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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 속에도 웃음이 있다


‘감방’ 속에도 웃음이 있다


20년을 하루같이 감방으로 출근하는 교도관인 저자가 감방 안 사람들의 회한과 감방을 지키는 교도관들의 감방 생활을 진솔하게 엮은 산문집으로 감방 안에도 감방 밖의 삶과 다르지 않은 눈물과 웃음이 있는 인간적인 곳임을 보여주고 있다

감방이란 예문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별의별 감방 이야기가 다 나온다. 심지어는 감방을 지키던 사람의 책도 나왔다. 감방이라 써놓고 ‘감빵간다, 감빵살이....’ 같은 된소리로 발음하는 감방은 ‘간보우’라는 일본말에서 왔다.

일본국어대사전 ≪大辞泉≫에는 ‘かん‐ぼう【監房/檻房】:刑務所や拘置所で囚人を入れておく部屋。’라고 풀이하고 있다. 번역하면 형무소나 구치소에서 죄인을 가두는 방이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감방(監房) : 교도소에서 죄수를 가두어 두는 방. ‘수용실(收容室)’로 순화. ≒사방(舍房)ㆍ옥방(獄房).’이라고 되어 있다. 죄지은 사람을 인위적으로 가두는 방이 감방인 것이다. 기왕에 순화할 바에는 ‘가둠방’ 같은 우리말로 순화하라 할 것이지 한자말로 순화하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감방’하면 아무래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순사들이 우리 겨레를 가둘 때 많이 쓰던 말이다. ≪개벽≫ 제16호 1921년 10월 18일 자 “전도부인(傳道婦人)과 간수(看守)”에 보면 일제는 요즈음으로 치면 별것 아닌 일에도 우리 국민을 감방에 집어넣었다.

“어떤 곳 留置場에 어떤 傳道婦人 하나가 들어왓다. 그 婦人은 들어오면서 곳 巡査에게 이러한 말로써 톡톡히 건네인다. 나는 한우님의 福音을 傳하는 責任者이니까 이런 곳에는 못들어가겟소. 時間이 바뿌니까 곳 가야겟소. 이리노아요. 왜이리 無禮하게 구오…」라고. 이말 끄테 巡査는 성이 와락 나서 눈에 殺氣가 騰騰하면서 큰 소리로 「나-니나마잇기유아 빠가 하야꾸이레-」하고 監房門을 왈칵 열어재치며 婦人의 등을 탁 밀처 드리친다. 婦人은 들어오면서 곳 꿀어 엎드리며 「한우님 아부지시어 저의들 모든 한우님의 뜻을 거스리는 者를…」하고 祈禱를 올린다. 巡査는 다처던 門을 다시 왈칵 열어 재치며 목이 째어저라 하고 「다맛데오레 빠가-」하며 대막대기를 내어두른다. 그러나 婦人은 如前히 「한우님 아버지」를 찻는다. 巡査는 말로는 어쩔 수 업는지 대막대기로 그 婦人의 등을 후려갈긴다. ”

1921년 문장이라 읽기가 쉽지 않겠지만 원문 그대로 실어 보았다. 맞춤법 통일안이 1933년에 나와서 지금처럼 읽기 편한 한글이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위 예문에서 보면 부인을 감방에 가둔 것은 ‘복음 전도’ 죄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대막대기로 부인을 때리는 일본순사의 악랄한 모습이 눈앞에 전개된다. 감방에 얌전히 들어가 심한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아야 했던 겨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감방이란 특히 ‘한국독립운동사자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국내외항일운동문서’, ‘반민특위조사기록’ 같은 자료에 자주 등장한다. 걸핏하면 잡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보우’란 일본말 감방을 해방 65주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이어 받아써야 하는지 묻고 싶다. 사람을 가두는 방이니까 ‘가둠방’이라 해도 좋겠는데 더러는 저항을 느낄 사람도 있을 듯싶다. 우리의 좋은 말을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