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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경복궁복원 기공식 때 지경다지기 시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3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제5과정인 <자진 지경다지기> 이야기를 하였다. 땅을 자주 자주 다지며 자진방아타령을 부르는데, 사설은 구수하면서도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재미있는 구성이란 점, 제6과정은 더 잦게 다지는 과정으로 <이엿차>라 부르며 노랫말도 4자 1구로 규칙적이란 점, 마지막 과장은 뒷놀음의 순서인데, 힘들고 지루함을 잊고 신명나게 춤을 추며 한바탕 노는 마당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 대표적 궁궐, 경복궁은 서울 종로구에 있고,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조선을 건국하고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먼저 경복궁을 지었는데, 시경(詩經) 가운데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어라. 임이시여, 만 년 동안 큰 복을 누리소서."(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시 끝부분의 <경복(景福)>을 딴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그 뜻은 큰 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경복궁 건축의 실질적 인물은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책임자 심덕부로 보는 시각도 있고, 또는 환관 김사행(金師幸)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조선 초기 신진사대부가 지은 궁궐이기 때문에 유교 이념이 반영되어 이전 왕조들의 궁궐에 견주어 화려한 장식 없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지어졌다는 중론이다. 경복궁은 조선이 건국된 지 3년여가 지난 1394년 12월에 착공되어 다음해 9월 말에 1차 완공되었다. 흔히 언급되는 명나라의 자금성보다 먼저 지어진 궁전이 분명하기 때문에 자금성을 본 떠 지었다고 하는 설명은 옳지 않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일어난 화재로 270년 동안 빈터로 남아 있다가 고종 때 다시 짓게 되었는데, 새로 중축된 궁은 원래의 모습보다 더욱 크고 웅장한 궁궐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크고 웅장한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물이 들어 설 부지, 곧 땅을 굳고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이 중요할 것이다. 그것도 기계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노동력을 동원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큰 돌을 줄에 매어서 넓은 땅을 단단하게 다져 나가는 작업, 곧 지경을 다지는 작업은 분명,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었다. 노동의 고됨을 잊기 위해서 장단을 맞추고, 호흡을 함께 하는 노래 소리야 말로 작업 능률을 극대화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10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경복궁 지경다지기>행사를 재현해 온 <경복궁지경다지기보존회>의 책임 지도자 박상옥 명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노래는 1800년대 중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불렸던 서울, 경기지방의 노동요지요.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전국에서 부역꾼들이 자기마을의 깃발을 들고 농악을 치며 올라와서 긴 시간동안 노동에 시달리며 시름을 잊기 위해 부르던 노작요입니다.

 

 

저희 보존회에서는 기수 17명, 모갑이 1명, 가래질과 동아줄 디리기 겸 지경꾼 80명, 술동이 3명, 지게꾼 4명, 악사 9명 등, 약 100여명의 대 인원이 경복궁 복원공사 기공식 때와 1997년 홍예문 복원공사 기공식 때에 출연한 바 있고, 1987년 제2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해서 공로상, 1998년 제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전승의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지요.

 

이제까지는 힘이 들어도 나름대로 애정을 갖고 이를 지켜왔으나 더 이상의 전승은 여러모로 어렵게 되었습니다. 단절위기를 맞게 되었기에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서 전승과 보존을 해야 된다고 신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절’이었습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궁궐, 경복궁의 터를 닦으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일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지경을 다지는 과정은 꼭 남겨 두어야 할 의미있는 유산이라 생각된다. 서울시의 재고(再考)를 바라고 있다.

 

한 개인이 애호가 100여 명을 모아서 이를 가르치고, 연습시켜 하나의 공연물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며 지경 다지기 재현을 위해 연습하고, 시연을 해 준, <경복궁지경다지기보존회> 박상옥 명창 외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러한 유산은 올곧게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뜻있는 분들의 격려와 호응이 이어지기를 또한 기대한다. <경복궁지경다지기보존회> 여러분들이 큰 힘을 얻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