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엄홍길’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히말라야 8,000m 14개 산을 오르고, 나아가 위성봉 얄룽캉, 로체샤르까지 더하여 히말라야 16좌를 오른 산악인 엄홍길! 그가 지난 6. 11. EBM 포럼의 강사로 와서 회원들에게 히말라야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회원들은 강연을 들으면서 엄홍길씨가 들려주는 16좌를 오르는 동안의 도전정신, 동료를 잃은 슬픔,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에 같이 웃고, 같이 아파하였지요. 강연이 끝난 후 현장에서 엄홍길씨의 수필집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를 샀습니다. 엄홍길씨는 히말라야 16좌에서 내려온 이후에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하여 가난한 나라 네팔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어주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산사나이가 단순히 산에만 눈길을 두지 않고, 이렇게 산 아래에서 따뜻한 휴먼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니, 엄홍길씨야말로 진정한 산사나이라고 하겠습니다. 머릿글인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오른다’에서 엄홍길씨가 그러한 휴먼정신으로 나아가게 된 동기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8,000미터의 산을 서른여덟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친절하게 자신을 설명하는 법이 없었기에 그를 찾아가는 길은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문은 끝이 없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없이 문을 열었지만, 아직도 나는 문 앞에 여전히 서 있다.” 이는 허연 시인의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속초 설악산책(雪嶽山冊) 도서관 입구에는 들어서자마자 눈에 확 띄는 곳에 책 표지를 앞으로 해서 세워둔 테이블이 있다. 이곳에 드나든 지 보름이 넘었지만, 책을 읽으러 온 것이 아니라서 그냥 무심히 지나치다가 오늘 불현듯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에 시선이 꽂혔다. 표지에 영어로 ‘KAWABATA YASUNRI’라고 쓰여 있는 바람에 활자의 의미를 새기지 않은 채 ‘웬 영어책을 진열했나?’ 싶었다. 보름 동안 이 책이 내 시야에서 ‘영어책’으로 여겨졌다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책 장을 넘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보지 못한 무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머리를 숙여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 목덜미에 삼나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의문당(疑問堂). 추사가 유배 시절 대정향교에 써 준 현판이다. 현판을 지그시 바라보면 학문하는 자는 매사에 의문을 가지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대학자의 엄하고도 따뜻한 격려가 느껴져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게 된다. 그러나 문득, 추사의 인생에 불어닥친 거센 풍파가 머리를 스친다. 이것은 과연, 권학문(勸學文)에 관한 것인가. 추사가 평생 고관대작으로 부귀를 누렸다면 그것이 가장 유력한 해석이겠다. 그러나 추사는 혹독한 유배 시절을 거치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현판에는 훨씬 더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라는 이름의 책은 제주대 교육학과 양진건 교수가 유배문화를 연구하며 쓴 학술서 겸 교양서이다. ‘추사 인생 톺아보기’라 할 수 있는 이 한 권을 읽으면 그가 어찌하여 유배됐으며, 섬에서 보낸 8년 3개월의 시간은 어떠했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지난한 세월을 견뎠는지 충분히 그려볼 수 있다. 교육학 전공자인 저자에게 유배문화는 낯선 주제였지만, 유배문학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국문화의 아름다움, 그것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써진다. 저자는 이런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녔다. 또,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움을 더없이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필력도 갖췄다. 글쓴이 정목일은 이처럼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과 그것을 표현하는 필력을 두루 갖춘 서정수필의 대가다. 그는 197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한국의 아름다움을 곡진히 풀어내는 서정수필을 써왔다. 그래서 펴낸 책도 여럿이다. 《한국의 아름다움 77가지》, 《나의 한국미 산책》에 이어 이번 책 《맛 멋 흥 한국에 취하다》까지, 일상에서 만나는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특유의 섬세한 안목으로 꾸준히 포착해왔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한 송이, 도자기 한 점, 병풍 한 폭에 담긴 지극한 아름다움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1장 ‘한국 문화재의 미’, 2장 ‘한국의 생활미학’, 3장 ‘한국의 춤’, 4장 ‘한국의 꽃’, 5장 ‘한국 계절의 미학’, 6장 ‘달빛 서정’의 여섯 가지 주제로 한국미의 다양한 면모를 두루 보여준다. 1장 ‘한국 문화재의 미’에서는 달항아리, 백자와 홍매, 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치열했다. 고단했다. 그리고 잔혹했다.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투쟁이었다. 한 나라의 군주가 된 후에는 무궁한 영광과 환희에 가득 찬 나날이 이어질 것만 같지만, 실상은 가혹한 왕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왕은 왕실 어른과 왕비, 후궁, 세자와 같은 가족에서부터 사관, 신하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사생활 역시 국가대계와 직결되는 공적인 영역이었기에 감시 어린 눈길이 따라다녔고, 성리학 군주의 이상에 따라 언제나 완벽할 것을 요구받았다. 왕도 결국 인간이다. 그런 중압감을 오랜 시간 감당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좋은 음식과 약재에도 조선왕의 평균 수명이 약 47살로 그다지 길지 않았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저자 조민기는 《조선 임금 잔혹사(책비)》를 통해 왕들이 겪어야 했던 잔혹하리만치 거센 압박감을 묵직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서사로 풀어낸다. 저자는 특히 조선의 왕들이 어떻게 왕위에 올랐는지에 주목한다. 왕위에 오르게 된 경위 자체가 재위 중의 치세나 후계 선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젊은 베르테르의...술품?” 그렇다. 젊은 베르테르는, 슬프다 못해 술펐다(?). 슬픈 나머지 술을 퍼마셨다고 볼 수도 있겠다. 베르테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기발한 제목 덕에 이 책을 펴들게 된 것도 사실이다. 베르테르가 술 푸겠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이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우리 술의 매력을 베르테르와 같은 젊은 청년의 감각에 걸맞게 요모조모 풀어낸 책이다. 가객 김창완과 전통주 전문가 명욱이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꼭지에서 2년 동안 주고받은 우리 술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우리 술 입문서로 손색이 없거니와, 내용도 알차다. 1부 <술에 대해 궁금했던 모든 것>에서는 술의 어원과 유래부터 술의 역사까지 두루 다룬다. 발효주와 증류주의 차이,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술 문화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3곳 등 우리 술 전반에 대한 기초 지식을 알차게 담았다. 2부 <전통주 만나러 가볼까?>에서는 조선 3대 명주인 감홍로와 이강주, 죽력고에 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오랜만에 외국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격조 높은 한국문화 책을 만났다. 전통공예를 다룬 좋은 책을 여럿 출판한 ‘수류산방’에서 ‘18세기 조선의 일상과 격조’를 부제로 펴낸 《한국전통공예(Traditional Korean Crafts)》 책이다. 물론 한국 전통공예를 다룬 외국어책은 많지만, 이처럼 귀빈에게 선물하기 좋은 ‘명품’ 느낌의 책은 흔치 않다. 일단, 책이 아름답다. 격조 높은 도록을 연상케 하는 붉은 표지와 넝쿨무늬를 닮은 특색있는 띠지는 첫눈에도 이 책이 품은 고아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낸다. 이렇듯 책인 듯 도록인 듯, 묘한 느낌을 자랑하는 이 책의 정체는 사실 도록이다. 2007년 7월 19일부터 8월 27일까지 한국공예문화진흥원과 주 국제연합 대한민국대표부의 공동 주관 아래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전시 <Traditional Korean Crafts>에 출품된 공예품을 담았다. 출품작들은 각 분야에서 수십 년간 헌신한 한국 최고의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들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지방 무형문화재, 명장, 전수자 등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최고의 장인들이 으뜸 기량을 발휘해 만든 최고의 작품들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중에서 물고를 당했다’ *삼성국문; 의정부, 사헌부, 의금부의 관원들이 함께 패륜을 범한 죄인을 국문하던 일 소설의 실마리는, 《조선왕조실록》에 쓰인 여덟 줄이었다. 이 사건은 단 한 번, 효종 1년(1650년) 2월 27일 기사에 등장한다. 주인을 살해한 죄로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사했다는 기록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종이었던 범인이 자신이 한 남자를 찔러 죽인 것은 자복했으나, 그 남자가 자신의 주인인 것은 한사코 부인한 사실이었다. 작가 김별아는 이 대목을 수상히 여겼다. 그래서 《승정원일기》로 눈을 돌려 효종 즉위년(1649년) 11월 6일부터 사건에 관해 언급한 기사 40여 개를 찾아냈다. 조정에서 단순 살인사건을 이토록 여러 차례 다룰 리는 없기에, 그녀는 작가 특유의 ‘촉’을 발휘해 앙상한 사실의 뼈대에 풍부한 상상력을 덧댔다. 이 책 《구월의 살인》은 이렇듯 한 줌의 기록에서 탄생한 역사추리소설이다. 사실, 책장이 쉬이 넘어가진 않는다. 형사사건에서 쓰던 전문용어가 워낙 많고, 역사소설 특유의 예스러운 문체가 눈에 익을 때까지 시간이 걸린 탓이다. 그러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재밌다. 소리없이 웃긴다. 이토록 재기발랄한 글을 마주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얼마간의 진지함이 섞여 있으면서도, 읽을수록 피식피식 웃음이 배어 나오는 이런 글은, 오히려 완전히 진지하거나 완전히 웃긴 글보다 훨씬 더 쓰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면에서,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지역 축제’를 소재로 이토록 ‘조곤조곤 웃기는’ 글을 써낸 김혼비ㆍ박태하 부부에게 박수를 보낸다. 헌데, 이들은 어찌하여 전국 축제를 두루 유람하게 된 것인가? 그 시작은 ‘K스러움’의 근원을 파헤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요즘 풍년인 각종 ‘K-’에 대한 저자들의 감상, 곧 ‘끈적끈적함’과 ‘매끈함’이 엉거주춤 결합한 ‘K스러움’을 탐험하기에는 한국의 지역 축제가 제격이라는 판단이었다. 책의 서문에서 밝히는 이 유람의 공식적인 동기는 이러하다. …술을 먹으면 ‘한국 사람들은 왜 이럴까’와 ‘한국이라는 공간은 왜 이럴까’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여기서 ‘이렇다’는 긍정적ㆍ부정적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그것은 곧 어떤 종류의 끈적끈적함과 어떤 종류의 매끈함이 세련되지 못하게 결합한 ‘K스러움’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곤 했다. 우리는 그 ‘K스러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자신만의 서재 갖기,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일이다. 서재를 꾸리고, 이름을 붙이고,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흠뻑 느끼는 방법도 없다. 그러나 막상, 그런 공간을 정말로 가진 이는 매우 드물다. 다들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서가를 채울 책이 충분치 않아서, 서재를 꾸릴 시간이 없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서재 만들기를 주저하거나, 막연한 동경의 대상으로 남겨두곤 한다. 이렇듯 ‘서재’라는 공간은 여전히 일상의 영역으로 편입되지 못한 채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독서와 사색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나아가 인생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면 서재, 한 번쯤 만들어볼 만하지 않을까? 새삼 ‘서재’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해 줄,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을 찾았다. 어린이책으로 나왔지만, 어른이 읽어도 깊은 깨달음을 얻기에 손색이 없는 이 책 《최고의 서재를 찾아라》가 이번 주의 주인공이다. 조선을 빛낸 8명의 지식인이 자신만의 서재를 꾸리게 된 과정, 그리고 그 서재가 자신의 삶에 가져온 변화를 담담히 회고하는 방식이다. 책은 ‘최고의 서재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