰아들은 예수원 입구의 큰길 가에 있는 하사미 분교를 졸업하였고 작은아들은 아직 다니고 있다고 한다. 대천덕 신부님의 두 딸도 하사미 분교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두 딸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한국말과 영어를 완벽하게 한다고 전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 진학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하니, 그분은 대뜸 “기도해 보시오. 어떤 필요가 생기거든 1차적으로 기도해 보시오.”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해 준다. 기도해 보면 길이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그 말을 듣고도 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단순 소박한 삶. 이러한 삶이 내가 환경을 공부하면서 결론 내린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하나뿐인 지구에서 70억 인류가 다 같이 행복하기 위해서 따라야 할 삶의 모습이다. 종교적으로도 가장 바람직한 삶의 모습은 한경직 목사님과 법정 스님이 보여 주었듯이 단순 소박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의 간디 역시 단순 소박한 삶을 보여 주었다. 근래에 한비야라는 야무진 한국 여성이 세계의 두메를 여행하면서 쓴 4권의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한비야가 여러 나라를 돌아본 뒤에 내린 결론도 ‘단순한 생활이 행복하다’라는 것이어서 내심으로 흐뭇한 적이 있다. 정오가 되어 종이 울려서 삼종(三鐘)시간을 알렸다. 삼종이란 천주교 용어인데, 하루 세 번 종을 치면 종소리를 듣고서 교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기도문을 외우며 기도를 한다. 그런데 예수원에서는 기도문을 외는 대신 침묵으로 삼종 기도를 한다. 이것은 매우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의 신앙을 철저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아마도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자리를 깔고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제도 때문일 것이다. 이슬람의 이러한 전통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밤 9시 30분이 넘자 기도와 간증 순서가 되었다. 제일 먼저 공동체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태백산 정상에 있는 단군성전을 방문한 이야기를 하였다. 발표자는 여성이었는데 단군 성전을 무슨 사교(邪敎)의 거점처럼 여기는 것 같아서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다음은 예수원에서 한 달 장기 체류를 허가받은 한 신학생이 자기의 신학적인 고민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젊었을 때 겪었던 고민을 회상시키는 간증이었다. 다음은 몽골에서 선교사로 일하다가 잠시 귀국한 젊은 선교사가 간증을 하였다. 낯선 선교지에서 겪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재미있게 소개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 돈 1만 원이면 몽골에서는 한 달 생활비가 된다고 한다. 결론으로 그는 불쌍하고 가난한 몽골인을 돕고, 선교를 열심히 하자고 호소하였다. 몽골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으나, 그러니까 불쌍하고 불행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가난은 경제적인 척도이지만 행복이란 물질적인 척도라기보다는 정신적인 만족도라고 볼 수 있다. 1인당 국민 소득이라는 척도로 재는 가난을 국가 사이에 견줄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중국인 한 달 봉급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대천덕 신부님의 부인(제인 그레이 토리, 한국이름: 현재인)은 그림을 공부했는데 학창 시절 대학의 메이퀸이었다고 한다. 제인은 1940년 여름 미국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청소년 모임에서 아쳐를 처음 만났는데, 제인의 기억에 아쳐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쳐는 기독교인이면서도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그가 종종 보내온 편지에는 ‘제인과 함께 티베트로 건너가 천막촌 생활을 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다. 제인은 “아쳐가 나의 반려자일까 고민했었는데, 하나님이 어느 날 정말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화가로서의 꿈도 있었지만 아쳐와 함께 하는 삶이 더 소중하고 아름다울 것 같아서 아쳐와 결혼했다”라고 말했다. 그들 부부는 혼인하고 한 번도 싸우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하는데, 예수원에서 두 사람이 같은 방을 쓰면서도 서로 바빠서 오후 4시 반 차담 시간에나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고 한다. 숙소인 석송관에 도착하여 이층 침실로 올라가 보니 군대 내무반식으로 마루를 깔았고, 한쪽에 베개와 이불이 쌓여 있다. 베갯잇과 이불보에 베개와 이불을 넣어서 이틀 동안 사용할 침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차를 타기 전 대합실에 있는 책방에서 산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를 읽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칼슨이라는 심리 치료사인데 이 책은 1997년 저작으로 미국에서 5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내용의 짧은 글들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당시에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그 일의 결과에 따라서 세상이 크게 변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 사소한 일이고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거나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며칠 전 아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아내는 여섯 자매 가운데 둘째니까, 언니 하나에 여동생이 넷이나 된다. 자매가 많다 보니 여러 가지로 좋은 일 나쁜 일이 일어난다. 최근에는 둘째 여동생과 무슨 일로 서운했다고 이야기했었다. 자기가 동생을 생각하는 만큼 동생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는 3남 4녀의 장남인데, 역시 형제자매 간에 희로애락이 많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세상살이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들어가는 말: 강원도 태백시 백두대간 근처 깊은 산골에 예수원이라는 수행공동체가 있다. 필자가 50살이었던 2000년에, 나는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철 어느 날, 나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하여 예수원에 2박 3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의 방문 기록을 우리문화신문 독자들에게 6회에 걸쳐 소개한다. 단, 오해할 독자들이 있을까 봐 사족을 단다. 이 이야기는 종교이야기가 아니다.(글쓴이) 내가 예수원에 대해서 처음 들은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가가 강원도고 장인어른이 태백시 황지 초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신 적이 있어서 아마도 처가에 갔다가 처음 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수원이라고, 태백시 근처 깊은 산속에 성공회 신부(Reuben Archer Torrey III, 한국 이름 대천덕)가 세운 기도의 집이 있는데, 신앙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이 그곳에 가면 안식을 되찾고 온다는 정도로 들은 것 같다. 예수원 사람들은 매우 자유분방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을 강요하지도 않고, 또 한 가족처럼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부터 예수원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