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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미국 떡갈나무 밑에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지 않아도 되는 때를 소망한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2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달 미국 여행길, 요세미티 공원 근처 어느 펜션의 앞 마당에 앉아있는데 조금 괴상하게 생긴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 옆 미루나무는 우리나라 것과 같은데 이 나무는 뭐지?

 

 

단풍나무 종류인가? 전에 살던 문래동 아파트단지에도 비슷한 잎 모양의 나무가 있던데... 단풍나무 종류가 아닐까, 하고 단풍으로 검색해 보니 노르웨이단풍이라는 것이 비슷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잎 모양이 달라도 매우 다르다. 그러면 뭘까? 궁금하던 차에 펜션에 비치된 컵에다 차를 따라 마시다가 옆을 보니 거기에 답이 있었다.

 

 

오크(Oak)나무였다. 오크통을 만드는 나무. 옛날 70년대에 많이 듣던 팝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의 오크나무. 이 나무의 잎이 이렇게 생겼고 이게 그 나무구나. 원 나도 참. 그렇게 이 오크나무란 이름을 긴 세월 듣고 지났는데 정작 그 나무와 나뭇잎을 나이 70이 넘은 이 가을에 미국 산골에 와서야 알게 되다니...

 

탄식과 자조를 겸한 한숨을 내쉬며 집 주위를 돌아보니 집집마다 입구 쪽에 이 나무가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 한국인들 시골집 주위에 감나무가 서 있듯이 미국인들 집 주위에는 이 나무가 있구나..

 

 

각 집 앞에 한두 그루씩 서 있는 것을 보니까 이 나무가 미국에는 많이 자라는 것을 알겠다. 그런데 잎 모양이 달라서 그렇지 잎이나 나무의 특성은 떡갈나무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과연 영어로 Oak를 검색하니 떡갈나무로 알려주는 데도 있다. 그런데 떡갈나무보다는 잎이 더 울틍불틍하고 나무의 키도 큰 편이다. 이 나무를 잘라 위스키나 와인을 보관하는 통으로 쓴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나무를 기억하는 것은 역시 젊을 때 들은 "노란 리본을 오크 트리에 매달다"라는 노래 때문이거나 또는 덕택이다.

 

토니 올란도 앤 돈이 1973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당시 젊은이들이 팝송을 즐겨듣는 분위기를 타고 많은 사랑을 받았고 필자도 뜻도 정확히 모를 채 흥얼거린 사람의 하나였다.

 

 

 

노래 가사는 감옥에 가서 3년 형기를 마친 남자가 고향집에 남아있던 부인(혹은 애인)이 자기를 받아줄까 걱정하며 받아줄 마음이 있으면 집 앞 오크트리에 노란 리본을 매어놓으라고 편지를 보내고 집으로 가면서, 나무에 리본이 없다면 자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버스로 그냥 지나쳐 갈 수밖에 없다며 초조해하는데 버스 기사와 승객들이 대신 확인해 보니 수백 개의 리본이 매어져 있음을 확인하고 기꺼이 집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그 노래가 발매된 지 마침 올해가 50년인데 미국의 한 동네 오크트리(떡갈나무) 아래서 그 잎을 처음 보고 나무를 제대로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원래 유럽에서는 옛 로마 시대에 화산폭발이 일어난 폼페이유적에서 노란 리본이 달린 나무 옆에 한 남자가 서 있는 벽화가 나왔다고 하니 일찍부터 노란 리본이 뭔가를 기다리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이고, 영국에서는 "그녀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라는 노래가 유행하던 것을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와서 미국에서도 즐겨 불러 널리 유행하게 되었는데 미국 남북전쟁 때 군인으로 나간 남편이나 애인을 기다리며 여성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노래로 사랑받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유래와 전통이 있었기에 1973년에 만든 이 노래가 미국을 넘어 세계인들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들까지도 좋아했을 것이다.

 

오크트리 떡갈나무에 매달던 노란 리본은 한국에서는 세월호의 갑작스러운 침몰로 숨진 300명이 넘는 학생과 선생님. 승객들을 추모하는 상징이 되었고 미국에서는 해외에 파병돼 나갔다가 숨지는 미군들을 추모할 때, 또 홍콩에서는 민주화 시위 때도 착용되는 등 추모와 저항의 상징이 되어왔음을 우리가 보았다.

 

이제 한국도 이곳 미국도 가을이 짙어지면서 오크트리 떡갈나무잎도 노랗게 변할 것이다. 가을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노란 계절이다. 이 계절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여전히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는 군인과 시민들,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유혈 피해... 지나간 세월호 영혼들의 진혼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세상은 전쟁과 사고로 더 많은 아픔과 원한을 만들고 있다. 이 가을 이 지구 위의 모든 인류가 더 이상 원한을 만들지 않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 지금 곳곳에서 억울하게 눈을 감아야 하는 영혼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떡갈나무( 오크트리) 아래서 동양이건 서양이건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지 않아도 되는 때를 소망하며 예술가들에게 이들 모두를 위한 큰 씻김굿과 진혼곡을 요청하고 싶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