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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경제현상과 시(詩)는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87]
[서평] 임병걸 시인의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KBS 임병걸 해설위원이 KBS 아침뉴스에서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라는 마당을 진행하였지요. 시인이기도 한 임 위원이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경제 이야기를 시와 접목하여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곤 했는데, 이제 그렇게 풀어낸 이야기가 같은 이름의 책으로 묶여서 우리에게 선을 보였습니다.

 

임시인이 친필로 사인하여 직접 저에게 손으로 건네 준 책을 펼쳐듭니다. ‘전월세 오디세이아, 지상의 방 한 칸을 찾아서’, ‘비정규직, 그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에’, ‘가난, 벗어던져야 하는 숙명의 굴레’... 글의 제목만 보아도 임 시인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민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임시인은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와 경제, 얼핏 생각하면 전혀 무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인 하면.....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고 인간의 삶이 행복과 기쁨으로 점철된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 몽상가로 취급되기 일쑵니다...... 반면 경제는 이런 낭만과는 거리가 먼 냉정하고 이성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공중부양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도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고, 무언가 안정된 소득과 일자리를 갈망하며 때로 무엇보다 큰 위력을 지닌 돈을 갈망하는 소시민이기도 합니다....

 

경제 역시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보면, 얼핏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보이는 행동과 현상의 이면에 충동적이고 낭만적인 상상력들이 녹아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들의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거나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가운데 경제와 관련된 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포함해 생활 속에서 느끼는 애환과 고통, 갈망을 노래한 시가 아주 많이 섞여 있습니다.....

 

이제 여러 가지 경제 현상에 스며 있는 철학적, 미학적 의미를 때로는 명쾌하게, 때로는 통렬하게, 때로는 분노와 슬픔으로 노래한 시들을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그 시들은 돈을 앞세운 시장경제라는 괴물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치이고 차이는 우리에게 따스한 위안이 되어줄 것입니다.“

 


임 시인의 책을 읽고 김종해 시인은 이렇게 말하는군요. “시인이 시로 포착해낸 삶은 일생의 독한 체험이 배어 있어 깊고 지혜롭다. 따뜻한 안식과 사랑, 치유마저 느끼게 해준다. 누구에게나 소통이 잘되는 시의 선별도 뛰어나지만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담론 또한 놀랍다저도 김종해 시인의 평에 공감합니다. 저 또한 임 시인의 책을 읽으면서 따뜻한 안식과 사랑, 치유를 느꼈으니까요.

 

그럼 임 시인이 어떻게 냉정한 경제에 따뜻한 시를 녹여 이야기를 풀어내는지 잠깐 들여다볼까요? ‘전월세 오디세이아, 지상의 방 한 칸을 찾아서에서 임 시인은 우선 김사인 시인의 시 지상의 방 한 칸을 읊조립니다.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 비는 재주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 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고 독백하는 시어(詩語)를 읽을 땐 김사인 시인의 비통함이 그대로 저에게 옮겨오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에 제 가슴 한편으로도 바람이 사정없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임 시인은 이렇게 김 시인의 시를 읊조린 후, 내 집 마련의 꿈은 감히 꾸지도 못하고 지상의 방 한 칸을 찾아서 오디세우스처럼 이리 저리 떠도는 전월세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2014년 기준으로 주택보급률이 103.5%에 달함에도 전세가구는 350만여 가구, 월세 가구는 무려 450여만 가구나 되는 현상에 대해 예리한 메스를 가합니다.

 

한편 가난, 벗어던져야 하는 숙명의 굴레라는 글에서 임 시인은 사회가 점점 양극화 되어가는 현상을 시인의 자제된 감정 속에서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여기서 임 시인은 천상병 시인의 시 나의 가난은을 낭독합니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숲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가난하지만 결코 비루하지 않았던 천상병 시인, 동백림 사건으로 억울하게 끌려가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결코 사회에 대해 독한 시어를 내뱉지 않고 때로는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시를 읊조리던 시인, 그 천상병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임 시인은 천 시인 말고도 가난에 대해 노래한 몇 가지 시를 더 보여준 뒤, 커져만 가는 빈부격차에 대해 이렇게 분석합니다.

 

IMF의 아시아 소득분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최상위 10% 소득자가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5년만 해도 29%였는데, 2013년에는 무려 42%로 증가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비율입니다.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율은 2003년의 60%에서 2012년에는 41%로 줄었습니다. 반면 빈곤층은 18%에서 26%로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20년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확대 재생산되는 동안 가난한 사람의 돈이 오히려 부자들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살과 이혼, 실업 등 사회적 문제들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1996년 인구 10만 명당 13명이었던 자살률은 201538명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 OECD 국가 가운데 1위이고 노인빈곤률도 가장 높습니다.

 

이런 소득격차와 불평등의 심화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가난의 문제는 각자의 능력이나 노력과 같은 개인적인 요인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다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문제라는 뜻입니다. 바로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0000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잉태한 그늘입니다.

 

자살률이 OECD 국가 가운데 1위이고 노인빈곤률도 가장 높은 나라, 우리나라! 임병걸 해설위원은 결코 이런 대한민국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시로 풀어서 우리에게 공중파로 보여주고, 또 책으로도 보여줍니다. 임병걸 해설위원 본인이 시인이니 책에는 본인의 시도 있지 않겠습니까? 감정노동자의 아픔을 얘기한 감정노동, 당신의 감정도 팔 수 있나요?”에서 임 시인은 할인매장 점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냅니다.

 

정전 한번 없이 발광하는 형광등

빨간 신호등 없는 에스컬레이터

계산대로 밀려드는 카터의 물결

점원 여인의 두 팔도

멈춤 스위치 없는 로봇의 무쇠팔

팔수록 쌓여가는 물건들

두드릴수록 커져가는 숫자들

아메바처럼 무한증식하는 손님들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여기는 세상 모든 욕망 다 교환해주는 상그리라

점원은 님프 요정이어야 한다지만

오늘도 집채 한 덩이 팔아 치우느라

저려오는 점원 여인의 손 위에 얹힌 것은

1그램 지폐 몇 장

신발도 거부하는 퉁퉁 부은 다리 위에

끊어지려는 허리 살살 얹어

매장문 나서는 점원 여인 뒷덜미 당기는

달콤한 광고

고객님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에는 이것 말고도 서민의 먹거리인 라면, 커피, 소주나 서민의 탈거리 기차, 볼거리 영화에도 따사로운 시선을 던지는 글 등 도합 20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임 시인의 책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를 덥석 집어 들고픈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면, 당신도 자기 혼자만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임 시인처럼 이웃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지는 따뜻한 사람일 것입니다. 임 시인이 시로 들려주는 다음 경제 이야기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