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서울시는 국내에는 기념비 하나 남지 않은 독립유공자 ‘이범진, 이위종 열사’ 부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당시 이범진의 집터로 알려진 현 서울중앙우체국 자리에 기념 표석을 설치했다. 이범진 열사는 주러시아 초대 공사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애를 쓰다가 한일강제병합에 항거하여 자결했고, 이위종 열사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되어 대한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러시아에서 무장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범진, 이위종 독립유공자 부자는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는 등 업적을 인정받았으나,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순국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뜻을 기리는 기념비조차 국내에는 없는 상황이었다. 러시아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고종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이범진 열사의 무덤은 소련 당국의 묘지 정리로 멸실되었고, 이위종 열사는 시베리아에서 무장 투쟁 중 행방불명되어 이 부자의 유골은 현재까지 환국하지 못했다. 이범진 열사는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 항일 의병단체의 무장 독립운동을 돕고, 비공식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국권 회복에 힘썼다. 그의 아들 이위종 또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특사로 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제89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이 오는 8일(금) 낮 11시, 효창공원(서울 용산구, 삼 의사 묘역)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은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정수용) 주관으로 진행되며,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외부인사 초청 없이 기념사업회 관계자만 참석하는 자체 행사로 헌화 및 분향, 묵념의 순으로 간소하게 거행된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조국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고, 이를 통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침체된 항일운동을 되살리는 도화선이 됐다. 1932년 9월 30일 이 의사는 일본 도쿄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봉창 의사 주요 공적 (공훈록 자료) 이봉창 의사(1901.8.10~1932.10.10)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31년 1월 항일 독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고 밝혔다. 기우만ㆍ박원영ㆍ김익중 선생 모두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1896년에 일어난 호남지역 의병들이며, 호남지역 유학자인 노사 기정진(奇正鎭)의 학맥을 계승하여 서양 및 일제의 국내정치 개입을 거부하고 임금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장성,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먼저, 조부 기정진의 영향을 받은 기우만 선생은 전남 장성 탁곡에서 출생했으며, 호는 학정거사(學靜居士)ㆍ송사(松沙) 등이다. 선생은 1896년 2월 장성향교에서 처음 호남의병을 일으켰다. 장성, 나주에서 기반을 다진 선생은 광주에서 대규모로 의진(義陣)을 결집하여 회맹(會盟)을 하고 서울로 북상할 계획을 세웠으나, 임금의 해산 조칙으로 1896년 봄을 전후하여 해산했다. 선생이 일으킨 의병은 단발령의 철폐와 일제 축출, 개화 정책의 반대, 옛 제도의 복구 등을 내세웠다. 또한, 임금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체제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으며, 의병해산 뒤에는 의병의 정당성을 알리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친일재산 국가귀속법’이 노무현 정부 때 제정되어 실시되어 오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중단되었다. 김원웅 광복회장 취임이후 친일재산 귀속작업에 다시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친일재산 찾기를 추진해온 광복회는 3일, 지난 한 해 모두 2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은닉재산 모두 171필지(면적 2,939,525㎡ 공시지가 520억 원, 시가 3,000억 원 상당)을 찾아내어 법무부에 국가귀속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광복회가 지난해 순국선열의 날에 국가귀속을 신청한 민영휘 등 한일합병 주모자들을 포함한 9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은닉재산 31필지(면적 2,218,670㎡, 공시지가 190억 원 상당)가 포함되어 있다. 광복회가 찾아낸 친일재산에는 동학농민운동을 말살하려고 청(淸)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일제하 중추원장과 헌병사령관을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일합병’에 이바지한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아 친일재산을 가장 많이 소유한 민영휘와 ‘한일합병’추진단체인 한국평화협회 회장을 맡은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은 민영소, ‘한일합병’을 주도하고 그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은 민영규 3명의 공동명의 친일재산 6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격렬한 투쟁성을 지녔던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무너지기 전부터 대대적으로 일어난 의병전쟁 등이 있었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 만주 등지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에 의해 독립군 항쟁으로 발전하는 등 해방되기까지 꾸준히 무장독립투쟁의 맥을 이어갔다. 이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의열투쟁이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온 인류에게 자유와 정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족 독립의 대의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일어난 무력적 투쟁이다. 이러한 인류공영의 투철한 목적성을 토대로 진행된 의열투쟁이 단순히 개인 또는 일부 집단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자행한 테러와 명확히 구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경북 안동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난 추강(秋岡) 김지섭(金祉燮, 1884~1928) 선생은 거의 반평생을 민족의 해방을 위한 의열투쟁에 헌신한 독립투사였다. 그는 팔련오계(八蓮五桂)로 유명한 풍산김씨 오미마을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 숙부인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 1845~1914)에게 한학을 공부했다. 김병황은 당시 한학자로서 명망이 높았고, 의병이 일어날 당시 풍산김씨 문중을 대표하여 의병을 지원하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021년 새해를 맞아 김원웅 광복회장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신년인사를 했다. 김 회장은 신년사에서 ‘해방 이후 우리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친일 미청산에 기인하며, 현재 우리사회의 갈등은 친일반민족세력의 부당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저항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우리 사회의 지배구조는 위험할 정도로 기형화, 노후화 되어 있고, 우리세대에 친일청산에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애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다음 세대에게 절망을 넘겨주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김 회장은 ‘지금 우리가 친일반민족세력에게 무릎 꿇으면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라고 물으며, 독립운동 후손들이 모인 광복회가 친일청산에 앞장서는 것이 선열들의 뜻을 이어받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광복회가 올해 해나갈 일들을 명시했다. 특히 친일ㆍ친나치 행위로 얼룩진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에 대한 역사적 심판과 함께, 변화된 시대정신이 담기고 부르면 부를수록 우리 국민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국가(國歌)제정’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광복회가 조성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또 새해는 조선의열단 박재혁 의사와 대한광복회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장기간 서울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중이신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께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새해 덕담을 써주셨다. "행복하세요, 가화만사성" 이라는 덕담이다. 손에 힘이 빠져 펜을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희옥 지사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들을 위해 덕담을 써주고 계신다. 지난 성탄절에는 대국민을 위로하는 '2020 코리아 퍼레이드' 방송에서 '다시 일어선 대한민국을 기대합니다'란 덕담을 써주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바 있다. 소띠해를 맞은 올해 95세이신 오희옥 지사께서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곁을 지켜 주시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는 누구인가?】 오희옥 지사는 할아버지대(代)부터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일가’에서 태어나 1939년 4월 중국 유주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第5支隊)에서 광복군으로 활약했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오희옥 지사 집안은 명포수 출신인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1867~1935), 중국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아버지 오광선 장군(1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레미제라블이 프랑스 소설이라면, 뮤지컬 페치카는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 실화다" 이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그린 뮤지컬 <페치카>를 잘 대변하는 말이다. 어쩌면 이는 프랑스의 레미제라블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대한민국의 <페치카>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전문예술단체 "랑코리아"의 창작 뮤지컬 <페치카>는 시베리아에서 대한민국을 지킨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디아스포라 인간승리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일생을 다룬 <페치카>를 만든 예술총감독 주세페 김은, "<페치카>를 무대에 올리는 일에 대해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 했습니다.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재형이 그랬듯이 우리도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 갈 것입니다." 라는 각오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열악한 재정 속에서도 오로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알리는 뮤지컬 작업에 혼신을 다 불어 넣어 만든 <페치카>는 3.1운동 100주년, 최재형 선생 서거 100주년을 맞아 무대에 올랐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더 이상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11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안동지역 출신 인물들 가운데는 단연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1878~1937) 선생을 빠트릴 수 없다. 그는 1878년 경북 안동 임하면 소재의 내앞마을[천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 호는 일송이며, 본명은 긍식(肯植), 이명으로 종식(宗植)을 쓰기도 했다. 내앞마을은 의성김씨 입향조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후예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약 600여 년 동안 무수한 명망 있는 학자ㆍ관료를 배출한 안동지역 명문이자 유교문화의 산실로 평가된다. 또한, 이곳은 세계 식민지해방운동사에서도 우뚝한 경북 안동인의 독립운동 흔적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마을이기도 하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한말, 이들은 의병항쟁에 뛰어들기도 하고, 특히 보수적인 기조가 강한 이 지역에서 신식학문을 받아들이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던 이른바 “혁신유림”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안동지역 첫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인 협동학교가 1907년 이곳에 설립된 바탕에는 초대교장을 역임한 대종가 종손 김병식(金秉植), 자신의 거처를 교실로 희사한 김대락(金大洛), 협동학교의 설립 주체로서 혁신유림으로 평가되는 김후병(金厚秉), 김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 “제가 특별히 한 일이 있겠습니까? 일제가 임청각을 훼손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한 지 80년 만에 철거하게 된 것은 오로지 임청각에 대한 많은 분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가능했던 것이지요.” 이는 안동 임청각의 증손인 이항증(79세) 선생이 전화 통화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일제는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의 정기를 끊고자 1942년 2월 중앙선(청량리-안동) 철로를 부설했다. 안동역으로 가는 직선코스를 놓을 수 있었음에도 일제는 일부러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우회 철로를 놓았던 것이다. 민족의 자존심이던 임청각 집 앞에 철로를 놓아 밤낮으로 굉음을 울리게 하던 그 ‘징그러운 괴물 열차’는 지난 16일(수)밤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하고자 임청각에서는 마지막 열차가 도착한 16일(수) 밤 7시 30분, 안동역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고 다음날일 17일(목), 임청각에서 조상에게 고하는 고유제가 열렸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임청각에 드리운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행사’에 참여하여 지난한 세월 속에서 묵묵히 버텨온 임청각의 꿋꿋함에 크게 손뼉을 쳐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