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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월 12일이란 날에...

‘잘 가는 세상에 시비를 건 날?’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2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의 12일을 보내면서 묘한 생각이 든다. 한 해의 달력을 보면 달마다 그 달과 같은 숫자의 날이 있다. 1월 1일, 2월 2일, 3월 3일... 12월 12일까지...이런 날들이 다 의미가 있는 날이 아니냐는 의문 겸 깨달음이 머리에 번쩍 떠오른다.

 

 

지난달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라고 해서 연인들이 서로를 챙겨주는 날이고(캐나다는 이날이 한국전쟁에 파병되어 목숨을 잃은 분들에 대한 추념의 날이란다. 이날은 빨간 양귀비꽃을 가슴에 꽂아 이들을 추모한단다), 10월 10일은, 요즈음 젊은이들은 잘 모르지만, 우리가 클 때는 쌍십절이라고 해서 1910년 중화민국이 건국한 날이다(중화민국은 대만으로 밀려가고 중국 대륙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 있어 쌍십절은 대만의 건국기념일이 되어버렸다).

 

이날 중국 식당에 가면 국기를 걸어놓고 축하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9월 9일은 무슨 날일까? 흔히 1948년에 북한 정권이 수립된 날로 알고 있는데, 그보다 3년 전에는 조선총독부가 정식으로 미군에 항복한 날이란다. 음력으로 9월 9일은 구중(九重), 또는 중양절이라고 해서 예전에는 명절로 즐겼다.

 

8월 8일은 무슨 날인가? 요즘 대중들의 우상이 된 임 모 가수는 이날이 2016년 자신이 데뷔한 날이라고 하던데, 특별히 우리들이 함께 기억해야 할 날은 아니니, 굳이 찾아보자면, 최근에 생긴 것으로 버블데이, 곧 비누방울의 날이란 것도 있다. 동그란 비누방울 4개가 모인 모양이어서, 이날은 소중한 사람의 손과 발을 씻겨주고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세족식의 날' 이다.

 

2018년 8월 8일 대한민국 맘까페에서 엄마들이 아기들을 씻겨주는 작은 이벤트로 처음 시작되었는데, 소중한 사람을 씻겨주는 것은 '당신을 영원히 지켜주겠습니다.'라는 사랑의 약속을 의미하니 이날을 ‘이렇게 기억하고 기리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제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7월 7일은 음력의 경우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석날이긴 한데, 일본에서는 양력 7월 7일을 칠석으로는 지낸다고 한다. 그렇게 음력으로 의미를 둘 수도 있고, 굳이 우리 현대사로 본다면 1970년 7월 7일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했기에 이날이 도로의 날이 되어 기념하고 있단다.

 

 

6월 6일, 5월 5일은 다 잘 알다시피 현충일과 어린이날이다. 또 음력 5월 5일은 예전 명절로 지냈던 단오다. 이런 식으로 달과 겹치는 날이 제법 의미가 있음을 눈여겨보게 된다.

 

다만 4월 4일은 특별한 날은 아닌데, 비공식적으로는 정신건강의 날이란다. 요즈음 정신건강이 우리 사회의 중요 논점으로 떠오르고 있어 그렇게 기리는 것도 의미가 있어보인다. 4라는 숫자를 꺼리는 이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왜 하필 이날이 정신건강의 날이냐는 의문도 있을 법한데, 선입견을 깨자는 의미에서 일부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만 2017년부터는 유엔 등 세계기구의 움직임에 맞춰 우리의 정신건강의 날이 10월10일로 옮겨 지정되었단다.

 

그런데 이렇게 겹치는 날 중에 4월 4일과 6월 6일, 8월 8일, 10월 10일, 12월 12일은 모두 같은 요일이란다. 그래요? 하고 궁금해할 것인데, 날짜 사이 간격이 모두 63일이므로 9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것이 되어 같은 요일로 떨어진다고 한다. 뭐 다른 것은 그렇다고 쳐도 이렇게 짝수 달에 겹치는 날이 같은 요일이라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다. ​

 

그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12월 12일이라는 특수한 날짜 때문일 것이다. 흔히 줄여서 12.12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이 말이 마치 "십이십이"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들리고, 이것은 다시 "시비시비"라는 발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날은 1979년 군사구데타가 일어난 날이고, 이 쿠데타가 우리나라의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것이어서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았음은 우리가 잘 아는 바인데, 그 "십이십이"라는 말을 "시비시비"로 들으면 '괜히 세상일에 시비를 거는 모양새'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으로 공연히 세상일에 시비를 걸고 싶어하는 필자의 성향 때문에 그리 느끼는 것이긴 하다. ​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날은 "잘 가는 세상에 시비를 건 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곤 해서 공연히 시비라는 말이 점잖지 않은 말이 되어버리고 만다. 12월도 십이월로 읽다 보면 '시비하는 달'이 아니냐는, 근거 없는 몽상에 빠지는 수가 생긴다. 날씨가 추워지니 쓸데없는 망상이 생겨나는 것이 큰 병폐인데, 이 12월이라는 달, 이달에 우리가 할 일은 우리 각자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점검, 반성하는 차원에서 우리 삶의 시비(是非), 곧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공연히 세상일에 시비를 거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난 1년여 동안 우리가 세상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불평불만에 시비도 걸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곤 했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세상일의 시비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시비를 제기하고 그것으로 성찰하여 새로운 날을 맞는 거름으로 사용하는 것, 그것이 필요한 것 같다. 이것은 삶의 단상도 아니고 공연히 일어나는 삶의 망상이긴 한데, 한 해를 끝내는 시간이 다가오니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는 것이다. ​​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