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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일왕은 148살을 살았다?

[맛있는 일본이야기 483]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 1977년에 나온 책으로 《역사독본(歷史讀本)》이란 책이 있다. 1977년 봄호(春號)로 펴낸 이 책은 일본의 신인물왕래사(新人物往來社)에서 나온 것으로 표지에는 《역사독본》 창간2호라고 쓰여 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20여 년 전 우연찮게 도쿄 진보초의 고서점가에서다. 특별히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것은 ‘역대천황124대’라는 부제가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표지에는 122대 메이지왕(明治天皇)의 사진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보인다.

 

 

일본고대문화사를 전공하는 필자는 일본왕(天皇)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이 책을 곁에 두고 수시로 읽고 있다. 약 300쪽에 달하는 이 책은 역대 일왕가의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책으로 일왕의 뿌리부터 일본근대화의 아버지라는 명치왕(1868~1912) 때까지 일본인들도 모르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특별히 권두 특별기고문은 ‘일본역사와 천황(日本歷史と天皇)’라는 제목으로 도쿄대학 사카모토 타로우(坂本太郞권) 명예교수가 썼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집필자들은 와세다대학의 미즈노 유(水野祐), 도쿄대학의 야마나카 유타카(山中裕), 학습원대학의 야스다 모토히사(安田元久) 등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유명한 학자들이 집필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성경의 창세기가 떠오른다는 점이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175살까지 살았다고 하는 등 요즘 상식으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역사독본(歷史讀本)》에도 이에 못지않은 나이를 자랑하는 일왕들이 많다.

 

 

먼저 100살 이상을 살았다는 일왕을 보자. 제1대 일왕인 진무왕(神武天皇)은 127살이요, 제5대인 코쇼우왕(孝昭天皇)은 114살, 제6대 코우안왕(孝提安訴天皇)은 137살, 제7대 코우레이왕(孝靈天皇)은 128살, 제8대 코우겐왕(孝元天皇)은 116살, 제9대 카이카왕(開化天皇은는 111살, 제10대 스진왕(崇神天皇)은 119살, 제11대 스이닌왕(垂仁天皇)은 139살, 제12대인 케이코우왕(景行天皇)은 무려 148살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제13대인 세이무왕(成務天皇)은 107살, 제16대인 닌토쿠왕(仁德天皇)은 143살을 살다 갔다고 쓰여 있다.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148살 운운은 일본 일왕의 역사가 상당수 허구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있다.

 

그런가하면 아예 나이를 알 수 없는 일왕도 부지기수다. 제17대 리츄우왕(履中天皇), 제18대 한제이왕(反正天皇), 제19대 인교우왕(允恭天皇) 등은 태어나고 죽은 때를 모른다. 이처럼 일왕가의 기록이 허술한 것은 1185년 가마쿠라 막부로 부터 1868년 메이지왕이 왕정복고로 등극하기 까지 683년 동안 무사정권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일왕가를 누르고 정권의 권좌에 오른 무사들에게 있어서 일왕가의 역사 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683년 동안 일왕가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무사정권 아래서 거의 잊힌 존재였던 일왕가가 다시 고개를 들게 된 것은 메이지 때부터다. 메이지기에 들어서서 대대적으로 일왕가의 족보가 만들어지는데 족보 정리 가운데 재미난 일화가 하나 있다.

 

 

제39대 일왕이 족보에서 빠진 것이었다. 이를 지적한 사람은 지방의 재야사학자로 그는 코우분왕(弘文天皇)이 메이지정부가 만든 족보에 누락되어 있음을 지적하였고 메이지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메이지3년 (1870)에 코우분(弘文天皇)을 족보에 넣고 제39대왕으로 삼았던 것이다.

 

제122대인 메이지왕(明治天皇)은 61살로 생을 마감했고, 제123대인 다이쇼왕(大正天皇)은 48살, 제124대인 쇼와왕(昭和天皇)은 88살로 숨을 거두었다. 이후 1989년부터 헤이세이왕(平成天皇)이 일왕(天皇)으로 지내다가 올해 5월 1일부터 새로운 일왕이 새로운 연호(年号)인 '레이와(令和)'로 새장을 펼친다. 원래는 전 왕이 숨을 거두고 난 뒤 새 왕이 등극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생존해 있으면서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준 예다.

 

4월 1일 오전 11시, 스가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새로운 연호 발표가 있었던 시각 NHK생중계는 무려 19%의 높은 시청률을 보일 정도로 일본인들의 연호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이로써 일본은 지난 1989년에 시작된 '헤이세이(平成)'시대를 마감하고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번에 새로 쓰게 되는 연호는 서기 645년의 다이카(大化)로부터 시작해서 248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2019년은 레이와(令和) 1년이 된다.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는 일본 고전인 《만엽집(萬葉集)》에서 인용해서 지은 것이다. 그동안은 대개 중국 고전에서 따다가 만들었는데 견주어 이번에 일본 고대의 문학작품에서 만든 것이라고 해서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이내 잠잠해지고 《만엽집》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분위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980년생이라든지, 1945년생이라는 말로 태어난 해를 말하지만 일본인들은 대정 5년, 쇼와 34년, 헤이세이 10년 이런 식으로 태어난 해를 말한다. 이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만큼 일본인들의 일상 속에서 일왕(天皇)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역사독본》은 1951년 야타가이 마사유키(八谷政行) 씨가 창간한 것으로 처음에는 《인물왕래(人物往来)》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여 역사책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자 1952년 《역사독본》 으로 고쳐 이 출판사의 간판 잡지로 자리 잡았다. 주로 역사물을 다루는 잡지였다. 그러나 2013년 4월 중경출판(中経出版)으로, 이어 10월에는 카도가와(KADOKAWA) 출판사로 흡수 합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