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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부활을 생각한다

경남 함안에서 만난 손양원 목사의 사랑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4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예수는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기 전에 나병환자 시몬의 집을 찾는다. 이때 한 여인이 들어와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아주는 최고의 경배를 올린다. 제자들은 비싼 기름을 허투루 쓴다고 비난하지만, 예수는 이를 받아들이고 그 여인의 죄를 사하여 준다. 다음날 예수가 나귀를 나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라고 외쳤다. 그 주 목요일 저녁에 예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금요일에 공회와 총독 앞에서 재판받고,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이한다(성-聖 금요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흘 후인 일요일에 예수는 부활한다. 이렇게 부활까지의 일주일은 예수가 가장 큰 수난을 입고 고통을 당한 기간이기에 기독교 교회에서는 이 기간을 고난주간. 혹은 수난주간(영어로는 Passion Week)이라고 한다. 해마다 달라지긴 하지만 올해는 이번 주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고난주간이고 이번 일요일은 부활절이 된다.

 

 

오늘 아침 예수의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생각한다. 이 주간은 33년 동안 예수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으로, 예수는 자기 말과 가르침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권력기관 앞에 몸을 내놓고 자신의 생명을 던진 것이다. 곧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던짐으로써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사랑이었다. 이웃을 위해, 병든 사람을 위해, 아픈 사람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까지도 던질 때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임을 청년 예수는 몸으로 증언한 것이다.

 

지난주 말로만 듣던 진정한 사랑을 실천한 한 분을 만났다. 손양원 목사님이다. 봄날이라고 남해안 쪽 나들이에 나섰다가 함안군 칠원읍에 손양원 목사의 기념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보게 되었다.

 

 

기념관 광장의 저편에는 초가집과 우물이 있다. 손 목사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터를 되살린 것이다. 거기서부터 기념관까지 난 길에는 9개의 표지판이 서 있다. 손 목사가 올린 9가지 기도문이다.

 

 

셋째 기도문에 눈길이 머물렀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알아보니 1948년 10월 여순사건 때 일이었다.

 

1902년 6월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태어난 손양원은 36살이던 1938년 평양신학교를 나온 뒤 이듬해인 1939년 여수애양교회 전도사가 되어 교회가 운영하는 애양원에서 한센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의 손과 발이 되어 봉사하였고 그러다가 당시 일제가 광적으로 강요하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1940년부터 해방까지 만 5년 동안 감옥에 들어가 갖은 고초를 겪었다.

 

해방 뒤에도 애양원에서 수백 명의 환자를 돌보는 일에 전념했고 이러한 손 목사의 뜻을 받아 손 목사의 아들인 24살의 동인과 19살 동신 두 형제는 기독학생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48년 10월 여수순천반란사건이 일어나자, 좌익 학생들은 두 아들을 순천 경찰서로 끌고 가 미제의 앞잡이라며 마구 구타하고 차례로 총살했다. 동생은 형 대신 자기가 죽겠다고 했으나 형에 이어 죽게 되면서도 예수를 믿고 화개하라고 외쳤다고 한다. 아들의 시신을 인도받고 슬픔에 빠지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런데 곧 반란사건이 진압되고 당시 총살을 주도한 안재선이란 학생이 붙잡혀 사형당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는 사형장으로 달려가 계엄사령관에게 그 학생을 살려주라고, 자신이 아들로 키우겠다고 하여 그를 살려낸다. 세상에 자기 아들을 둘이나 죽인 그 원수를 살려 아들로 받아들여 키우다니, 그런 일은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소중한 사랑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예수의 사랑 그것이 아니던가?

 

 

그런 소식을 동행한 친구로부터 전해 듣고 표지판의 기도문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더욱 숙연해진다. ​

 

"여섯째,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손양원 기념관은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는 구조로서 그 안에 손 목사의 활동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경건하게 전시되어 있다.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며 사람들이 외면하던 한센인들의 손과 발, 친구가 되어 함께 한 많은 사진이 생생하게 상황을 전해준다. 자식을 죽인 안재선을 자식 손재선으로 받아들이고 키운 그 마음 그대로 한센인이란 어려운 이웃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차마 얼굴도 바로 보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다가가 같이 식사하고 닦아주던 손 목사는 6.25전쟁으로 인민군이 내려오자, 이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버티다가 그 아들처럼 처형된다. 서울이 국군에 의해 수복되는 9월 28일 바로 그날이다. 그 전 해에 손 목사의 열성을 알게 된 김구 선생이 애양원을 방문해 큰일을 같이 하자고 권유했으나 환우들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한 장면이 기념관 안에 입체로 재현되어 있기도 하다.

 

 

 

오빠를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는다는 말에 여동생 동희 씨는 울부짖었다. ​

 

"용서하면 용서했지, 아들로 삼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아버님이 그놈을 아들로 삼을 것 같으면 나에게는 오빠가 되는 것인데 내 두 오빠를 죽인 원수가 어떻게 내 오빠가 된다는 말입니까? 아버지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예수를 못 믿는 것이냐고요?" ​

 

그때 손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희야 성경말씀을 자세히 보아라.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 아들로 삼아야 하지 않겠느냐?"

 

손양원 목사가 걸어간 사랑의 길은 그의 부인인 정양순 여사에 의해 완성된다. 친아들을 죽인 학생을 아들로 받아들여 밥해 먹이고 옷 해 입혔다. 동희 씨는 오빠의 원수를 오빠로 같이 살았다. 그 가족들은 모두 지극한 사랑의 등대였다.

 

 

자식의 원수를 받아들인 손 목사의 사랑은 가히 원자탄급이었음에 1949년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으로 나왔고 이어 손 목사가 순교한 뒤 관련 기록들이 모아져서 1952년에 《사랑의 원자탄》 속편이 나와 그의 고귀한 일생이 정리되었다. 기념관 안에 속편이 한 권 보관되어 있었다.

 

1977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졌고 다시 2013년에 KBS-TV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영하는 등 손용원 목사의 진정한 사랑은 속속 세계에 전해지고 있다, 학생 때 막연히 손 목사에 대해서는 말은 들었지만, KBS다큐멘터리는 필자가 막 회사에서 퇴직한 이후 만들어진 것이라 미처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제야 가까이에서 손용원이란 목사, 아니 그 이전에 가장 숭고한 인간을 만나보게 되었다.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예수가 찾은 곳이 나병환자 곧 한센병자의 집이었고 거기서 여인의 기름부음을 허용함으로써 예수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아프고 가난하고 괴로운 모든 이들로부터 너희들이 모심을 받을 수 있도록 사랑을 행하라고 가르친 것이리라. 그러고는 하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 형장으로 행했다. 거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육신이 아니라 바로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지극한 사랑이었다. 말하자면 사람은 사랑을 할 때 육신의 한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곧 부활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불교건 이슬람이건 어느 종교건 나름대로 사랑을 가르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 사랑이야말로 유한한 우리들의 육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길인 것이다. 경남 바닷가 함안의 작은 집에서 태어난 손양원 목사를 만난 것으로 해서 이번 나들이의 가장 큰 보람을 얻었고 나도 부활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안 것 같다. 누군가가 말한다.

 

"인생의 가치는 나이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나에 따라 결정된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