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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10권이 나오는 그날까지 귀한 발자국 내딛으소서!

[서평] 《서간도에 들꽃 피다》 8, 이윤옥, 도서출판 얼레빗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9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윤옥 시인이 서간도에 들꽃 피다8권을 냈습니다. 이번에도 곽진근, 공백순 등 2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소개글은 이 시인의 시로 시작하고 있구요. 이시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국내는 물론 만주, 하와이 등 나라밖까지 직접 발품을 팔며 뛰어다닙니다.


 

처음 1권을 시작할 때만 하여도 이 어렵고 힘든 작업을 언제까지 할까 하였는데, 벌써 8권까지 내셨네요. 이 시인은 10집까지는 내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이 시인이 재정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을 헤치고 꿋꿋하게 이 작업을 계속 해오는 것을 보며 절로 존경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이 시인이 소개한 여성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제가 아는 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제가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저는 제 자신의 무지함으로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8권에서 이 시인이 소개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들 가운데 몇 분만 말씀드리지요. 먼저 평생 결혼하지 않고 송암교회를 섬기다 돌아가신 조애실(1920 ~ 1998) 권사입니다. 조 권사는 19401월 중순 무렵 함경북도 아오지 탄광에서 야학을 하며 부녀자들에게 민족혼을 불어넣다가, 이듬해 3월 무렵 왜경에 붙잡혀 3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합니다.

 

이 때 장티푸스까지 걸려 사경을 헤맵니다. 그래서 왜경이 전염될까봐 조 권사를 방치해놓고 있는 사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도망쳐 나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독립문성결교회에서 <기독학생 비밀독서회>를 조직하여 한글을 가르칩니다. 일제의 악랄한 고문도 조 권사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조권사는 다시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1945426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습니다.

 

그 때 왜경의 고문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그 고문의 고통은 평생 조권사를 따라다닙니다. 오죽했으면 조권사가 고통을 잊고 싶어 몸에 자살약을 가지고 다녔을까요. 조권사는 왜경에게 당한 고문과 치욕을 자전적 수필집 <차라리 통곡이기를>에서도 언급합니다.

 

“... , 너무도 똑똑하고 지독한 년이다. 하루에 담배 한 갑 태우던 내가 네년을 조사하면서 매일 두 갑씩이야! 묻는 말 이외는 입을 다문 채 귓구멍으로는 국어(일본말)를 들으면서 답은 조선말로 하는 걸 보니 지독한 년이군...... 천하장사도 고문을 견뎌내진 못했으니까..... 이런 짓 저질러 놓고 서울로 도망쳐 와서 겁도 없이 또 <비밀독서회>를 조직해? 앙큼하고 지독한 년 같으니...

 

분하다. 옷을 입고 고문을 당해도 분한데 갓 스물이 조금 넘은 박 속 같은 알몸을 불구대천지 놈들 앞에서 드러낸 자체만도 입술을 깨물고 죽고 싶은 치욕이었다."


조 권사의 어머니 김영순 여사도 31만세운동 때 함경도 길주의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김 여사는 일본 헌병을 피해 마방집 말을 풀어 타고 산으로 도망쳤다는군요. 산으로 숨어든 딸을 애타게 찾던 김 여사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찾아주는 사람이 총각이면 딸과 결혼시키고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면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방을 내걸었다는군요. 그러자 마방집 아들 조창길이 산속을 뒤져 다 죽어가는 김영순 여사를 찾아냈고, 약속대로 둘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조 권사님이 태어났네요.


 

조애실 지사가 왜놈들에게 당한 고문으로 평생 통증을 안고 살았다는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는데, 윤형숙(1900~1950) 열사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는 더욱 비통해집니다. 1919310일 수피아 여학교 학생으로 광주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윤 열사는 일본 기마헌병이 휘두른 칼에 태극기를 든 왼팔이 잘리고, 오른쪽 눈을 실명합니다. 그런 상태로 잡혀가 옥고를 치루며 징역 4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요. 그리고 투옥되어 있는 동안 고문을 당하여 왼쪽 눈마저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윤 열사는 이런 개인적 비극을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아들임으로서 이겨냅니다. 그런데 윤 열사의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가해자가 왜경에서 인민군으로 바뀝니다. 1950928일 인민군은 윤 열사와 손양원 목사 등 200여명의 기독교인들을 여수시 둔덕동으로 끌고 가 학살하였습니다. 불구의 몸으로 문맹자와 어린이 교육에 힘쓰던 윤 열사가 끝내 학살되다니... 마음이 무겁지만 하느님은 윤 열사의 순결한 영혼을 기쁘게 받아주셨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외에 이월봉(1915~1977) 지사의 경우에는 남자 이상의 기개와 체력을 자랑하던 여자 광복군이셨네요. 1938년에 장개석 총통이 장학량 군대에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것을 기념하여 만든 중화민국 대운동회가 있었답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이월봉 지사는 장애물을 뛰어 넘고 험난한 코스를 달려 제일 먼저 산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국기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여자가 1등으로 올라오니까 국기를 내주지 않았다나요? 그러자 이월봉 지사는 그 남자를 때려눕히고 국기를 가지고 내려와 1등을 하였다고 하네요. 이뿐입니까? 한국청년전시공작대원이 되어 훈련을 받을 때에는 대부분이 남자인 180명의 동기생 중에서 5등 이내로 과정을 마쳤다고 합니다. 정말 아마조네스와 같은 여전사였네요. 이런 강인한 체력을 가진 분이니 광복군에서도 제2지대 여군반장(소위)으로 광복군을 이끄셨습니다.

 

충남 병천면의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하면 당장 유관순 열사가 떠오르지요? 해방 이후 조병옥 박사가 자기 고향의 유관순 열사를 한국의 잔다르크로 부각시켰기에, 우리에게는 유관순 열사가 제일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은 김구응 지사(1887~1919)가 주도한 것입니다.

 

김구응 지사는 만세운동 때 왜경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즉사했는데, 왜경은 이것도 모자라 김지사의 팔다리를 칼로 난도질합니다. 이때 김 지사의 어머니 최정철(1853~1919) 지사도 같이 만세운동을 하였는데, 아들이 눈앞에서 학살당하는데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개돼지만도 못한 왜경은 최정철 지사마저 칼로 찔러 죽입니다. 병천면에 잠들어 있는 최정철 지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놈들아!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 나라 독립만세를 부른 것도 죄가 되느냐! 이놈들아! 나도 죽여라!”

 

너무 얘기가 길어지니 8권에 나온 여성 독립운동가 소개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도 10권까지 4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더 발굴해내어 우리들에게 알려주겠다는 이윤옥 시인! 다시 한 번 그녀의 열정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시인이시여! 10권이 출간되는 그 날까지 건강하게 귀한 발자국 계속 내디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