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江漢滔滔日夜流(강한도도일야류) 한강물은 밤낮으로 도도히 흘러가는데 先生此去若爲留(선생차거약위유) 선생의 이번 걸음 멈추게 하고파라. 沙邊拽纜遲徊處(사변예람지회처) 모래밭에 매인 닻줄 풀기 싫어 서성이는데 不盡離腸萬斛愁(부진이장만곡수) 애간장 녹는 이별과 무거운 슬픔 가눌 길이 없구나.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계(1501~1570) 선생과의 이별의 아쉬움을 쓴 시입니다. 퇴계는 젊은 임금 선조의 부름을 받고 한양에 올라왔다가, 1569년 3월 4일 선조의 만류에도 다시 고향 안동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번에 낙향하면 다시는 상경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도 퇴계는 그다음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에 대유학자를 볼 수 있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조정의 관리들과 유학자들이 퇴계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전송하였습니다. 퇴계는 길을 떠나 한강을 건너기 전 몽뢰정(夢賚亭)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이때 평소 퇴계를 존경해오던 고봉도 몽뢰정으로 퇴계를 찾아가 하직 인사를 올립니다. 몽뢰정은 정유길(鄭惟吉, 1515~1588, 조선 전기의 문신) 선생이 동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인 금속이다. 수은(水銀)이라는 이름은 ‘물처럼 흐르는 은’이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다. 수은은 진사라고 하는 붉은빛 광물을 불태워서 얻어진다. 고대 중국과 인도에서 수은이 알려져 있었고, 기원전 15세기 이집트 무덤 속에서도 발견되었다. 수은은 옛날부터 알려진 독성물질로서 특히 수은 증기는 매우 해롭다. 도교에서는 불로장수의 약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으며 얼굴을 하얗게 만들기 위한 화장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도교(道敎)에 빠졌던 당나라의 황제들은 불로장수를 위해 단약(丹藥)을 먹었으나, 놀랍게도 황제 22명 중 6명이 아마도 수은중독으로 죽었다고 한다. 수은은 독성이 강하지만 체온계, 형광등, 수은전지, 농약, 의약품, 도금 등 산업 현장에서는 많이 사용되었던 금속이다. 수은이 환경에 유입되면 곡식, 과일, 물고기 등에 축적될 수 있다. 사람이 수은으로 오염된 음식물을 장기적으로 먹으면 신경계통에 장애를 일으키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1932년에 일본 남단 구마모도현의 어촌인 미나마타에 화학비료 공장이 건설되었다. 공장에서는 폐수를 미나마타만으로 흘려보냈다. 공장이 건설된 뒤 21년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옛날 중국의 전국시대에 사광(師曠)이란 금(琴, 현악기의 하나)의 명인이 있었다. 그가 임금의 명을 받아 금을 타기 시작하니 검은 학(鶴)들이 궁문의 기둥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8쌍을 이뤘다. 다시 연주하니 학들이 좌우로 8마리씩 늘어섰다. 3번째 연주하니 학들이 울어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예기(禮記)》 〈악기(樂記)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음악의 힘이 학(鶴)을 불러 모으고 춤을 추게 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일화로 자주 인용되거니와 이런 이야기는 먼 옛날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지난주 서울의 어느 가정집 방안, 거기에 첼로를 안은 여성 주자가 연주를 시작하자 곧 어디선가 백조가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 음악을 듣는다. 사실 이때 연주가는 프랑스의 작곡가 생상스(1835~1921)의 '백조(白鳥)'를 연주한 것이지만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은 실제로 백조가 눈앞에서 유영하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져 있었다. 중국에서 금을 연주했다면 이날 연주한 첼로도 중국에서는 대제금(大提琴)이라고 하니 금이라 할 수 있고, 그러니 그야말로 '금주학래(琴奏鶴來)', 곧 금을 연주하자 학이 날아왔다는 옛 고사성어 그대로다 그동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저의 유년 시절은 농사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찬 이슬 내리는 새벽부터 밤이 이슥할 때까지 참으로 고생이 많았던 시절이었지요. 그 힘든 농사일을 마을 사람들은 힘을 보태서 하는 슬기로움을 가졌습니다. 농사뿐만 아니라 김장하기, 초가지붕 새로 얹기, 겨울 땔나무 하기 등등 큰일이 있을 때마다 품앗이했지요. 함께하는 것은 시너지 효과가 있게 마련이어서 어려운 일도 척척 해 나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1은 결코 2가 아닙니다.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니까요. 초원의 무법자인 표범은 사슴을 잡아먹고 살아갑니다. 초원에 표범이 없으면 사슴들이 행복하게 살 것 같아서 사람들은 표범을 잡아 없앱니다. 초원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사슴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몇 년 세월이 흐른 뒤에 찾아오지요. 사슴 떼가 너무 불어나 풀을 먹어 치워 사막화로 인한 먹이 부족으로 사슴의 대멸종이 다가온 것이지요. 어쩌면 표범은 사슴을 잡아먹는 폭력자가 아니라 초원의 관리자로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므로 표범과 사슴은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공생의 관계로 살아왔던 것이지요. 공생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 되어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위기에 강한 지도자. 흔히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떠올릴 때 위기에 책임 있게 대응하며, 강력한 문제해결력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위기가 닥쳤을 때 지도자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엇갈리고 국민의 미래가 결정된다. 박은정이 쓴 책, 《병자호란, 위기에서 빛난 조선의 리더들》은 ‘병자호란’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 1636년 조선, 조정에 있던 신하들 – 최명길,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이경석, 김상헌이 어떻게 국난에 대응했는지 살펴본다. 이들의 선택은 제각각이었다. 최명길은 화친 국서를 썼고, 김상헌은 이를 찢어버렸고, 홍익한과 윤집, 오달제는 끝까지 화친을 반대하다가 청나라 선양으로 압송당해 죽음을 맞았다. 이경석은 굴욕과 치욕을 삼키며 1,009자의 삼전도비문을 지었다. 이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착잡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신세를 진 명나라의 위세가 어마하던 시기, ‘오랑캐’라 여기던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청 황제를 찬양해야 하는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든 위정자의 일원으로 책임지고 수습해야 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도망간 사람도 많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조선의 임금 가운데 사람들의 마음을 제일 애잔하게 하는 임금은?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사람은 단종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권력에 눈이 어두운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쫓겨 간 단종. 그것도 모자라 17살의 나이에 결국 죽임을 당한 단종. 단종을 생각하며 마음이 애잔해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임금이기에 단종을 신으로 모시는 무속인들도 많지 않은가? 단종이 이렇게 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죽어갔다면, 그의 아내 정순왕후 송 씨는 어땠을까? 단종보다 한 살 더 많았던 정순왕후는 단종이 죽고도 64년을 더 살다가 1521년(중종 16)에 세상을 떴다. 단종과 불과 3년도 안 되는 기간 부부로서 정을 맺었다가, 그 후 오랜 기간 한 많은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정순왕후. 그럼, 정순왕후는 그 오랜 세월을 어디서 어떻게 삶을 이어갔을까? 동대문구 창신동, 숭인동 일대에는 정순왕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지금부터 창신동, 숭인동으로 정순왕후 삶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먼저 가보는 곳은 청계천 영도교다. 이곳에서 정순왕후는 영월로 피눈물을 흘리며 길을 떠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그날 밤, 은비령엔 아직 녹다 남은 눈이 날리고 나는 2천 5백만 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 지나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어 묻고 묻히는 동안 은비령의 칼바람처럼 거친 숨결 속에서도 우리는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작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꿈속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북쪽으로 부리를 벼리러 스비스조드로 날아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은 여자가 잠든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별은 그렇게 어느 봄날 바람꽃처럼 내 곁으로 왔다가 이 세상에 없는 또 한 축을 따라 우주 속으로 고요히 흘러갔다. .... 이순원, 《은비령》 1996년 발표되어 절찬을 받은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은 맨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2천 5백만 년 뒤에 다시 돌아온다는 혜성에 실어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우주라는 영원의 시간에 봉인해놓았다. 18년 전 소설의 무대가 된 은비령을 처음 밟고서 그 느낌을 압축한 글을 쓰면서 나는 그들의 별 대신에 내 마음의 별을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란 별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낯선 공간이 내게 말을 거는 느낌. 공간은 낯설지만, 그 느낌은 퍽 익숙하다. 오영욱ㆍ하성란 등이 쓴 책, 《어떤 외출》은 작가, 건축가, 소설가, 정원 전문가 등 창조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18인의 지은이가 마치 공간과 대화를 나누듯,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하는 책이다. ‘하동 평사리 악양 들판’, ‘통도사 가는 길’, ‘잠실야구장’, ‘서귀포 대평박수 큰 홈통’, ‘양구 방산자기 박물관’ 등 한 번쯤 들어봤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한국의 매력적인 장소들이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그 가운데 특히 마음을 끄는 장소는 ‘상실과 절망을 딛고 선 땅’이라는 부제가 붙은 강진 다산초당이다. 1801년 유배형에 처한 정약용은 강진 땅에서 18년간 머물렀다. 유배되었던 동안 숱한 저술을 남겼고 그 덕분에 우리는 주옥같은 지식을 만났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은 다산에게 고통을 잊는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p.162-163) ‘원지(遠地)’에 부처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형을 받을 때 들었던 한마디 말이다. 유배형을 받은 정약용 선생이 강진 땅을 밟은 해는 1801년이고 거기서 다산 선생은 18년간 머물렀다. …(줄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나라 밖 여행에서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도시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입니다. 도시가 참으로 아름다웠거든요. 특히 네카강 북쪽 언덕에 나 있는 철학자의 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카를테오도어 다리를 건너서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이 길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와 독일의 대문호 괴테, 쉴러, 노발리스 등이 이 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위대한 인물의 발자취도 멋스럽지만 철학자의 길 끝, 네카강 북쪽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하이델베르크의 풍경은 환상적입니다. 초록 숲과 나지막한 건물들, 웅장한 하이델베르크 고성, 멋진 다리와 그 끝을 장식한 쌍둥이 탑문. 네카강의 잔잔한 물결…. 이 길을 걷다 보면, 철학자가 아닌 사람도 철학자 못지않게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습니다. 약간의 오르막이어서 사색하면서 걷기에는 참 좋은 곳이지요. 요즘 사회를 철학의 실종 시대라 규정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도 철학이라는 과목을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진학이나 취업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일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철학을 접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요즘 지구가 이상합니다. 세계 곳곳이 치솟는 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이렇게 고온으로 치닫다 보니 산불도 자주 납니다. 자주 날 뿐만 아니라 바짝 마른 산하에 불꽃이 당겨지면 대형산불로 번집니다. 이번 여름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은 당국도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캐나다 국토를 불태웠으며, 그 연기가 미국 동부의 하늘을 덮었습니다. 뉴스에서 노랗게 변한 뉴욕의 하늘을 보다 보니, 순간 지구의 종말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섬뜩함을 느끼겠더군요.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대기가 요동을 치면서 엄청난 폭우가 지구 곳곳을 때립니다. 바다는 또 어떤가요? 바다 온도도 올라가면서 플로리다 앞바다는 섭씨 38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다와 대기 온도가 올라가니 태풍이, 그것도 슈퍼 태풍이 발달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지구가 더 이상 못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듯이 느껴집니다. 이거~ 제가 호들갑 떨고 있는 건가요? 얼마 전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쓴 《가이아의 복수(The Revenge of Gaia)》를 읽었습니다. 참! ‘가이아가 복수한다니? 가이아가 누구냐?’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