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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마음의 붕대도 없이 맞이하는 눈웃음

김기옥 시인의 시조집 《귀얄무늬 터치》, 아이앤디자인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6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대화는 말 끌어내는 반김이 필요하다

힘든 것 알아주는 잘했다 고생했다

 

그 말로

평가하지 말고

놀라면서 반응하자

 

대단해, 너 최고다! 감탄하고 칭찬하자

 

힘들지? 그게 뭘까 생각의 문 열어주자

 

말에도

마중물이 있다

친밀감의 맞장구

 

속초 아바이마을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아트플랫폼 갯배’에서 김기옥 시인의 시조집 《귀얄무늬 터치》를 받았습니다. 위 시는 《귀얄무늬 터치》에 나오는 김 시인의 시 <칭찬의 말>입니다. 공감합니다. 제가 특히 이런데 약하기에 더욱더 공감합니다. ‘잘했다’, ‘고생했다’, ‘대단해, 너 최고다!’, ‘힘들지? 그게 뭘까’ 이런 말 하는 것이 돈 드는 것도 아니고 힘든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하기 힘든 걸까요? 제가 이런 말을 잘하지 못하기에 아내에게 점수를 따지 못합니다. 김 시인의 말마따나 말에도 마중물이 있는 것인데... 녭! 앞으로 더욱더 명심하겠습니다. 실천하겠습니다!!

 

 

약력을 보니 김기옥 시인은 1996년에 계간 《현대시조》에 신인상을 받고 등단하였네요. 그리고 이번 《귀얄무늬 터치》 시집까지 5권의 시집을 내셨고, 제15회 강원여성문학대상, 제1회 강릉문학작가상, 제26회 현대시조문학상 등 상도 많이 타신 중견시인입니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등 활동하는 문인단체도 많고요.

 

시조집 제목은 《귀얄무늬 터치》입니다. 귀얄무늬라면 분청사기에 도공이 굵은 붓으로 표면에 백토를 바르면서 붓자국을 그대로 남겨놓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붓칠을 완전히 끝내지 않은 듯한 불완전함이 있지만, 한 번에 휙~ 칠하고 지나간 듯한 그 자유스러움과 즉흥성에 저도 귀얄기법을 좋아합니다. 많은 시집이 그렇듯이 시조집 제목 《귀얄무늬 터치》는 시조집에 실린 한 시조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시조입니다.

 

의연한 물결인가 고즈넉 내려앉은

서글픔 빛바램이 시간의 발자국으로

어느덧 내 얼굴에도 귀얄무늬 터치다

 

빗살무늬 바람결이 잔잔히 새겨지고

쓸쓸한 삶의 자락 세월의 모퉁이로

서걱한 싸리비 결처럼 돌아보는 뒤안길

 

그 누구도 거르지 못할 시간의 흘림체가

한없이 초라하고 작아진 내 자화상

마음의 붕대도 없이 맞이하는 눈웃음

 

시인은 세월이 자기 얼굴에 남긴 흔적에서 귀얄무늬 터치를 보았군요.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그 누구도 거르지 못할 시간의 흘림체가 남긴 귀얄무늬 터치에 시인은 한없이 초라하고 작아진 자신의 자화상을 봅니다. 시인은 얼굴에 남겨진 귀얄무늬 터치를 보면서 쓸쓸한 눈웃음을 짓는데, 이를 마음의 붕대도 없이 맞이하는 눈웃음이라고 표현하였네요.

 

이 시를 보면서 저는 또다시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 역시 세월이 남긴 귀얄무늬 터치에 쓸쓸한 웃음을 지을 때가 많으니까요. 저는 그냥 거울을 보며 푸념만 하는 데 견줘서, 시인은 이렇게 아름다운 시조로 귀얄무늬 터치를 활자로도 남깁니다. 또 한 편의 시를 볼까요?

 

반가움 설렘으로 경이로움 맞이하면

마음속 깊은 울림 오롯이 받아들여

견고한

느낌이 되어

삶의 지혜 만난다

 

경험과 시행착오 멋진 영감 합해져서

봇물로 터진 생각 섬광처럼 꽂힐 때

하늘의

선물일수도

망설이면 놓친다

 

김 시인이 시 <감이 오면>입니다. 저는 처음에 ‘감’이 무얼까 하며 시를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감이 옵니다. ‘感’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아! 그래! 이거지!”하는 감이 올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시인은 그런 생각이 섬광처럼 꽂힐 때, 이는 하늘의 선물일수도 있다며 망설이면 놓친다고 합니다. 시인도 어느 순간 이런 감이 왔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저와 같은 범인(凡人)과 다른 것은 이를 이와 같은 멋진 시로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봄의 풍경을 짤막한 시 한 편으로 남긴 <봄 사냥>을 보겠습니다.

 

흐드러진 벚꽃 나무

꽃 속마다 벌들 잉잉

 

따사로운 담장 위엔

봄 사냥이 한창이다

 

고양이

낮잠 헛발질 위로

노랑나비 춤춘다

 

어떻습니까? 머릿속에 봄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흐드러진 벚꽃 나무에는 꽃 속마다 벌들이 잉잉거리고, 그 옆의 담장 위에선 고양이가 봄의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아늑한 낮잠으로 빠져들려는데 노랑나비 한 마리가 와서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한낮의 오수(午睡)를 방해하는 노랑나비를 향하여 고양이는 저리 가라 발짓하지만, 발짓은 매양 헛발질이 되고 맙니다. 한 폭의 수채화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그것도 정지화면의 수채화가 아니라 동영상으로 흐르는 수채화입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섭니다. 그 봄에는 나도 흐드러진 벚꽃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내 눈은 고양이와 노랑나비를 찾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속초지청 수사 입회를 하기 위해 찾아간 속초에서 저는 임춘자 시인의 《봄날의 기억》과 김기옥 시인의 《귀얄무늬 터치》라는 소중한 시조집 두 권을 만날 수 있었으니, 이번 속초 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했던 출장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