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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가료> 중



박용하를 한류스타로 부상시킨 드라마 '겨울연가'의 연출 윤석호 PD도 이날 오후 무거운 표정으로 장례식장을 찾았다. 빈소에서는 상주를 맡은 박용하의 매형과 누나, 사촌형이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박용하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망을 확인하고 실신해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이고 위암 말기로 박용하의 집에서 가료 중이던 박용하의 아버지도 병세를 염려한 가족들의 권유로 같은 병원 병실에 머물고 있다. 박용하의 한 측근은 "유족들이 큰 충격을 받았지만 상황을 추스르려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2010/06/30-

33살 한류 스타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에 보면 위암 말기 아버지가 입원 가료 중 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아버지의 병만 해도 가슴 아플 텐데 아들마저 저 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까 가늠하기 어렵다. 세상을 살다 보면 숱한 난관이 있게 마련이지만 극복의 방법이 모두 다르다. 최근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 몹시 안타깝다.

가료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면 ‘가료(加療) : ‘치료’, ‘고침’, ‘병 고침’으로 순화’하라고 나와 있다. 일본국어대사전<大辞泉>에는 ‘か‐りょう【加療】: 病気やけがの治療をすること。「入院のうえ―する」’ 번역하면 ‘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일, 입원가료하다’로 되어있다. 우리가 쓰는 ‘가료’는 일본말 ‘가료우’에서 들여 온 말이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1일 기사에는 ‘오는 봄도 못 기다려 음독자살한 청춘남녀 중 남자는 죽고 여자는 입원 가료 중’ 이란 사회면 기사가 눈에 띈다. 남자는 지금의 연세대인 연희전문학교 학생이고 여자는 구슬픈 목소리의 가수이자 연극계에 혜성 같은 존재인 이애리수 양이다. 이들은 ‘칼모진’이라는 약을 둘이 나눠 마셨으나 남자만 죽고 여자가 깨어나자 동맥을 끊어 피가 낭자한 것을 집안 식구가 발견하여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입원 가료 중이라는 기사다. 남자 배동훈은 집안에서 짝 지어준 여성과 맘에 없는 결혼을 하게 되어 1년 만에 파경을 맞이하는데 또 다시 집안에서 강제 결혼을 당한 상태에서 이애리수를 만나 사랑을 키우다가 완고한 집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게 된 것이다.

1938년 다운 결혼 풍습이다. 중태 상태에서 입원 가료 중이었던 여배우는 그 뒤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음독 기사는 잔잔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더한다.입원 가료 중 이란 말로 자주 쓰이는 ‘가료’는 ‘치료’로 순화 하라고 하지만 ‘병 고침’ 같은 말로 고쳐 써도 좋을 것이다. 원래 우리는 가료라는 말 대신 구료‘救療’라는 말을 썼다.

연산군실록 26권, 3년(1497)에 보면, ‘형조(刑曹)에서 신종례(申從禮)를 가두고 심문을 받았는데, 곤장 한 차례를 때리니 죽었다. 한성부(漢城府)에서 시체를 검사하고 입계(入啓)하니, 전교하기를, “사람 목숨이 지극히 중한데, 요사이는 형장(刑杖) 한 차례를 맞고 죽는 자가 자못 많으니, 규격에 맞지 않는 곤장을 써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만일에 병을 가료하는 데 힘쓰지 않아 죽는다면 그 역시 불가하니, 의금부(義禁府)로 하여금 옥 맡은 관리들을 단속하게 하라.” “刑曹囚申宗禮受訊杖一次而死。 漢城府檢屍入啓, 傳曰: “人命至重, 近來刑訊一次, 死者頗多。 無奈用不校之杖而致然歟? 且如不用意救療而殞命, 則亦不可, 其令禁府, 劾典獄官吏。 今後, 刑杖校正事, 其申勑用刑各司。”라는 예문이 있다.

원문에서는 ‘구료(救療)’라고 쓰고 있는데 국역본에서는 일본말 ‘가료’로 번역하고 있다. 치료라고 해도 좋으련만 구태여 일본말 ‘가료우’로 국역한 까닭을 모르겠다. 물론 치료(治療)라는 말은 조선왕조 때도 쓰던 말이다. 세종실록 3권, 1년(1419)에 보면 ‘상왕이 두 어깨가 몹시 아프므로, 날도 가리지 않고 곧 의원 박윤덕(朴允德)으로 하여금 뜸질을 하게 하므로, 영의정 유정현·참판 이명덕 등이, “뜸질을 하지 마시고 온천에 가서 치료하시라.” 고 청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병이 심하여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라는 기록이 보인다. 병이 나면 치료(治療)해야 하지만 ‘병을 고치다’라는 우리 토박이 말도 있음을 기억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