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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장 만들어 시집보내던 겨레가 웬 '단스' 타령?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20)]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우리 겨레는 예부터 오동나무 장롱을 비롯하여 만든 재료에 따라 지장(紙欌), 자개장, 비단장, 화각장, 삿자리장, 주칠장(朱漆欌), 죽장(竹欌), 용목장, 화초장, 화류장, 먹감나무장 같은 멋스런 장롱을 집안에 두고 살았다. 또한 용도에 따라 버선장, 반닫이, 머릿장, 의걸이장, 문갑, 경상, 궤안, 뒤주, 고비 등 요즘 사람들로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다양한 가구를 대물림하며 사랑방, 안방, 부엌에서 제 빛을 발했다. 그러던 것이 침대 따위가 들어오면서 집안 가구들도 하나둘 바뀌기 시작했다.


“아기옷 수납용으로 4~5단짜리 단스를 저렴한 가격에 사고 싶어요. 출산일이 며칠 남지 않은 예비 맘이예요. 새것으로 사 주고 싶지만, 지금 형편상은 그것도 넘 무리이고, 혹시 댁에 비교적 깨끗한 단스 하나 있으시면, 착한 가격에 주실 분 계시나요?”-다음 중에서-


중고품이라도 좋으니 태어날 아기를 위한 ‘단스’를 사고 싶다고 올린 예비엄마의 글을 발견했다. 갓 태어난 아기옷장이라면 새것을 사는 엄마들이 대부분인데 중고품이라도 사려는 마음이 예쁘다. 예비 엄마라면 20~30대 나이가 아닐까?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할머니 세대도 아닌 신세대 주부가 ‘단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 한국에는 '붉은칠자개이층농'과 같은 아름다운 장농문화의 역사가 깊다. 이 이층농은 붉은칠을 한 뒤 자개공예기법으로 십장생과 당초문, 보배문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백동(白銅)장식을 달았다./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일본에 ‘단스’가 등장한 것은 도쿠가와막부 4대장군 때인 도쿠가와 이에츠나(徳川家綱, 1664~1673) 시대에 오사카에서 생겨난 것으로 그때까지 일본인들은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어 옷을 보관했다. 단스가 등장하면서 대나무 바구니 때보다 옷을 효율적으로 수납할 수 있게 되었으나 가격이 비싸 일반 서민들은 에도말기나 되어야 이용할 수 있었다.


‘단스’는 처음에는 ‘担子(단자)’라는 한자를 써서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만들었으나 에도시대(1603~1868)에 서랍식이 등장하여 크기가 커졌고 한자도 ‘簞笥(단사)’로 바뀌었는데「簞」은 소쿠리 ‘단’자이고 「笥」는 상자 ‘사’자다. 곧, 한자말 단사에서 단스(たんす、tansu)로 불리는 오늘날의 서랍장이 된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가구 파는 곳을 쉽게 볼 수 없다. 오시이레(押入れ)라고 해서 붙박이장을 집집마다 설치 해놓은 관계로 별도의 가구가 필요 없기도 하거니와 집안이 좁은 관계로 변변한 가구를 들여 놓을 형편이 안 된다. 한국 같으면 가구단지라 해서 여기저기 수도권 외곽에 밀집되어 있지만 일본에서는 가구상가를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일본 최대의 가구회사라는 오오츠카가구(大塚家具)의 도쿄 아리아케(有明)가구 전시장에 갔을 때 다양성이나 디자인 면에서 한국의 가구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초라함에 놀란 적이 있다. 초라하다는 표현이 거슬리면 소박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가구라 해도 집안에 있는 붙박이 보조용이므로 크기나 규모도 작은 것들이 많았다.


오시이레란 요즈음 한국의 붙박이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예전에 한국의 벽장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이러다 보니 오시이레 안에 양말이나 속옷 같은 것을 따로 보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본 집에 맞게 서랍장이 있는 키 낮은 가구로 만든 것이 ‘단스’다. 우리말로는 서랍이 많이 달렸으므로 ‘서랍장’이라 하면 좋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단스가 없다. ‘단스’를 실어달라는 뜻이 아니다. 전단을 뜻하는 ‘지라시(<일>chirashi[散]):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쪽지. ‘낱장 광고’, ‘선전지’로 순화’는 있으면서 ‘단스’는 없으니 하는 말이다. 차라리 실어주고 ‘단스: 서랍장을 뜻하는 일본말’이라고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면 ‘지라시(찌라시)’도 빼버리든지 말이다.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요즈음은 한 분야에 입문하여 10년만 공부해도 “전문인”이 되는 세상이다. 일본어 공부 35년째인 글쓴이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풀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그거 좋다”고 하여 ‘국어사전 속 숨은 일본말 찾기’라는 부제의 책《사쿠라 훈민정음》을 2010년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 책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2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내친김에 일반인을 위한 신문연재를 하게 되었다. ‘말글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애정을 갖고 이 분야에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