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남사당패의 조직을 이야기하였다. 대표 격인 ‘꼭두쇠가 있고, 그 밑으로 ’곰뱅이쇠‘ㆍ’뜬쇠‘ㆍ’가열‘ㆍ’삐리‘가 있는데, 각각 엄격한 지위와 실력을 인정받는 용어들이란 이야기, 추운 겨울철은 자체적으로 실력을 기르고, 부족한 기술을 연마하는 준비의 시간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남사당놀이 6종목을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남사당놀이의 첫 번째 놀이는 <풍물놀이>이다. 여기서는 판굿과 다양한 개인놀음이 일품이다. 중부지방의 지역적 특색이 잘 나타나 있으며, 대체로 꽹과리, 징, 장고, 북, 소고, 무동, 호적, 기수, 잡색(雜色) 등이 참여한다. 어느 마을이나 사물(四物), 곧 꽹과리, 징, 장고, 북이 있고, 이것을 잘 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남사당놀이와 같은 놀이집단을 마을에 끌어들임으로써 동네의 남녀노소 모두가 한바탕 놀이판을 통해 화합하고 친목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마음의 화합을 이루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이른 봄부터 추수가 끝난 늦가을까지는 온 나라가 잔치마당이 되었다. 풍물놀이에 이어 남사당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붉은 옷 갈아입은 백제사 곱디고운 빛깔로 빨갛게 물들었네 천년고찰 연못에 드리운 붉은빛은 그 옛날 드나들던 백제왕족의 흔적인가 여운이런가! - 이고야 ‘백제사’- “(겨울 10월) 경신(庚申)에 조(詔)를 내려 교야군(交野郡)의 금년 조세를 면해 주었다. 국군사(國郡司) 및 행궁 측근의 나이 많은 사람과 여러 관청에서 (천황을) 모시고 따라간 사람들에게 보물을 하사했는데 각각 차등이 있었다. 또한 백제왕 등 행재소(行在所)에서 (천황을) 모신 사람 한두 명에게 계급을 올려주고 작(爵)을 더하여 주었다.” 이는 《속일본기》 권37(서기 783년 10월 16일조)에 나오는 백제사(百濟寺, 햐쿠사이지)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서 말하는 백제사는 일본 시가현(滋賀縣)에 있는 천년고찰을 말한다. 백제사 누리집에는 이 절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산(堂山)은 스이코왕(推古天皇) 14년(606)에 성덕태자의 발원으로 백제인을 위해 지은 절이다. 창건 당시의 본존불은 태자가 손수 만든 관음상이라고 전해지며 본당 (대웅전)은 백제국의 용운사를 본떠서 지었다. 개안법요 때는 고구려 스님 혜자를 비롯하여 백제스님 도흠(道欽)과 관륵스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남사당놀이는 1964년, <인형극>이란 이름으로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고, 1988년에는 6종목이 포함되어 <남사당놀이>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올랐으나, 현재는 그 전승이 활발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이야기하였다. 다행스럽게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지운하, 남기문 등이 <인천 남사당놀이보존회>를 설립하였고, 특히 제26회 부평풍물축제에서 6종목 전 과정을 선보였는데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 대단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첫 번째 종목인 <풍물놀이>는 판굿, 그리고 다양한 개인놀음이 일품이다. 특히 남사당패 풍물놀이의 개인놀음은 각 악기의 연주력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지역적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풍물을 구성하고 있는 면모를 보면 소리가 크고 강렬한 꽹과리(小金)를 비롯하여 징(大金), 장고(杖鼓), 북(鼓), 소고(小鼓), 무동(舞童), 호적(胡笛), 기수(旗手), 잡색(雜色) 등이 편성되는데, 그 바탕은 경기지방과 충청지방의 풍물놀이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참고로 남사당패의 조직은 어떠한가? 하는 점을 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장원급제 김명육이요~!” 장원급제(壯元及第)! 과거를 치르러 모여든 숱한 경쟁자를 제치고 1등의 영예를 차지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1797년(정조 21) 음력 12월 5일, 제주에서 귤이 올라온 것을 기념하여 창덕궁 춘당대(春塘臺)에서 치러진 감제시(柑製試)의 장원은 유학(幼學, 벼슬하지 않은 선비) 김명육(金命堉)으로 정해졌습니다. 아마 김명육, 그의 입꼬리는 기쁨으로 치솟다 못해 찢어지지나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김명육의 인생은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를 급제시킨 독권관(讀券官) 이병모(李秉模, 1742~1806)가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에게 다음과 같은 차자(箚子, 간단한 상소문)를 올렸던 것입니다. “신(臣)이 김명육의 시권(試券, 시험지)을 자세히 보니 운율이 어긋나고 대구가 맞지 아니하여 일정한 격식에 크게 어긋날 뿐만 아니라, 글자체가 기울고 비뚤어져서 글씨가 괴이함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신은 정신이 모두 나가서 혼동한 나머지 우등으로 매겼습니다. 지금 문체를 바로잡고 필법을 바르게 하는 때를 당하여 이러한 시권은 결코 유생들에게 반시(頒示, 반포하여 보이는 일)할 수 없으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불교인권위원회가 올해 <제28회 불교인권상>에 선감학원 국가폭력사건 진상규명 활동가인 ‘이하라 히로미츠(井原 宏光)’씨를 뽑았다고 지난 11월 7일 밝혔다. 올해 87살인 이하라 히로미츠 씨를 불교인권상의 주인공으로 뽑은 불교인권위원회(공동대표 진관) 심사위원회(위원장 명안 스님)는 뽑은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하라 히로미츠 씨는 1980년, 선감도를 방문했다가 그때까지 일제강점기와 똑같은 목적과 방법으로 선감학원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라며 “이에 자신이 목격한 선감학원에서의 인권 유린을 고발하는 자전적 소설 《아! 선감도》를 1991년 펴내고 일본 전역에서 강연을 통한 증언활동을 했다”라고 밝혔다. 선감학원은 1941년 10월 조선총독부 지시에 의해 당시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의 선감도(현재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세워 1942년 4월, 처음으로 200명의 소년이 수용되었고, 이후 대한민국 제5공화국 초기인 1982년까지 40년 동안 운영되었다. 원아대장에 따르면 수용인원이 많을 때는 4,691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선감학원은 빈민과 부랑아를 격리 수용하여 가난을 감추고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26회 부평 풍물축제>에 초대되어 남사당의 고유 6종목 완판공연을 펼친 <인천 남사당놀이보존회> 이야기와 이들의 공연에 운집해 있던 관객들이 대단한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남사당(男寺黨, 男寺堂)놀이’의 역사와 특징적 활동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기로 한다. 앞에서도 잠깐 말한 바와 같이 남사당이라는 말에서 남(男)이란 남자, 곧 사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남성들만의 조직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이 조직이 딱히 언제부터 존재해 왔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남사당패, 사당패, 광대패, 솟대쟁이패, 초라니패, 풍각쟁이패 등과 같은 다양한 놀이패들이 있었다는 점, 이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다양한 소리, 악기, 춤, 연희의 재주를 펼치며 살아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유랑 예인집단 가운데는 재승(才僧)계통, 곧 불교와 관련된 연희집단도 있었는데, 《고려사(高麗史)》와 같은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불교에 속한 무리이면서도 장사치들과 물건을 매매하고, 잡인(雜人)들과 술을 마시거나, 속인(俗人)의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절을 짓는다는 명분 아래 악기를 연주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생일을 한국에서는 ‘첫돌’ 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돌(생일)’이라는 뜻이다. 이듬해부터는 ‘두돌’, ‘세돌’...따위로 말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돌’ 보다는 ‘네살’, ‘다섯살’...이런 식으로 ‘살’을 쓴다. 돌 이전에는 ‘백일(百日)’이라고 해서 태어난 지 100일을 기념하기도 하지만 ‘돌’이 일반적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백일과 돌은 없으며, 다만 태어나는지 한 달이 되면 ‘오미야마이리(お宮参り)라고 해서 강보에 싼 아기를 안고 신사참배를 한다. 그 뒤 3살, 5살, 7살이 되는 해에 다시 신사참배를 한다. 이것을 시치고상(七五三)이라고 하는데 7살, 5살,3살 먹은 아이를 데리고 신사에 참배함으로써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다. 그런데 외국인의 눈으로는 3살부터 세어서 상고시치(三五七)라고 하지 않고 거꾸로 7살을 앞세우는 것이 흥미롭다. 일곱 살, 다섯 살,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있는 집안에서는 해마다 11월에 들어서면 어린이를 위한 ‘시치고상(七五三)’ 잔치를 위해 바쁘다. 이날 어린아이에게 입힐 기모노를 파는 가게, 머리 손질을 해주는 미용실,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 등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천년가무악》의 대표, 최영희의 광대 인생을 소개하였다. 춤꾼으로 시작해서 소리꾼의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는 그는 2004년, <천년가무악>이라는 연희단을 창단하면서 부평풍물대축제, 잔치마당과 함께 나라 밖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는 이야기, ‘명인 명창전’에 초청된 그는 춤으로 시작해서 소리, 연기까지 섭렵한 연예인데, 경서도 명창들에게 소리를 배웠고, 황해도 무형문화재 난봉가와 산염불의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2016년에는 <대한민국 평화통일국악경연대회>에서 소리꾼으로 명인부 대통령상을 받았고, 국악뮤지컬로 ‘탁영금이나 수표교 연가, ’사자가 물고 간 꽃신‘ 등을 무대에 올려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 최영희는 춤과 노래, 소리극의 파수꾼으로 전통문화를 최일선에서 지켜가는 자랑스러운 예인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26회 부평 풍물축제>에 초대된 <인천 남사당놀이보존회>가 펼친 6종목 완판공연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2022년 10월 1일 부평역 앞에는 대로를 막아 교통을 통제하고, 대축제를 마련했는데, 축제에 초대된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서울 번화가 이태원에서 150명 이상이 사망한 혼잡사고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상태에서는 압사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귀하는 사람이 과밀한 장소에서 생명의 위험을 느낀 적이 있나요?” 이는 최근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시민 참사 사건’을 두고 일본 야후제팬 뉴스(https://news.yahoo.co.jp)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설문조사 내용이다.(10월 31일부터 11월 7일까지) 11월 1일 오후 4시 50분 현재 응답자는 10,982명으로 ① 생명의 위험을 느낀 적이 있다 : 5,987명 ② 없다 : 4,668명 ③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 : 327명이 답을 했다.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맞이하여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가 발생한 비극적인 참사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은 비통한 슬픔에 젖어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언론들도 시시각각으로 현장 사진을 찍어 보도하고 있다. 야후제팬의 경우 설문조사까지 하고 있을 정도다. 설문의 제목은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 생명의 위험을 느낀 경험이 있는가?”인데 설문 밑에는 많은 일본인들의 댓글이 달려있다. “(행사) 주최자가 없는 본 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작고한 이매방 명무의 제자, 김묘선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승무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에서 김묘선이 탈락하여 무용계와 국악계, 문화계가 시끄러웠다는 이야기, 나이 든 무용수나 음악인들에게 실기 평가보다는 정통성과 전승활동, 긍정적 영향 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 온 김묘선의 실력이나 정통성이 인정받기를 응원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춤꾼이자, 소리꾼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희국악단 <천년가무악>의 대표, 최영희의 광대 인생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그는 춤꾼으로 시작하여 소리꾼의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다. 최영희 명인은 2004년도에 무용과 소리, 타악 그리고 무속 분야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천년가무악>이라는 연희국악단을 창단하면서 점차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잔치마당의 풍물패와도 공연을 함께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해 왔다. 그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2007년 부평풍물대축제 기획공연에 함께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될 것이다. 잔치마당과 함께 한 나라 밖 공연으로는 2018년 북유럽 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