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먼 길 와서 - 김태영 비틀거렸지만 먼 길 무사히 왔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당신 덕분이란 말 눈물 난다 넘어지면 죽는다는 오기가 날 일으켰다 이제 사랑이 날 도와줄 것이다. 옛말에 ‘백년해로(百年偕老)’ 곧 부부의 인연을 맺어 평생을 같이 즐겁게 지낸다는 말이 있다. 그런가 하면 비슷한 말로 “살아서는 같은 방을 쓰고[생즉동실(生則同室)], 죽어서는 같은 무덤을 쓰네[사즉동혈(死則同穴)]”라는 말고 있다. 또 속담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이라는 말도 있다. 하나 같이 부부로 인연을 맺어 오랫동안 해로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어디 부부로 만나 ‘백년해로’ 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그래서 우리네 풍습에는 ‘회혼례(回婚禮)’ 곧 해로한 부부의 혼인한 지 예순돌을 축하하는 기념잔치가 있다. 사람의 수명이 길지 못하였던 과거에는 회혼례란 극히 보기 드문 일로서 세상 사람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회혼을 맞는 부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이 있다면, 결코 행복한 일이 못 된다 해서 꺼리는 예도 있었다. 요즘에야 수명이 길어 회갑보다는 칠순잔치를 한다고 하지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시인 연산군! 흔히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연산군에게, 시인이라는 표현은 좀 낯설다. 조선에서 글을 배운 선비라면 누구나 필수 교양으로 시를 짓곤 했지만, 임금은 좀 달랐다. 이성적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군주에게 감성적인 시 짓기는 그다지 권장되는 덕목이 아니었다. 그래서 임금이 어제시(御製詩)를 지을 때마다 신하들은 삼갈 것을 권하곤 했다. 그러나 연산군은 달랐다. 그는 보위에 오른 뒤에도 80여 편에 달하는 어제시를 지을 만큼 시를 좋아했다. 그 내용은 대체로 감상적이고 즉흥적이며 자기애가 충만한 것들이었으나, 때로는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살벌한 시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이 지은 시를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 내리고, 승지들에게 답시를 지어 올리게 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책, 《조선국왕 연산군》은 ‘88편의 시로 살피는 미친 사랑의 노래’라는 부제에 걸맞게 연산군이 남긴 88편의 시로 그의 내면에 흐르는 광기와 고독, 사랑을 보여주는 책이다. 소설과 해설을 절묘하게 섞어 쓰는 작가의 필력 덕분인지 재밌게 술술 읽힌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어제시가 연산군의 심리 상태와 광기를 잘 드러낸다. 연산군은 잘 알려진 것처럼 조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헤세의 글에서 찾은, 헤세의 문장으로 찾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 헤세의 문장에서 인생을 기댈 수 있는 위로를 찾았다는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마흔 개의 이야기를 통해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혹은 아직 아픔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을 이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하고 있다. 1장 ‘오늘도 난 잘하고 있고 자라고 있어’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자존감에 대한 내용을, 2장 ‘나답게 피어나면 된다고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서’ 에는 나 자신과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한 내용이, 3장 ‘나의 하루에 당신이라는 볕이 들었네’ 에는 사랑과 이별의 내용이, 4장 ‘내가 힘들 때 그냥 꼭 안아주면 좋겠어’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발견한 작은 깨달음의 내용이, 5장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간직되는 시간들’ 에는 나이와 시간 그리고 성장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나의 인생 고민에는 헤세가 어떤 댓글을 달아놓았을지 궁금한 사람들, 저자가 헤세에게서 받은 위로와 도움과 사랑과 용기를, 그리고 행복을, 나눠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투구행(鬪狗行) - 권필 誰投與狗骨(수투여구골) 누가 개에게 뼈다귀 던져 주었나? 群狗鬪方狠(군구투방한) 뭇 개들 사납게 싸우는구나 小者必死大者傷(소자필사대자상) 작은 놈은 반드시 죽고 큰 놈은 다치니 有盜窺窬欲乘釁(유도규유욕승흔) 도둑놈이 엿보다 그 틈을 타려 하네 主人抱膝中夜泣(주인포슬중야읍) 주인은 무릎 껴안고 한밤에 우는데 天雨墻壞百憂集(천우장괴백우집) 비 내려 담장 무너져 온갖 근심 모인다 위 시는 석주 권필의 ‘투구행(鬪狗行)’이란 시다. 우의적(寓意的) 방법을 써서 당쟁(黨爭)을 일삼는 당시 정치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뼈다귀를 던져 주자 뭇 개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무섭게 싸운다. 이때 작은놈은 죽고 큰놈은 다친다. 도둑놈은 그 틈을 엿본다. 그 틈에 나라의 방비는 무너진다. 여기서 큰개는 당시 당파싸움을 하던 대북(大北), 작은개는 소북(小北), 틈을 엿보는 도둑놈은 왜구를 가리킨다.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은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임진왜란 때에는 강경한 주전론을 주장했다. 광해군초에 권세를 가진 이이첨(李爾瞻)이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모든 절망을 경험했기에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제다. 이 책은 총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에서는 늦은 나이에 두려움 없이 도전했고, 다른 이의 시선과 평가에 휘둘리지 않았던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으며, 2장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에서는 정신적‧육체적 고통, 폭력적 시대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산 작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장과 4장에서는 홀로 고독과 외로움 가운데서 새로움을 창조해낸 예술가들의 이야기 <외로운 날의 그림들>과, 일상의 쉼과 행복이 되어주는 존재들을 다룬 작품과 작가들의 이야기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을 소개한다. 작품 소개 말미에 ‘그림의 뒷면’ 코너가 있어 그림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지친 하루의 끝, 이 책에서 소개하는 25명의 화가와 명화가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면 추운 겨울 얼어붙은 마음의 온도를 조금은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까치설날 밤엔 - 윤갑수 어릴 적 까치설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지 엄니가 사주신 새 신발을 마루에 올려놓고 누가 가지고 갈까 잠을 설치던 추억 바람에 문풍지 우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어둠 깔린 문밖을 바라보다 밤을 새우던 설날에 아버지는 뒤척이는 날 깨우신다. 큰댁에 차례 지내려 동생 손잡고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걸어갈 때 질기고 질긴 기차표 통고무신이 눈 위에 도장을 꾹꾹 찍어놓고 기찻길을 만든다. 칙칙 폭폭 기차가 네일 위로 뿌연 연기를 내품으며 달려간다. 마음의 고향으로……. 조선시대에 신던 신은 백성이야 짚신이나 마로 삼은 미투리(麻鞋)를 신었지만, 양반들이 신는 신으로는 목이 긴 ‘화(靴)’와 목이 짧은 ‘이(履)’가 있었다. 그런데 화보다 더 많이 신었던 ‘이(履)’에는 가죽으로 만든 갓신으로 태사혜와 흑피혜, 당혜와 운혜가 있다. 태사혜(太史鞋)는 양반 남성들이 평상시에 신었던 것이며, 흑피혜(黑皮鞋, 흑혜)는 벼슬아치들이 조정에 나아갈 때 신던 신이다. 또 당혜는 당초(唐草) 무늬가 놓인 것으로 양반집의 부녀자들이 신었고, 온혜(溫鞋)라고도 하는 운혜(雲鞋)는 신 앞뒤에 구름무늬가 놓여진 것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한국도로학회에서 《도로 이야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도로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지요. 그러니 한 사람이 다 쓸 수는 없고 도로학회 회원들이 분담하여 썼습니다. 그 가운데는 같은 공군 장교 출신이라 저와 인연을 맺은 손원표 박사도 필진으로 참가하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도 이 책을 보게 되었데, 다양한 이야기 가운데는 아무래도 제가 역사를 좋아하니 도로의 역사 부분에 눈길이 갑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지요? 로마의 첫 포장도로는 기원전 312년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에쿠스 지휘하에 만들어졌네요. ‘아피아 가도’라는 말이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 길을 통하여 병력과 물자만 오간 것이 아닙니다. 이 길을 통하여 로마 문명이 전파되고, 로마제국 이후에도 로마 가도를 따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유럽 문명의 정체성이 유지된 것입니다. 한편 서양은 거리를 나타낼 때 ‘마일’을 쓰지 않습니까? 이게 로마의 도로에서 유래된 것이네요. 로마에서는 가까운 도시부터의 거리를 표시하기 위하여 로마 성인의 1,000 걸음 (약 1,480m)에 해당하는 지점마다 돌기둥을 세웠는데, 여기서 ‘마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김란사! 언뜻 듣기에도 몹시 이국적인 이 이름은, ‘낸시(Nancy)’라는 세례명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김란사는 구한말 태어나 191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조선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아낌없이 헌신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화학당의 교사로 많은 여성을 깨우치고, 또 고종의 비밀문서를 갖고 파리강화회의로 향했던 중요한 업적에 견줘 오늘날 거의 아는 이가 없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애국지사이기도 하다. 아마 파리강화회의로 향하던 중 베이징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아까운 삶을 일찍 마쳤기 때문이리라. 이 책, 《김란사, 왕의 비밀문서를 전하라!》의 지은이 황동진은 서울교육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활동하는 그림작가다. 2017년 김란사 특별전을 기획하고, 전시가 끝나서도 김란사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펴냈다. 김란사는 1872년, 평양의 한 유복한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청나라에 오가며 무역한 덕분에 남부러운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혼인을 10대 시절에 일찍 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녀는 스물한 살에 경무청에서 일하던 하상기와 혼인했다. 여느 여성들과 다르게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일을 적극적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무 1 - 지리산에서 - 신 경 림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 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한국 전통집들은 백성집으로부터 궁궐에까지 모두 나무집 곧 목조건축이다. 우리 전통 목조건축의 기둥은 ‘원통기둥’, ‘배흘림기둥’, ‘민흘림기둥’의 3가지 모양이 있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고 최순우 선생은 ‘배흘림기둥’ 사무치는 고마움을 얘기할 만큼 아름답다고 얘기했다. 여기서 ‘원통기둥’은 기둥머리ㆍ기둥몸ㆍ기둥뿌리의 지름이 모두 같은 기둥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훈맹정음’. 척 보아도 그 뜻이 짐작이 간다. 바로 맹인을 위한 한글점자다. 눈이 보이는 이는 일상적으로 읽는 한글도 맹인에겐 큰 산이다. 점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그들에게 한글점자, ‘훈맹정음’의 존재는 세상을 밝히는 등대요, 촛불이다. 1926년, 이렇게 소중한 ‘훈맹정음’을 만드는 큰일을 해낸 이가 있으니, 바로 박두성이다. 지은이 최지혜는 박두성이 나고 자란 강화도 어느 산자락에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을 운영하며 그림책 《훈맹정음 할아버지 박두성》을 썼다. 박두성은 강화도보다 더 서쪽에 있는 조그마한 섬, ‘교동도’에서 1888년 가난한 농부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였던 박두성의 집안은 교동교회에 봉사하며 신실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어릴 때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지만, 여덟 살부터는 강화도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하고 나서는 얼마간 농사를 짓다가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엔 일반 초등학교에서 보통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스물다섯 살이었던 1913년, 조선총독부 제생원에 속한 맹아학교 선생님이 되어 처음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