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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새해에 올리는 서시(序詩)

새해의 기운을 받아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삼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3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새해를 기다렸다. 한반도를 떠나 동해 한 가운데 울릉도에서 새해를 기다린다. 춥다. 그러나 잠시 세상을 덮었던 어둠이 서서히 밀려난다. 그러고는 자연의 함성들이 들려온다.

 

 

 

 

우리에겐 어둠만 보이는데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은 그 속에서 자연의 마음을 본다. 시대의 증언을 기다린다.​

 

어둠은 아직 짙다 하여도 새벽이 오면 동은 트고야 말리

동햇가 미명의 언덕 위에 발돋움하고 바라보며

더 멀리 더 높은 곳을 향해 새 증언을 기다리는 마음!​

 

아직은 짙은 안개와 구름으로 머리 위를 무겁게 누르는 하늘

빛 속에서 어둠을 보듯이 어둠을 뚫고 빛을 보는 눈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황금빛 햇살을 받아들이자​

 

마침내 밝아오는구나. 떠오르는구나. 먼저 햇살을 보내어 위세를 뽐내고는 서서히 동쪽 하늘을 물들인다. 마침 하늘엔 구름도 없구나. 햇님의 자태를 그대로 다 보여주는구나.

 

살육과 공포에 사로잡혀 무덤 속 같이 어두운 여기

이 인욕의 땅에 부활의 종소리 들려 오려나

평화를 잉태한 새날의 언약인가 돋아오르는 저 아침햇살!

 

동해는 푸른 바다 아침 햇빛 눈부신 푸른 바다

흰 갈매기 날개조차 물에 잠기면 푸른 물 들고

혈관 속 돌아가는 피조차 푸른 물결로 변할 것만 같네​

 

저 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저 해가 동쪽 바다에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 해는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가? 노산이 답한다. ​

 

수평선 위를 바라보라 눈부신 영광의 아침해

오색 찬란한 광채를 놓으며 위대한 영웅처럼 돋아오른다

환희에 휩싸인 순간 내 입에선 새 노래가 흘러 나온다​

 

『동해의 해돋이는 이 땅 겨레의 상징이다

우리들의 정열과 의기로 철조망 장벽을 불태우고

승리를 찬양하는 붓으로 인류의 자서전을 다시 쓰자』고

                                                      ...... <동해의 아침해> 이은상​

 

 

 

노산은 높은 곳에서 하늘의 뜻을 알고자 했다. 한라산을 올라간다.

그 정상에서 노산은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천지의 대주재(大主宰)시여,

나는 지금 두 팔을 들고, 당신의 내리시는 뜻을 받드려 하나이다.

아끼지 마시옵소서. 자비하신 말씀을.

평화와 즐거움으로 찼던, 당신의 나라를

피와 눈물과 아우성 속에 쓸어 넣은,

창생(蒼生)의 가증한 죄를 들어

여기 엎디어 사(謝)하나이다.

지금 내 몸을 싸고 두른, 구름과 안개

이것은 당신 옷자락.

옷자락 끝을 붙들고서, 정성껏 이마를 조아려 당신 앞에 아뢰나이다.

천지의 대주재시여.

                                                                  ​ ...... <한라산에서> 노산 이은상

 

 

 

​하늘의 소리를 들으려면 민족의 성산인 백두에 올라야 한다. 다만 지금은 안된다. 옛날 다녀온 분도 민족의 미래를 위한 하늘의 굳은 약속을 기도했다. ​

 

이 몸이 울어 울어 우뢰같이 크게 울어

하늘 향한 사자의 포효되어 온누리 놀래고자

지~치다 되 깬 넋이 행여 내쳐 잠들리​

 

이 산이 터져 터져 오늘로 탁 터져서

사납게 타는 불꽃 온 세상에 재 될세라

빈터에 새 일월이 하마 한 번 비추리​

 

이 늪이 넘쳐 넘쳐 단박에 와락 넘쳐

엄청난 홍수 되어 이 강산 덮을세라

대지의 낡은 꼴이 확 씻긴들 한 되리?

                        ...... <백두산 등척기> 민세 안재홍

 

백두산과 한라산, 동해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어디서나 새해를 맞이하며 개인과 가정과 나라의 안녕, 번영을 빌었다. 지리산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보라! 나는 지금 천왕봉 머리에 올랐노라

구름과 안개를 모조리 다 헤치고

세상에 가장 높은 자 되어 하늘 위에 올랐노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여기 가득 찬 온갖 것들

작은 모래알과 나무껍질까지라도

모두 나를 위하여 있는 것임을 알았노라

 

'인생을 잠깐이라 인생은 눈물이라'

누가 너희에게 그릇된 도를 전하더냐

인생은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여기 복된 자니라

                                      ....... <지리산에서> 노산 이은상

 

 

이렇게 우리는 명산을 찾아 우리의 소원을 빌었다. 겨울밤의 어두운 기운을 무너트리고 동해의 거친 파도를 뚫고 올라오는 저 새해야말로 우리들의 힘이자 희망이자. 방편이다. 이제 새해의 기운을 받아 이 기운을 모두의 가슴 속에 담아 미래를 위해 달려 나갈 에너지로 삼는 거다. 거기서 우리는 멋진 한 해를 예약해 보는 거다. 기왕이면 남북이나 동서가 달라 쪼개진 상처를 보듬고 하나가 되는 큰 꿈도 이뤄지기를 소망해 보는 거다.

 

드디어 새해가 밝았구나. 그것은 밝은 태양을 믿고 따르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거기에 사심이 없다면 햇살이 우리 마음을 더욱 잘 비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힘차게 내일을 향해 발길을 내딛는 거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