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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오백도부수(五百刀斧手), 한편으로 치워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3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로 부르는 <적벽가>와 경기 좌창의 <적벽가>는 사설 내용이 부분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을 빼고는 창법이나 선율 진행, 표현방법, 등이 양자가 전혀 다른 노래라는 점, 좌창을 <잡가(雜歌)>라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조조와 그의 군사들이 화용도 좁은 길에서 관우(關羽)에게 잡혀 목숨을 구걸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서울, 경기의 좌창 가운데 한 곡인 적벽가에는 적벽의 전투에서 크게 패한 조조의 군사가 화용도 좁은 길로 들어서자, 그곳에 매복해 있던 관우(關羽, 관운장, 관왕)에게 잡혀 목숨을 구걸하는 대목이 나온다. 관우가 조조에게 목을 늘여 칼을 받으라고 명하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

 

이 대목의 경기좌창 사설은 아래와 같다.

 

  “이놈, 조조야,! 너 잡으러 여기 올 제, 군령장 두고 왔다.

   네 죄상을 모르느냐? 천정(天情) 거역하고 백성을 살해하니,

   만민(萬民) 도탄(塗炭)을 생각지 않고, 너를 어이 용서하리.

   간사한 말을 말고, 짧은 목, 길게 늘여 청룡도(靑龍刀) 받으라,

   하시는 소래, 일촌간장(一寸肝腸)이 다 녹는다.”

 

위에서 군령장(軍令狀)이란 군 명령에 따라 처벌받겠다는 서약서를 말하는 것이고, 천정(天情)이란 하늘의 정리를 말한다. 조조와 그의 군사들이 관우에게 잡혀 목숨을 구걸하게 되는, 이 부분을 경기 좌창 <적벽가>는 6박의 느린 도드리장단으로 변화 없이 진행하고 있다.

 

장단이 점차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변화가 없어 단조롭기는 하나, 관우가 조조에게 “너 잡으러 여기 오면서, 만일 너를 못 잡아 올 때는 내가 처벌을 받겠다.”라는 군령장을 두고 왔다는 대목이나 조조를 향해 일방적으로 청룡도 받으라는 우렁찬 명령에 조조의 간장이 녹아드는 것이다.

 

특히, 조조를 향해 “짧은 목, 길게 늘여 칼을 받으라”라고 명하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 이 대목을 실제의 상황으로 상상해 보는 것도, 좌창으로 <적벽가>를 감상할 때 앞뒤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관우(關羽)의 명령에 조조의 대답은 시종(始終) 변명으로 이어진다. 가령, 간사하게 상대를 추켜세우거나, 또는 자신을 바짝 낮추는 말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간사한 말을 말고, 짧은 목, 길게 늘여 청룡도(靑龍刀) 받으라,” 하는 소리에 일촌간장(一寸肝腸)이 다 녹아내렸을 것이다. 엎드린 조조가 다시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소장을 잡으시려고 군령장(軍令狀) 두셨으나,

   장군님 명(命)은 하늘에 달립시고.(달려 계시고),

   소장의 명은 금일 장군 전에 달렸소.

   어집신 성덕(聖德)을 입사와 장군 전하 살아와지이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관우의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고, 조조의 목숨은 오늘 장군에게 달려 있으니 어진 성덕으로 살려달라는 간청이, 듣는 이를 애처롭게 만드는 것이다.

 

조조의 청을 듣게 된 관우, 마음이 흔들리는 듯, 문뜩 옛일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은 9년 전, 전쟁에서 유비는 조조에게 패하여 원소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관우는 생포되어 조조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가 유비에게 되돌아온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이번 적벽싸움에서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관우에게 잡힌 조조가 “장군님 명(命)은 하늘에 달려 있고, 소장의 명(命)은 금일 장군 전에 달려있다”라는 구구절절한 호소에 관우의 고민은 깊어 가기만 한다.

 

 

비록 조조에게 진 빚은 갚았다 해도, 인간적인 고뇌, 전장에 나오기 전, 공명과의 군령장에 대한 다짐, 등은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우는 군사들을 한편으로 치우고, 말머리를 돌리게 되는 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화용도를 벗어나 살아가게 된다.

 

꼼짝없이 죽게 된 조조와 그의 군사들이 관우의 큰 용서 앞에 되살아간다는 내용으로 경기좌창 <적벽가>는 끝맺음하고 있다.

 

마지막 노랫말에서 관우가 조조에게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대목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관왕(關王)이 들읍시고 잔잉(殘仍)히 여기사,

   주창(周倉)으로 하여금, 오백도부수(五百刀斧手)를

   한편으로 치우칩시고, 말머리를 돌립시니,

   죽었던 조조가 화용도(華容道)벗어나, 조인(曹仁)만나

   가더란 말가”

 

위에서 잔잉히는 잔인(殘忍)과 같은 뜻으로 인정이 없고 몹시 모질음으로 해석하기도 했으나, 여기서는 <거듭 불쌍하게>로 푸는 것이 앞뒤 문장에 맞는다. 주창은 관우의 보좌역, 오백도부수는 큰 칼과 도끼를 든 500여 명의 군사를 뜻한다.

 

이제까지 서울 경기지방의 좌창 <적벽가>의 내용을 사설 중심으로 읽어 보았다. 도드리장단에 얹어 부르기는 하나, 다른 좌창과는 달리 다소 씩씩하고 무게 있는 소리의 분위기가 전편에 흐르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