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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판소리 ‘적벽가’와 경기좌창 ‘적벽가’의 다른 점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3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정선아라리가 불리고 있는 지역을 아라리권역, 또는 메나리권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 ‘메나리’라는 말은 ‘뫼놀이’, ‘뫼노리’의 변화형으로 산에서의 놀이, 곧 유산(遊山)의 의미라는 이야기, 서울 경기는 경 토리 권역, 수심가 토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그리고 전라도 지방은 육자배기 토리 등이 특징있게 불린다는 이야기, 김옥심 경기명창은 메나리권의 ‘정선아리랑’을 경토리로 불러 널리 확산시켰는데, 지금도 이 노래는 ‘경기제 정선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판소리의 ‘적벽가’ 또는 경기 12좌창의 ‘적벽가’라는 노래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이 독자로부터 있어 이에 대해 견줘보기로 한다. 원래, ‘적벽가’는 판소리 5마당, 곧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가운데 하나로 그 내용은 중국 위ㆍ한(漢)ㆍ오 등 삼국의 조조, 유비, 손권 등이 서로 싸우는 중국소설 《삼국지연의》 속에서 적벽강에서의 싸움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그런데 판소리 말고도 서울 경기의 좌창 12곡 속에도 ‘적벽가’라는 노래가 들어있어서 이들은 같은 노래인가? 아니면 다른 노래인가? 하는 점이 궁굼하다는 이야기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기좌창으로 듣는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 가운데에서 끝부분 곧 화용도 부분의 일부 사설 내용이 같은 점을 빼고는 그 창법이나 표현방법은 판소리와 전혀 다른 노래다.

 

우선, 경기좌창의 ‘적벽가’ 시작 부분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이 부분은 경기 명창, 묵계월(墨桂月)의 소리라 할 정도로 묵 명창이 잘 불렀으며, 6박의 도드리장단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삼강(三江)은 수전(水戰)이요, 적벽(赤壁)은 오병(鏖兵)이라.

    난데없는 화광(火光)이 충천(沖天)하니,

    조조(曹操)가 대패(大敗)하여 화용도(華容道)로 행할 즈음에,

    응포(應砲) 일성(一聲)에 일원대장이 엄신갑옷에 봉(鳳)투구

    저켜 쓰고, 적토마 비껴 타고, 삼각수를 거스릅시고, 봉안을 크게 뜹시고,

    팔십근 청룡도 눈 위에 선 듯 들어,

    엡다, 이놈 조조야!, <아래 줄임> ”

 

경기좌창은 그 연창하는 형태가 단정하게 앉아서 곱고 맑은 목으로 예쁘게 부르기 때문에 이를 <좌창>, <긴소리> 또는 <잡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현재 12곡이 전해 오는데, 그 곡명은 1. 유산가, 2. 적벽가, 3. 제비가, 4. 소춘향가, 5. 집장가, 6. 형장가, 7. 평양가, 8. 선유가, 9. 출인가, 10. 십장가, 11.방물가, 12. 월령가 등이다.

 

 

위 12곡 가운데 4번의 소춘향가(小春香歌)와 5번의 집장가(執杖歌), 6번의 형장가(刑場歌), 9번의 출인가(出人歌), 그리고 10번의 십장가(十杖歌) 등 5곡 역시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서 그 일부 내용을 가져 와 부르는 것이다.

 

사설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판소리처럼 그대로 부르는 형태가 아니라, 서울 경기의 소리제로 부르기에 전혀 다른 소리라 하겠다. 경기소리의 장단은 대부분이 6박의 느린 도드리장단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다양하게 장단이 변화하는 판소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사설의 내용이 판소리에서 가져왔기에 비슷하다는 점이다.

 

서울 경기의 긴소리는 앉아서 부른다.

 

그래서인가, 이를 좌창(坐唱)이라 부르기도 하며 또는 예전의 명칭, 그대로 서울 경기의 ‘12잡가’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산타령’과 같이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대형을 갖추고 소고(小鼓)를 치면서 부르는 선소리 곧 입창(立唱) 선소리와 대칭되는 이름이다. 문제는 잡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잡가>라는 그 명칭은 무슨 뜻일까?

글자 뜻으로만 풀어보면, 순수하지 않은 듯한 노래, 서로 다른 무엇이 섞여 있는 듯한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이다. 그래서 좌창의 형태를 살펴본다거나 또는 좌창의 음악적 성격으로 봐서는 합당하지 않다.

 

선대 국악인들이 그렇게 불러왔기에 아직 관습도 이들 노래를 <잡가>로 일관하고 있으나, 이 이름은 이제 생각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잡가>라 불렀다고 해서 아무런 검토 없이 지금도 그 이름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노래의 형식이나 분위기 등이 잡가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양반들의 노래를 점잖다는 의미에서 소위 <정가(正歌)>라 불렀지만, 일반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속가(俗歌)>, 또는 <잡가>라 불러왔는데, 신분의 구분이 사라진 현대에 와서도 이러한 류의 노래를 <잡가>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음악의 실제곧 사설의 내용이라든가, 선율선의 진행 모습이나, 표현 방법, 그 밖에 장단의 구성이나, 연창(演唱)의 태도, 등등에서 잡가(雜歌)라는 호칭은 노래의 실체와는 많이 다르기에 이는 적절한 이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서울 경기의 <좌창>, 또는 <긴소리>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