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정노식(鄭魯湜)이 쓴 《조선창극사》는 원래 저자가 발표했던 「조선광대의 사(史)적 발달과 그 가치」라는 글을 보완, 증보해서 1940년에 조선일보에서 펴낸 것이다. 저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시대 상황, 곧 1930년대는 판소리와 창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조선성악연구회〉가 결성되고, 김창환, 이동백, 정정렬, 김창룡과 같은 명창들을 중심으로 하는 25명의 약전(略傳)을 작성한 중요한 자료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래서일 것이다. 1964년 이후, 복각본이나 영인본이 나왔고, 얼마 전에는 정병헌이 교주(校註, 교정하여 주석을 붙임)한 《조선창극사》도 발행될 정도로 널리 활용되는 것이다. 또한, 이 자료집에는 이훈구, 임규(林圭), 춘원 이광수(李光洙), 김명식(金明植), 김약영(金若嬰) 등의 서문(序文)이 기재되어 있어 당시의 창극조(唱劇調)의 상황을 그림을 보듯 알게 해 주고 있다. 지난주, 이훈구의 서문은 읽어보았거니와 일제시대, 독립선언서를 일본 정부 요로에 전달했다고 하는 문인, 임규(林圭)의 《조선창극사》 서문(序文)을 확인해 보는 것도 당시의 창극조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가? 하는 점을 알게 해 주는 참고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 동편제 명창, 송흥록과 대구 감영(監營) 소속 명기(名妓) 맹렬(猛烈)과의 사랑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맹렬은 송흥록의 소리를 듣고, 후원자 겸 연인 관계가 되어 동거하게 되었으나 자존심이 강한 두 남녀는 자주 다투고, 헤어지는 상황을 연출했다는 이야기,《조선창극사》에는 “맹렬이 떠난다는 소리에 송흥록은 슬프고, 외롭고, 애달프고, 사랑스러우나 미운 감정을 여지없이 발로하게 되었고, 이때 문밖에서 듣던 맹렬도 동감의 정을 이기지 못했으며 이것이 그 유명한 자탄가(自歎歌)로 진양조의 완성을 이루게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조선창극사》라는 책은 일제의 폭거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1940년, 1월,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펴냈으며 저자는 정노식이다. 이 자료를 펴내기 2년 전인 1938년에 저자는 《조광》에 「조선광대의 사(史)적 발달과 그 가치」라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완하고 증보하여 1940년, 조선일보에서 2년 전인 1938년에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 책의 간기(刊記 판권지)에는 저작 겸 발행자가 방응모(方應謨)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도 발행인을 저자로 기록하는 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 또는 산조(散調)음악에 쓰이는 장단형 가운데 가장 느린 형태가 <진양 장단>이라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진양 1장단의 길이를 6박으로 볼 것인지, 6박×4장단으로 해서 24박으로 볼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진양 장단>의 완성은 동편제(東便制)의 명창, 송흥록이 그의 매부(妹夫)인, 중고제(中古制) 명창, 김성옥으로부터 진양조를 처음 듣고, 그것을 여러 해 갈고 닦아 완성에 이르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그 일부를 소개하였다, 송흥록은 1780년대 태어나서 180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판소리 동편제의 중시조(始祖)로 알려진 대명창이다. 특히 그가 진양조를 완성했다는 기록은 1940년,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비치고 있는데, 구체적인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맹렬’이라는 여인과 만나게 된 배경과 헤어짐 속에서 이루어졌던 이야기이다. 명창, 송흥록이 대구 감영에 소속되어 있는 명기(名妓)로 노래와 춤이 뛰어나다는 맹렬로부터 ‘미진한 부분이 있다’, ‘더 연습해야 한다(피를 더 쏟아야 한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 곧 수긍하기 어려웠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진양조와 중몰이의 장단형에 이어, 지난주에는 중중몰이, 자진몰이, 휘몰이 장단형들을 소개하였다. 각기 다른 4각(刻)이 1장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은 앞의 진양이나 중몰이와 같다는 점, <각>이라 함은 장단형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인데, 판소리 장단에서는 큰 형태의 개념보다는 작은 단위, 정확하게 말해, 부분적인 장단형을 의미하는 단위로 쓰이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는 진양 장단에는 6박형과 24박형, 두 종류가 쓰이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이어가 보기로 한다. 이미 이야기했던 것처럼 진양 1장단을 6박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있는가 하면, 한 장단을 24박으로 인식하는 쪽도 있다. 박의 수(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단형이 일정하게 반복하느냐 아니면, 각기 다른 형태로 짜여 있느냐 하는 점을 더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24박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작은 장단형(6박) 4개의 복합구성에서 제1각은 밀어주는 장단이어서 <미는 각>이라 부르고, 제2각은 달아 간다는 의미에서 <다는 각>, 제3각은 맺어 준다는 의미로 <맺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에 쓰이는 여러 형태의 장단 가운데서 가장 느리게 짜인 <진양 장단>과 진양보다 조금 빠른 <중몰이 장단>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중몰이 장단보다 더 빠른 중중몰이 장단형과 이보다 더더욱 빠르고 경쾌한 잦은몰이 장단, 그리고 더 빠르게 휘몰아치는 장단형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장단(長短)이란 “길고 짧은 시간의 조합”이라는 뜻이다. 판소리나 남도민요, 또는 민속 기악인 산조(散調) 음악의 경우, 가장 느린 형태는 진양 장단이다. 특히 산조음악의 경우, 느린 형태의 진양으로 시작해서 점차 빠른, 장단으로 몰아가는데, 그 빨라지는 느낌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각 장단의 명칭도 <중몰이>, <중중몰이>, <잦은몰이>, <휘몰이>, <닫몰이> 등, 00몰이, 00몰이로 그 변화를 짐작하게 만든다. 느린 형태의 <진양> 장단형과 중간 빠르기의 <중몰이> 장단형은 앞에서 악보로 살펴보았거니와 그 이후의 중중몰이 장단형, 잦은몰이 장단형, 그리고 휘몰이 장단형을 악보와 함께 소개해 보도록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 이야기는 우리가 추임새에 인색하다면, 매우 우울한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 고수의 추임새 한 마디에 긴장하던 소리꾼이 용기를 얻게 되고 객석에서도 공감하게 되는 것이 추임새의 효과라는 점, 추임새는 비단, 소리꾼과 고수와의 관계에서만 생겨나는 결과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사이 일상에서도 수없이 나타나는 에너지의 보충원이라는 점, 우리의 일상이 밝고, 명랑하게 바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추임새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 곧 소리꾼이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소리와 고수가 치는 장단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장단(長短)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길고 짧은 시간의 조합을 뜻하는 말이다. 판소리나 민요, 또는 민속 기악(器樂)에 쓰이는 산조음악의 장단 형태를 보면, 제일 느린 장단형이 바로 진양 장단이다. 이어서 중몰이 장단, 중중몰이 장단, 잦은몰이 장단, 휘몰이 장단으로 점차 빠른 형태의 장단이 쓰이고 있으며 그 밖에 엇몰이 장단이나, 드물게는 엇중몰이 장단 등도 쓰이고 있다. 제일 느린 형태의 ‘진양’ 장단에서부터 점차 빠르게 이어가는 중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수(鼓手)의 추임새가 소리판을 키우는 요건이라는 점, 고수의 적절한 추임새가 소리판을 성공적으로, 또는 실패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명고수 김동준은“소리꾼이나 잽이를 반주하며 추임새를 해 줄 때, 모두가 잘해서 저절로 추임새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을 경우도 허다하다고 전제하면서“ 안 좋은 걸, <좋다> <잘 헌다> 하는 것이, 여간 일이 아니란 명언을 하였다. 추임새는 소리꾼이나 연주자(演奏者)들에게만 적용되고 필요한 것일까? 무대 위에서 펼치고 있는 모든 소리꾼이나 차비(差備), 곧 잽이들은 그들의 일상 연주가 모두 훌륭해서 반주자나 객석으로부터 추임새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살펴야 한다. 간혹, 무대 위에서 긴장하는 연창자(演唱者)들은 여러 가지 조건이나 이유로 평소의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첫 발표회를 준비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긴장할 경우, 실력 발휘가 어렵고, 전문가 그룹의 관객이 자리 잡을수록 객석이 무섭고 두려운 법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과연 무대 위에 함께 올라 있는 고수는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수(鼓手)의 임무나 그 역할에 관한 이야기, 고수는 반주자로 창자의 소리에 맞추어 정확하게 장단(長短), 곧 박자의 조합과 강약(强弱)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러한 능력은 소리속을 훤히 꿰고 있지 못하면 불가능한 조건이라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고수의 추임새가 소리판을 키우는 매우 중요한 요건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고수가 정확하게 장단을 쳐 주고, 이와 함께 강약 처리를 잘한다고 해서 모두가 유명 고수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일까?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다. 그것은 바로 ‘얼씨구’, ‘으이’, ‘좋지’, ‘좋다’, ‘잘 헌다’ 등의 조흥사(助興詞), 곧 추임새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넣어 줌으로 해서 소리꾼에게 자신감을 가지도록 북돋아 주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때로 이를 소홀히 하거나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고수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명고수(名鼓手)의 대접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리꾼의 역할은 <춘향전>이나 <심청전>과 같은 긴 이야기를 소리와 장단, 그리고 다양한 대사와 발림(몸동작) 등으로 소리판을 이끌어가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수의 길로 들어선 송원조가 당시 이리국악원 총무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고법(鼓法)을 익히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의 북 실력이 점점 향상되면서 무대공연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익산에서 열린 판소리 대회, 북 부문에서도 장원에 올랐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고수(鼓手)의 임무나 그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소리꾼은 긴 이야기를 소리와 장단, 그리고 다양한 대사와 동작, 등으로 소리판을 끌어 나가는 역할을 하기에 매우 힘든 역할이고, 상대적으로 고수는 한 자리에 앉아서 소리에 맞추어 북을 치기 때문에 쉬운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첫째가 고수, 둘째가 명창이란 말, 곧 ‘일고수 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란 말이 널리 회자(膾炙)하는 것도 그만큼 고수의 역할이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대학신문에 “추임새, 에너지의 보충원(補充原)”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이 글에서 고수가 얼마나 어려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추임새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 하는 점을 피력했다, 비단 판소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 고법의 서울시 문화재’인 송원조 명인은 처음 최광렬에게 소리를 배웠으나, 소리보다는 북 치는 법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고법(高法), 곧 북가락이나 자세, 북에 대한 이론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을 잘 치기 위해서는 소리 길도 반드시 알아야 하므로 송원조는 판소리를 배우면서 고수의 길, 고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소리를 배우고 북을 배우던 시기는 당시 4.19학생운동, 5.16군사혁명 등, 나라 안팎의 정세가 평온치 않았던 시기였다. 그 영향일까? 그가 나가고 있던 <이리국악원> 사범들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자주 바뀌었으나, 최광렬을 비롯하여 강종철, 김동준, 주봉신, 이성근 등에게 소리와 북을 열심히 배웠다고 했다. 평소 송원조의 성실함이나 책임감을 간파한 국악원장 강점상이 하루는 그에게 국악원 총무 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총무가 되면 수업료를 내지 않고, 소리와 북을 배울 수 있었고, 게다가 국악원 내에서 살 수 있게 되는 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수강생이 아니라, 일정 부분 책임도 따르는 국악원의 간부가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 가운데서 뽑혔다는 점에서 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