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얼이동식 인문탐험가] 얼마 전 존경하던 스님 한 분을 여의었다. 이 세상에 없으니 여의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 스님은, 많은 스님이 그렇듯이, 소탈하고 명랑하고 맑으시며, 해학도 있어 만나면 즐겁고 기쁘고 깨우침이 있었다. 고승이라고 무게 잡으시는 일도 없고 방장이 되신 다음엔 선방에는 큰 거울을 걸어놓아 스님들이 스스로 들여다보라고 했고, 젊은 스님들이랑 밭에서 울력하면서 농작물을 거두어 세상에 신세를 안 지고 사는 삶을 이끄는 모범도 보이셨다. 스님으로 사신 지가 꼭 50년이란다. 이런 분이 있기에 우리 절은 많은 분에게 안식과 평온. 삶의 고통에서의 해방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꼭 부처님이 계셔서만이 아니라 이런 분들의 삶을 통해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길을 현실에서 배우는 것이리라. 영결식 뒤 다비장으로 가면서 영정 뒤를 따르는 수많은 만장은 그런 신도들의 존경심과, 이제 가까이서 더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 또는 슬픔을 표현하였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태어나서 일정 기간 살다가 무(無)로 돌아간다.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동안 모두가 잘 먹고 잘 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넘어 사후에도 마음이 편안하기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山上有山天出地 산 위에 또 산이 있어 하늘 가득 땅이로구나 水邊流水水中天 곳곳에 물이 흐르고 그 속에 또 하늘이 있네 蒼茫身在空虛裏 내 몸은 아득하고 텅 빈 하늘 속에 있으니 不是烟霞不是仙 내가 저녁 노을인가 혹은 신선인가 모르겠네 ... 「遊楓嶽和車紫洞 풍악에서 놀며 차자동에게 화답하다」 금강산이 좋아서 자신의 호도 봉래(蓬萊)라는 금강산의 여름 이름을 쓰던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금강산에 들어가 남긴 시 가운데 하나다. 금강산 하면 양봉래(楊蓬萊)를 생각할 정도로 그는 금강산을 노래한 많은 시를 썼고 멋진 바위에 글을 새겨 놓았다. 금강산 인근의 회양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이 자기 집 정원 격이었다. 그가 당시 만폭동 바위에 새겨 놓은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의 여덟 글자와 “만폭동(萬瀑洞)” 세 글자는 지금도 남아 있다. 어느 날 금강산 절승의 하나인 불정대(佛頂臺)에 올라 장쾌한 십이폭포(十二瀑布)를 바라보며 드디어는 눈앞의 자연과 하나가 된다. 山岳爲肴核 높고 낮은 산들을 안주 삼고 滄溟作酒池 동해 바다 물로 술 빚어라. 狂歌凋萬古 취해서 실컷 노래 부르고 不醉願無歸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김 삿갓이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고 지은 시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一步二步三步立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 멈추고 보니 山靑石白間間花 푸른 산, 하얀 돌 사이에 곳곳에 꽃이 천지구나 若使畵工模此景 만약 화공을 불러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其於林下鳥聲何 나무 사이에 들리는 새소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가 이 물음에 답을 그림으로 내었다.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라는 그림이다. 금방 꾀꼬리 소리를 듣고는 고삐를 당기고 꾀꼬리 소리를 확인하러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아 그 나뭇가지에 자그만 꾀꼬리가 있구나. 이렇게 꾀꼬리 소리가 그림 속에 영구히 잡혀 있다. 가야금의 명인이신 황병기(1936~2018) 님은 젊을 때 인사동 고미술 전시회에서 한 선비가 집 뒤 수풀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듣고는 확인하려 고개를 돌리고 있는 그림을 보고 빠져들었다. 심전 안중식(1861~1919)의 <성재수간(聲在樹間)>이란 그림이었다. 황병기님은 그 그림의 느낌을 가야금 곡으로 작곡해 내고는 '밤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발표해 가야금 음악의 전설이 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4월 23일 어제는 세계 책의 날이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스페인의 소설가 세르반테스 등 두 문호가 세상을 뜬 날을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영국이나 스페인에서는 대대적인 책 축제가 이어진다. 단 하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이상 지속되고 책방이나 노점상이 많은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유럽 각국에서 몰려와 책을 보고 사고 책에 대해 말하고 책을 사랑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날을 전후해 많은 행사를 열었다. 성황을 이룬 곳도 많았다. 다만 그들처럼 모두의 축제 느낌은 없었다. 책의 날을 맞아 나도 책을 생각해보았다. 언젠가 《책바다 헤엄치기》란 제목으로 책을 찾아다니고 읽은 이야기를 책으로 낸 적도 있지만 그동안 이사 다니면서 조금 정리를 하고도 집안 서재에 책들이 많이 있다. 이 책들은 비좁은 서재의 책꽂이에 이중으로 넣어져 있어 이제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책을 내가 어떻게 사서 얼마나 보았는지도 알 수 없는 채로 이 집에서 몇 년 동안 나하고 동거하고 있다. 물론 또 읽고 싶은 책들이 생기니 더 사들이기도 한다. 점점 바닥에도 쌓이고 있다. 이 책들이 언제까지나 나하고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영국시인 T.S. 엘리엇의 표현이 다시 생각난다. 원뜻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적어도 겨울 동안 죽어있던 땅에서 봄기운을 받아 무언가 꿈틀거리고 나오는 그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것을 잔인하다고 했다는 것인데 잔인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Cruel'은 '잔혹한', '잔인한'이라는 뜻 말고도 '고통스러운', '괴로운'이란 뜻도 있는 것을 보면 사실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보다는 '고통스러운 달'이라 해석하는 것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이달이 청명 한식이란 절기를 맞아 저세상으로 가신 분들을 묘소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는 달이기에, 돌아가신 분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하며 삶과 죽음과 그 후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기에 그렇다. 얼마 전 장인 장모님이 누워계신 근교 공원묘지를 찾았는데 입구에서 한 예술가의 추모공간을 접하게 되었다. 그분은 생전에 화가로서 금관문화훈장을 받는 등 공적을 인정받은 분인데 공원에서 가장 좋은 자리 상당히 넓은 면적에 예술적으로도 멋지게 조성해 놓았다. 묘지도 이제 매장의 의미보다도 추모의 성격이 더 살아나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천(洞天)’이란 말이 있다. 동(洞)이란 글자는 골짜기를 뜻한다. 동천(洞天)은 신선이 사는 세계, 또는 산에 싸이고 물이 흐르는 내가 있는,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멋진 산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그런 산수경관이 연속으로 펼쳐지는 곳을 동천이라고 한단다. 본래 도교에서 쓰던 말인데 유학자들도 학문의 근본 목적인 본래 심성을 되찾아 안심과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장소, 요즘 말로 하면 치유를 위한 으뜸 공간으로 생각하고 이곳을 찾는 즐거움을 추구하곤 했다. 이 세상에서 이른바 신선(神仙)이라고 하는 자를 본 사람이 누가 있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신선이 사는 곳이야말로 그지없이 즐거울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곳의 정경을 극구 묘사하곤 하는데, 가령 안개와 노을에 잠겨 아스라이 떠 있는 바다속의 삼신산(三神山)이라든가 궁실이 영롱(玲瓏)하게 솟아 있는 땅 위의 각종 동천(洞天 신선이 사는 곳)에 대한 기록을 접하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탄식하면서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최립 「징영당(澄映堂) 십영(十詠)에 대한 서문(序文)」 《간이집》 제3권 / 서(序)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면 이러한 동천은 어디에나 있을 것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4월이 되면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입에 달고 나오는 표현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영국시인 T.S. 엘리엇의 시 문장이고 또 하나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한시(漢詩) 글귀이다. 엘리엇의 시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일깨운다."로 묘사되는 것에서 보듯, 2차 대전 뒤 처음 맞는 4월에 전쟁으로 황폐해진 유럽의 땅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땅속에서 몹시 애를 써야 하기에 4월은 무척 힘든 나날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썼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잔인함’과는 어감이 달라도 많이 다르지만, 뭐 4월에 사람이건 자연이건 어찌할지 고민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굳이 본뜻이 무엇인지를 따질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더욱 실감이 나는 것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곧 계절이 봄으로 접어들었는데도 영 봄 같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지난달 3월의 일기불순으로 벚나무들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해 각 지방에서 마련한 벚꽃 축제가 영 빛이 나지 않은 것이 그 주된 이유일 것이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정부가 의대생 정원을 늘리려고 한 것에 대해 의료계가 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예수는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기 전에 나병환자 시몬의 집을 찾는다. 이때 한 여인이 들어와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아주는 최고의 경배를 올린다. 제자들은 비싼 기름을 허투루 쓴다고 비난하지만, 예수는 이를 받아들이고 그 여인의 죄를 사하여 준다. 다음날 예수가 나귀를 나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라고 외쳤다. 그 주 목요일 저녁에 예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금요일에 공회와 총독 앞에서 재판받고,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이한다(성-聖 금요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흘 후인 일요일에 예수는 부활한다. 이렇게 부활까지의 일주일은 예수가 가장 큰 수난을 입고 고통을 당한 기간이기에 기독교 교회에서는 이 기간을 고난주간. 혹은 수난주간(영어로는 Passion Week)이라고 한다. 해마다 달라지긴 하지만 올해는 이번 주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고난주간이고 이번 일요일은 부활절이 된다. 오늘 아침 예수의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생각한다. 이 주간은 33년 동안 예수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으로, 예수는 자기 말과 가르침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 봄이 오면 누구나 콧속으로, 입속으로 불러보는 이 노래는 홍난파 선생(1898-1941)이 1932년 작곡해 1933년에 발표했으니 90살이 넘었다. 가사는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의 시조다. 시조를 노랫말로 만들어 올린 첫 작품이라는데, 봄처녀가 새로 단장하고 오는 모습이 여실히 묘사되어 있다. 노랫말, 아니 원 시조는 한국적이면서도 토속의 맛이 은근히 나온다. 멜로디는 부드럽고 선율은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뒷맛을 준다고 한다. 동요 같으면서도 동요가 아닌 훌륭한 가곡이다. 이 노래는 '가곡'이란 음악형식이 새로 태어난 근대 초창기의 노래다. 원래 '가곡(歌曲)'은 조선시대 상류층들이 시조에 관현악 반주를 붙여 즐기는 고차원의 성악곡이다. 그런데 1919년 일본 유학을 떠난 홍난파가 일본에서 당시 양악을 배우면서 그때까지의 우리 음악을 되돌아보고 이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찾아낸 것이 이 '가곡'이다. 나는 덮어놓고 서양음악만을 좋다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것을 일러 풍류(風流)라고 한다.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는데, 실로 세 가지 가르침(三敎)을 품고서 뭇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다." 신라 말기 최치원(崔致遠, 857~?)이 「난랑비(鸞郞碑)」의 서문에서 풍류라는 현묘한 도가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있었다는 것인데, 이 풍류라는 것은 집에 들어와서는 효를 하고 밖에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살며, 악을 만들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이른바 공자와 노자와 석가모니 세 성인의 가르침을 다 담아서 참된 삶을 사는 것을 풍류라고 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한마디로 풍류라는 말은 우리 조상들이 생각하는 최상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것은 고달픈 현실 생활 속에서도 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겁게 살아갈 줄 아는 삶의 지혜와 멋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일상에서 가무(歌舞)를 즐기고 철 따라 물 좋고 산 좋은 경관(景觀)을 찾아 노닐면서 자연과 기상(氣象)을 키워나가는 생활로 이어졌다. 신라의 화랑도(花郞道)정신이 바로 이러한 풍류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기에 화랑도를 바로 풍류도(風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