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 강원도지부(지부장 이종호)는 6일 김원웅 광복회장과 강원도교육청 강영상 기획조정관을 비롯하여 신문수 인제초등학교 교장과 재학생, 학교관계자, 도내 광복회원들과 유관기관장 2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인제초등학교 교정에 독립운동 요람 안내판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했다. 이날 김원웅 광복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3·1운동은 세계 약소국들이 제국열강에 대하여 독립을 요구하는 시발점이 되어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한 비폭력 독립운동이었다. 무엇보다 미래 세대들이 자라나는 초등학교에서 이 학교 출신 독립운동가의 독립운동 활동을 알려 선열들을 기리고 본받으려는 노력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학생대표가 만세독립운동을 하신 선배에게 드리는 글에서 다짐한 것처럼 우리나라가 평화통일을 이룬다면 세계를 선도하는 초일류국가가 될 것이다. 따라서 독립운동 정신이 계승될 수 있도록 일선 학교 독립운동 안내판 설치가 전국으로 확산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또한 강원도교육청 기획조정관은 축사에서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이분들의 정신과 신념을 자라나는 학생들이 잘 보고 계승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원용(1896~1976)ㆍ전경무(1898~1947)ㆍ심영신(1882~1975)ㆍ민함나(1888~1952) 선생을 ‘2021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고 밝혔다. 네 명의 선생은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연합단체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이끈 주역들로,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과 외교활동으로 독립을 지원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독립운동을 위해 미주지역 한인사회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자 미주 한인대회가 열렸다. 이에 미국 본토, 하와이, 멕시코, 쿠바의 재미한족 9개 단체 15명 대표가 1941년 4월 19일부터 5월 1일까지 13일 동안 미국 호놀룰루에 모여서 해외한족대회를 열어 결의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독립운동 단체를 통일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라는 연합기관을 설치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미국 본토에 집행부를 하와이에 의사부를 두는 이원체제로 운영했고, 하와이 의사부의 영문서기로 김원용 선생을 선출했으며, 중국 충칭(重慶)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하고 미주 한인단체와의 긴밀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은 어제(31일) 광주 시립미술관 강당에서 열린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토크쇼를 통해 일본정부의 역사왜곡 교과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은 “일본은 역사정의를 외면하고 거칠게 역주행하고 있다. 최근 일본정부는 교과서 검증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거짓 역사를 주입시키고 있다”라며 “우리는 일본에 대한 기대를 접겠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역설적으로 우리는 일본이 과거청산을 끝까지 거부하길 바란다. 오히려 잘 됐다”라면서 “일본이 역사왜곡을 끌어안고 침몰하는 길, 망하는 길로 치닫고 있다. 일본의 이런 모습은, 독립운동가들의 피맺힌 통한을 풀어주는 길일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 김원웅 광복회장의 발언내용 전문 일본은 역사정의를 외면하고 거칠게 역주행하고 있다. 최근 일본정부는 교과서 검증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거짓 역사를 주입시키고 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한 기대를 접겠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일본이 과거청산을 끝까지 거부하길 바란다. 오히려 잘 됐다. 일본이 역사왜곡을 끌어안고 침몰하는 길, 망하는 길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의 모습은 독립운동가들의 피맺힌 통한을 풀어주는 길일 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인 최정철·김구응 열사 무덤 주변에는 붉은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어제(4월 1일) 찾은 병천면 가전리의 모자(母子) 무덤에서는 102년 전, 아우내장터의 만세함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뜻깊은 이날을 기려 무덤에서는 천안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최정철(1995. 애국장), 김구응(1991. 애국장) 열사 모자의 추모비 제막식이 있었다. 흔히 아우내 만세운동이라고 하면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지만 102년 전 4월 1일,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제 순사의 총검에 의해 현장에서 순국의 길을 걸은 모자(母子)가 있다. 바로 어머니(최정철. 당시 66세)와 아드님(김구응, 당시 32세)이 그분들이다.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은 모자는 가전리 산 8-6번지에 묻힌 채 지난 100여 년간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천안군 병천시장에서 의사(義士) 김구응이 남녀 6400명을 소집하여 독립선언을 할 때 일본헌병(일경)이 조선인의 기수(旗手, 행사 때 대열의 앞에 서서 기를 드는 일을 맡은 사람, 곧 조선인들)를 해치고자 했다.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이를 막느라 피가 낭자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31일, 광주 시립미술관 강당에서 열린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토크쇼에 앞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구술집을 낸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에게 ‘역사정의실천 시민운동가 상’을 시상했다. 이날 김원웅 광복회장은 “한국사회의 모순의 핵심은 친일 미청산이다. 친일청산 없이는 국민통합을 할 수 없다. 독립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친일잔재청산에 앞장 서온 이국언 대표는 우리시대 독립군이다”라고 밝혔다. 수상자 이국언 대표는 지난 2009년 한국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시민모임’을 광주에서 처음 결성하고, 광주를 시작으로 전남ㆍ서울ㆍ경기ㆍ인천ㆍ전북ㆍ경남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조례 제정에 앞장서 왔다. 또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원고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으며, 2019년 4월, 2020년 1월, 광주전남의 일제노무동원 피해자와 유족 87명이 일제 전범기업 11곳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해 오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저 서구열강을 보라. 학술의 발달이 저 같으며 도덕의 진보가 저 같으되 그 나라가 기운차게 일어나 날로 강성해가니 이는 그 문화가 동양 고대처럼 인민을 몰아서 전제하(專制下)에 굴복하게 하던 문화가 아니라 자유를 구가하며 모험을 숭상하는 문화인 까닭이니 한국의 뜻있는 군자여! 자국 고유의 장점을 보존하며, 외래 문명의 정화(精華)를 채취해서 신국민을 양성할만한 문화를 진흥할지어다.” 이는 월남 이상재 선생이 ‘대한매일신보’ 1910년 2월 19일 자에 쓴 ‘문화와 무력’이란 제목의 논설 일부입니다. 내용을 보면 국수주의나 사대주의가 아닌 우리 고유문화의 장점 위에 다른 문명의 우수한 것을 더하여 국민을 이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자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도 진정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일 것입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일본의 거물 정치인 오자키가 찾아왔을 때, 뒷산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편 뒤 '우리 응접실'에 앉을 것을 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오자키는 일본으로 돌아가 “조선에 가서 무서운 영감을 만났다. 그는 세속적인 인간이 아니라 몇백 년 된 소나무와 한 몸인 것처럼 느껴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27일 오전, 독립유공자 윤현진 선생 서거 100주년을 맞아 윤현진 선생의 모교인 부산 구포초등학교를 방문하여 동상 제막식과 교내에 기념식수를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원웅 광복회장, 윤현진 선생의 손녀 윤 정 유족, 전재수 국회의원, 김석준 부산교육감,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 김선자 구포초등학교 교장, 김민선 학부모 회장, 구포초등학교 재학생들과 부산 경남 광복회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윤현진 선생(1892.9.20~ 1921.9.16,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은 경상남도 양산 출신으로 1906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명치대학교 법과에 입학 법률공부를 하였으며, 재학 중 조선유학생학우회를 조직하고 총무로 선임되어 항일투쟁을 하였다. 졸업한 뒤 귀국하여 1909년에는 백산 안희제 등과 비밀결사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한편, 양산에 의춘학원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 때는 고향에서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 활동하고, 압록강을 건너 단신 상해로 망명하였다. 선생은 그곳에 모인 독립지사 수십 명과 교류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시영ㆍ이동녕ㆍ김구ㆍ노백린ㆍ여운형ㆍ신익희 등과 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오늘(26일) 전남 여수를 찾아 14살 최연소 독립유공자인 주재년 열사의 묘소를 참배했다. 광복회는 또한 김원웅 광복회장과 전라남도 여수교육지원청 김해룡 교육장, 여수 돌산초등학교 조재익 교장, 전남동부보훈지청 김영진 지청장, 김종원 돌산읍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최연소 독립운동가 주재년 열사의 모교인 여수 돌산초등학교 교정에 기념식수를 했다고 밝혔다. 이날 김 회장은 이날 주재년 열사의 모교인 여수 돌산초등학교에 열사의 공적을 기록한 표지석 설치를 제안했다. 한편 주재년 열사는 1살세의 소년으로 남다른 역사의식을 갖고 어른들도 하기 힘든 바위에 글자를 새겨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주창하였다. 일제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자, 스스로 자신의 정의감으로 감행했다고 밝혀 투옥되었고,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14살의 짧은 생을 마쳤다. 주재년 열사(1929.1.28~1945.11.14,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는 1943년 3월 여수군 돌산면 공립국민학교 제6학년을 졸업하고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그는 국민학교 재학시절부터 항일의식이 투철했다. 1942년 음력 12월 초순 무렵, 그의 형 재연(在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의 병세가 심상치 않게 감각되오. 만일 내가 살아난다면 다행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우리 동포에게 나의 몇 마디 말을 전하여 주오. 첫째, 독립운동을 하려면 전 민족적으로 하나 되어야 하고, 둘째, 독립운동을 으뜸 운동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위하여는 어떠한 수단 방략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이고, 셋째,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 전체에 관한 공공사업이니 운동 동지 간에는 사랑과 미움이나 친하거나 친하지 않음의 구별이 없어야 합니다.” 이 말은 1923년 오늘(3월 2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된 박은식(朴殷植, 1859~1925) 선생이 1925년 11월 1일 67살을 일기로 숨을 거두기 직전 동포들에게 고한 말입니다. 박은식 선생은 황성신문 주필, 독립신문사 사장으로서 애국계몽운동을 하였으며, 1925년 3월 21일 임시정부 의정원이 <임시대통령 이승만 탄핵안(臨時大統領李承晩彈劾案)>을 통과시킨 다음 3월 23일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특히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韓國痛史)》라는 한국근대사의 첫 번째 고전이 된 책을 쓴 분입니다. 《한국통사》는 한국근대사를 ‘국혼’이 담겨 있으면서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20일(토) 저녁 9시, 학생독립운동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쓴 박기하 애국지사가 93살로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박기하 지사는 1941년에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에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황취소년단’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한국독립과 민족단결’을 촉구하는 벽보를 붙인 사건 등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박기하 지사는 중앙보훈병원(서울 강동구)에서 임종을 맞았으며,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1호실)에 빈소가 마련됐다. 이어 23일(화) 아침 8시 발인 뒤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6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박기하 지사가세상을 뜸에 따라 생존 애국지사는 23명(국내 20명, 나라 밖 3명)만 남게 되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나라를 되찾고, 지키고, 바로 세운 분들의 명예를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박기하(朴箕河) 애국지사 □ 공적 사항 ㅇ 박기하(朴箕河, 1928.01.06.~2021.03.20.) - 경기도 이천 출생 - 1941년 11월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리에서 “한민족이 일제의 압박에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