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필라델피아의 ‘Sting Theory School’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Sting Theory School’은 과학(S)과 수학(M) 교육에 기술(T)과 공학(E)을 연계해 가르치는 융합교육방식을 잘 하는 학교입니다. 그 학교 화장실에 붙어있는 표지판이 저를 웃음 짓게 합니다. 70년대의 공중화장실을 기억하시는지요? 냄새나고 더럽고. 불편하고, 불결함의 상징이었던 공중화장실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깨끗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를 배우러 오는 나라도 많으니까요. 일부 선진국을 돌아다녀 봐도 우리나라처럼 깨끗하고 정갈하며 위생적으로 우수한 시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화장실에 붙어있는 표지판이 재미있습니다. 대부분은 ManㆍWoman, ladyㆍgentleman, ♂ㆍ♀을 사용하기도 하고 아래와 같은 그림을 쓰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그림들을 픽토그램(pictogram)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학교 화장실에 M과 W를 써 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물론 ManㆍWoman의 약자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는 있었지만 글자의 생김새의 대비가 묘하게 대비되어 약간의 야한 생각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올 칠월엔 이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둘만 살고 있는데 공간이 너무 넓다는 허허로움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평수를 줄여 이사를 하려고 하는데 살면서 20여 차례의 이사를 했지만 공간을 줄여가는 것은 처음이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을 좀 덜어낸다는 나름 무소유에 입각한 이사일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사는 18층 아파트, 같은 통로를 쓰는 36세대 가운데 유일하게 에어컨이 없는 집이 우리 집이었습니다. 예산 관계가 아니라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모님과 아내 덕분이지요. 물론 이들이 찬바람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경제적 이유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에어컨 없는 여름나기는 저에게 큰 고통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마음 다부지게 먹고 올해 신형 에어컨을 놓았습니다. 문제는 그 에어컨을 켜보지도 못하고 새집으로 이사를 할 형편에 놓여있다는 것이지요. 새집은 매립 형으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으니 집안 경제력만 낭비한 셈이 되었습니다.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헐떡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소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침에 출근을 하며 봄날의 긴 하루를 시작합니다. 출근길에 각종 모종을 파는 가게를 지나면 왠지 풋풋한 마음이 됩니다. 그 모종을 심을 텃밭 한 뙈기 없는데도 말이지요. 유년시절 농사지을 때는 얼마나 바쁜지 고사리 손을 빌리기도 해야 했습니다. 산자락에 달라붙어있는 다랭이 논은 전형적인 천수답이었는데 모내기를 위하여 논에 물을 들이고 소에 써레를 달아 논을 삶아 놓으면 부드러운 흙이 발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감촉이 참 좋았습니다. 땅을 파고 무언가를 넣고 다시 흙을 덮는 것엔 묻는 것과 심는 것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큰 차이는 생명의 유무에 있습니다. 논이나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을 심는다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다시 살아나 열매를 맺는다는 희망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쓰레기나 불필요한 물건은 묻는다고 표현합니다. 그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음을 의미하지요. 곧 심는 것은 생명이지만 묻는 것은 죽음입니다. 흙 속에 무언가를 심게 되면 그것을 잊어버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가뭄엔 물을 주기도 하고 성급한 사람은 싹이 얼마나 나왔는지 땅을 파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묻음은 잊음을 전제로 합니다. 우린 심는 것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녹비에 가로왈”이란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서 ‘녹비’는 원래 鹿皮(녹피)가 맞습니다. 사슴 가죽을 의미하지요. 사슴 가죽은 매우 부드럽습니다. 그리하여 당기는 대로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합니다. 곧 녹비에 曰(가로왈)자를 써 놓으면 위 아래로 당기면 日(날일)자가 되고 좌우로 당기면 曰(가로왈)자가 됩니다. 곧 법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린 자신의 경험 속 범주 안에서 살아갑니다. 저는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하여 아이들에게 15년 동안 한문을 가르치다가 뜻한바가 있어 컴퓨터 부전공을 이수하고 정보로 전과하여 19년째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과자인 셈이지요. 문과와 이과 공부를 더불어 했는데 문과 공부를 할 때는 수학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단순히 마트에서 장보고 계산을 제대로 하면 불편하지 않다고 느꼈었지요. 하지만 컴퓨터를 공부하고 있노라니 수학이 아니면 풀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이 수학이 없다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아프게 깨달은 적이 있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녹비에 가로왈처럼 자신의 입장에 따라 살아가는 경우가 많음을 봅니다. 특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올해 일본의 연호가 바뀌었습니다. 영화(令和, 레이와)가 그것입니다. 곧 올해(2019년)은 일본에서는 영화1년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황제가 바뀌면 연호가 바뀌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대정, 소화, 명치라는 연호가 그러하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썼던 중국 연호가 그러합니다. 우리나라는 광개토대왕 때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고려 왕건 때 천수(天授)라는 연호를 끝으로 중국연호를 써 왔고 조선 말 대한제국을 세운 뒤 고종(高宗)의 광무(光武), 순종(純宗)의 융희(隆熙)를 끝으로 자주적 연호 사용은 끝이 납니다. 조선은 친명배청 정책을 써 왔습니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의종입니다. 그의 연호는 숭정(崇禎)이었지요. 임금이 300년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조선에서는 숭정연호를 300년 넘게 사용했으니 지독한 명나라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항복으로 막을 내리게 되지요. 우리나라는 서기라는 연호를 씁니다. 우리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단기(단군기원, 서기+2,333)라는 자주적인 연호를 갖고 있는데도 살려 쓰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연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위 내용은 엘리엇이 황무지라는 시에서 읊조린 내용입니다. “일화즉사(日花即死)”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하루 피고는 바로 떨어지는 꽃을 의미합니다.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양귀비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텃밭 쑥갓 밭에 양귀비를 몇 뿌리 심으셨습니다. 쑥갓과 양귀비의 생김새가 비슷하여 발각될 염려가 적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양귀비는 모르핀이라는 마약 성분의 주원료이지만 의료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는 가정상비약으로 양귀비만 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배앓이에는 특효였던 것으로 기억하니까요. 가끔 양귀비꽃을 보았는데.. 참으로 예뻤습니다. 문제는 하루만 지나면 꽃이 지는 일화즉사의 꽃이라는 것이지요. 그 짧은 생의 붉음이 꽃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 교정에 목련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봄의 순결 목련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벅차고 숨이 가빠옵니다. 참으로 멋진 봄날의 한 장면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이지요. 문제는 그 목련이 그리 오랜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는 평년보다 열흘 정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그릇은 인류 문화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아마도 인류가 처음으로 만들어 쓴 그릇은 나뭇잎 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목기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합니다. 비교적 널리 분포하고 작업이 쉽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목기는 썩어 없어져 옛 모습을 추측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릇이 썩지 않는 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바가지를 그릇으로 쓰기도 했고 플라스틱이나 놋으로 주발을 만들어 쓰기도 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우며 현재에도 실용품으로 예술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청자와 백자와 같은 도기입니다. 대부분의 그릇이 음식을 담거나 보관하는 용도라면 또 다른 그릇 옹기는 숨을 쉬기 때문에 음식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옹기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기품이 있고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냥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진흙이 옹기장이가 손으로 주무르고, 내려치고, 빙빙 돌리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과정을 통해 형태를 갖추어 갑니다. 그리고 1,200도가 넘는 가마에서 구워져 옹기로 탄생하는 것이지요. 옹기장이의 수고와 펄펄 끓는 가마에서의 연단이 없다면 옹기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훌륭한 수행자는 큰 깨달음을 얻지만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중간 수행자는 처음에는 부지런히 정진하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급 수행자는 수행도 하지 못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큰 소리로 으스댑니다. ‘진수무향(眞水無香) 진광불휘(眞光不輝)’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된 물은 향기가 없고 참된 빛은 반짝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사소한 시비에 휘말리는 부류는 태권도 1단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조그만 능력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권도 4,5단이 되면 좀처럼 싸움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그 깊은 능력을 사소한데 써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능력자는 큰 성공을 거둔 이후라도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으며 겸손함으로 평상심을 유지합니다. 야단스럽게 남 앞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일을 잊지 않으며 칭찬에 호들갑이 없고 남을 대할 때 가식이 없습니다. 남에게 보이기위함보다 자신에게 늘 충실하고 화려한 횃불보다는 은은한 촛불로 참된 삶을 살아갑니다. 진수무향에서 두 글자를 따서 진향(眞香)이라고 이름한 기생이 있습니다. 그는 시인 백석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예로부터 전설상의 동물들이 있습니다. 용과 봉황, 기린, 현무, 이런 무리의 동물들이지요. 용은 임금을 상징하기 때문에 임금을 가리킬 때 자주 쓰입니다. 용안, 용포, 용상이라는 표현이 그러하지요. 주작 곧 봉황은 상서롭고 아름다운 상상속의 새입니다. 이 봉황이 천자의 상징으로 쓰였던 것은 봉황이 항상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 나타난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외뿔이 달린 기린은 장차 위대한 사람이 나타날 것을 예언한다고 믿었지요. 상서로운 동물의 대명사이고 좋은 의미로 쓰이니 인제 기린면이 바로 이 기린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용이나 봉황, 기린이 아무리 상서롭고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것은 소와 말보다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평범한 것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신기하고 기이한 것만 추종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우린 가끔 기이하고 특별하고 비싼 음식에 열광합니다. 샥스핀이나 곰발바닥처럼 고급 요리도 있지만 모기눈알 스프, 독거미 구이, 곤충 초밥 등등의 기상천외한 것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평생 몇 번 만나지 못할 음식을 귀히 여기고 매일 먹는 음식인 밥을 소홀이 여긴다면 결코 옳은 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9월말 선운사에 가면 꽃무릇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있습니다. 꽃무릇과 상사화는 다른 종류의 꽃이지만 잎이 지고 난 뒤에 꽃대가 올라와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음은 같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볼 수 없으니 상사화라고 이름 지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서에 있습니다. 꽃이 먼저 피었다 지는 것이 아니라 잎이 먼저 피었다가 지는 것이지요. 잎이 먼저 나서 영양분을 저장해 두면 그것을 기반으로 꽃이 피어나는 것이니 만약 순서가 뒤바뀌면 그리 아름다운 색을 토해낼 수 없을는지 모릅니다. 유독 절에 꽃무릇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절에 유용한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곧 꽃무릇 뿌리는 마늘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 뿌리에서 추출한 녹말로 풀을 쑤어 사용할 수 있지요. 이 풀은 불교 경전을 만들 때 바르면 좀이 슬지 않고 탱화를 그릴 때 천에 바르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옛날 한 처자가 선운사에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스님에게 연모의 정을 느껴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시름시름 앓던 처자는 결국 죽고 말았고 그 처자의 무덤 근처에 하나둘 피어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꽃무릇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