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교수는 차를 집이 있는 대치동으로 몰았다. 차를 아파트 내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거리로 나와 택시를 탔다. 김 교수가 다시 보스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다. 김 교수는 ‘어서 옵쇼!’라고 깍듯이 인사하는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박 교수 일행이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들도 식사를 마치고 방금 도착했다고 한다. 그날은 ㅇ 교수가 박 교수에게 연구과제와 관련하여 신세 진 일이 있어서 한 잔 산다고 했다. 과일과 양주를 주문하고 아가씨를 불렀다. 조금 후에 나타난 미스 최는 김 교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럴 법도 하지. 삼십 분 전에 헤어진 사람을 룸에서 다시 만나니 놀랄 수밖에. 호텔에서 만났을 때 미스 최는 까만 옷을 입었었는데, 어느새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고 서 있었다. “웬일이세요, 오빠!” “너 보고 싶어서 박 교수님 따라왔다. 왜, 싫으니? 싫으면 다른 사람 옆에 앉거라.” “싫기는요, 저는 오빠 옆에 앉을래요.”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눈치채지 못한 박 교수가 미스 최를 바라보며 추궁하듯이 물었다. “미스 최. 자네, 아리랑이라고 아나?” “그럼요. 조정래 씨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비는 참새목 제비과에 속하는 여름 철새다.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일대에서 번식하는 제비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새였다. 야생조류로는 드물게 사람들과 매우 가까이 살았으며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서는 착한 흥부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새로 등장하기도 한다. 제비의 가장 놀라운 특성은 “사람한테 겁을 내지 않는다”라는 점이다. 대부분 동물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피하는데, 제비는 오히려 사람이 사는 집의 처마에 둥지를 튼다. 집에 둥지를 트는 이유는 황조롱이나 매 등의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추측된다. 사람과 가까이 사는 고양이가 제비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비는 다른 새와 달리 진흙을 뭉쳐 수직인 벽에 집을 지어서 어느 정도 공격을 피할 수가 있다. 제비가 가장 많이 집을 짓는 곳은 먹잇감이 풍부하고 집 지을 진흙과 지푸라기를 구하기 쉬운 논밭 근처의 사람이 사는 집 처마 밑이다. 특이한 점은 다른 조건이 다 갖춰져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제비가 집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사람 사는 집이 뱀이나 다른 새 등 천적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비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것저것 물어보니 아가씨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석촌 호수 근처의 연립주택에서 남동생과 함께 세 들어 사는데, 차는 세피아를 탄단다. 어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새엄마와 신림동에 사신단다. 피자를 먹은 후 커피를 주문하여 마셨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다고, 시계를 보니 7시 반이 되었다. 창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이층에서 내려다보니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씽씽 달린다. 보도에도 사람들이 바삐 걸어간다. 바쁜 사람들 틈에서 두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남녀가 왠지 다정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하는데, 이 아가씨는 출근해야 하는구나. 사람이 원래 낮에 일하고 밤에 자야 하는데, 이 아가씨는 그 반대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김교수가 물었다. “몇 시까지 출근하나?” “8시까지 가면 돼요.” “그래 그러면 지금 나가야겠구나. 내가 태워다 주지.” 김 교수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끝내고 주차증에 도장을 받았다. 계산서 액수가 만 원 이상이면 두 시간까지 주차가 무료라고 한다. 한 시간에 최소 오천 원은 쓰라는 이야기이다. 커피숍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러다가 누구를 만나면 꼼짝없이 ‘호텔에서 나오는 두 남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내와의 냉전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아가씨와 전화한 이후 김 교수는 왠지 즐거워졌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기다리던 금요일 오후가 되니 김 교수는 아가씨를 만날 생각에 사로잡혀 가벼운 흥분 상태가 되었다. 호텔에서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이후 처음인 것이다. 젊은 아가씨였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란 지금부터 20년 전 까마득한 과거 일이다. 그때 청년이었던 김 교수는 가슴이 뛰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제는 아내가 된 아가씨와 함께 다방에 가고 음악 감상실에 가고 고궁에도 갔었다. 아아, 인생은 무상하구나.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그렇게도 곱던 아가씨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아내의 눈가에는 이제 주름살이 생겼다. 내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가씨는 중년의 아줌마로 변하였다.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던 아가씨는 20년이 지나자, 변하였다. 이제는 고3 아들의 수능시험 성적 1점이 직장 생활에 시달리는 남편보다 더욱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냉전 중인 아내는 오늘 자기가 집에 늦게 들어가더라도 아무 말도 안 할 것이 뻔하다. 언제부터인지 남편은 아내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옛말에 “홧김에 서방질한다”라는 말이 있다. 김 교수는 싸움이 오래 계속되고 남편으로서의 욕구가 채워지지 못하니 “홧김에 바람피운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심정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전국의 아내들이 귀담아들을 속담이다.) 나뭇잎이 뚝뚝 떨어지는 어느 날 오후, 김 교수는 문득 미스 최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가을 햇살은 따사로이 비치고 있었다. 햇살 속에는 약간의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연구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오동나무에서 커다란 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김 교수는 자기의 인생도 언젠가 끝이 나고, 저 오동나무 잎처럼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상념에 사로잡혔다.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보다. 그날 김 교수의 행동은 분명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왜 그랬을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그 날은 매우 아름답고도 쓸쓸한 가을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미스 최에게서 받은 전화번호를 들여다보며 10초 정도 망설였다. 그러다가 김 교수는 크게 용기를 내어 전화번호를 눌렀다. 마침 미스 최가 받았다. “여보세요, 김00 교수입니다.” “아, 오빠세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백로(白鷺)는 왜가리과에 속하는 흰새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백로에 속하는 조류는 지구상에 12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5종이 있다. 가장 흔한 백로가 중대백로이고 다음으로는 중백로가 많다. 노랑부리백로, 쇠백로, 대백로가 모두 백로에 속한다. 백로는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로 상징된다. 따라서 시문에 많이 등장하며, 화조화(花鳥畵)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백로와 비슷한 흰새로서 두루미가 있다. 두루미는 두루미과의 새로서 왜가리과인 백로와 과(科)가 다르다. 두루미가 백로와 다른 점은 머리끝이 붉다는 점이다. 두루미는 머리끝이 붉어서 단정학(丹頂鶴)이라고도 부른다. 두루미의 영어 이름은 red-crowned crane이다. 두루미와 학(鶴)은 같은 새의 다른 이름인데 두루미는 우리말이고 학은 한자일 뿐이다. 학은 수명이 길어서 십장생(十長生)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장수의 대명사인 학은 천 년을 산다고 하지만 과장이라고 하며, 실제로는 86살까지 산 두루미가 있었다고 한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은 지금은 세상을 뜬 작가 이청준의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화한 것인데, 원작에서는 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박 교수와 점심 내기를 하고 나서 며칠 뒤에 김 교수의 가정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 교수는 고3 아들이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늦둥이 딸이 하나 있다. 김 교수의 자녀 교육 방침은 자유방임에 가까웠다. 공부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부모가 시킨다고, 과외 선생을 붙여준다고, 안 하는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3 아들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10등 이내의 상위권에 들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학급 석차가 10~20 등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정도의 실력이었다. 담임선생님 말로는 이러한 성적권의 학생들을 진학 지도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조금만 잘하면 이른바 서울대학(요즘에는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이면 다 서울대학이라고 부른다)에 보낼 수 있겠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된다. 어느 가정이나 사정은 비슷하리라. 교육과 관련한, 남편은 대개 방임형이고 아내는 극성형이다. 대학까지 나온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가 대학에 못 가면 자기가 창피를 당하는 줄로 안다. 자기가 모자라서 자녀가 공부를 못하고 대학에 못 가는 줄로 잘못 아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한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는 꼭 대학에 보내야만 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는 쉬지 않고 태양 주위를 돌면서 가을이 깊어 갔다. 봄이 여자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다. 봄이 되면 여자들은 생기가 나고 멋도 부리고 싶고 노출되는 옷으로 치장을 하고 싶어진다. 여자들은 봄에 괜히 들뜬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속된 말로 하면 여자는 봄에 물이 오른다. 여자가 바람나기 쉬운 계절이다. 남자들은 가을이 되면 괜히 울적해지고 감상에 젖는다. 낙엽 떨어지는 돌담길을 걷고 싶어진다. 어디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인생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념에 사로잡힌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고서 어떤 남자는 우울증에 빠진다. 어떤 남자는 시를 쓰기도 한다.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날,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떤 남자는 종교에 귀의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라는 깨달음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한다. 여기서 행이라는 말의 의미는 광범위하다. 보이는 사물, 느끼는 감정, 관념적인 개념 등등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행이라고 말한다. 제행무상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는 뜻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일자: 2024년 2월 16일(금)~17일(토) 답사지: 삼봉기념관, 남양 향교, 화성 당성, 융건릉, 수원 행궁, 수원 화성 참가자: 14명 답사기 쓴 날짜: 2024년 3월 8일 국토학교는 이원영 전 수원대 교수(그의 호를 따라 아래 병산으로 이름)가 주관하여 2023년 9월에 시작한 국토 답사 프로그램이다. 국토학교 회원들은 우리나라 국토에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를 월 1회 1박2일 일정으로 답사한다. 국토학교가 다른 답사 모임과 다른 점은 첫째 날 밤에 사회 각 분야의 유명 인사를 초빙하여 강연을 듣고 공부한다는 것이다. 국토학교 답사는 1년 동안 진행되는데, 회원이 아니더라도 중간마다의 답사에 준회원 자격으로 참가할 수가 있다. 2024년(갑진년) 2월의 답사 주제는 ‘삼봉 대감과 정조 임금의 발자취를 따라서’였다. 첫째 날은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 있는 삼봉기념관과, 화성시 남양면에 있는 향교와 화성 당성, 그리고 화성시 봉담면에 있는 융건릉을 방문한다. 답사지가 조금 많은 느낌이지만 모두 수도권에 있고 버스로 이동하기 때문에 무리한 일정은 아니다. 둘째 날에는 수원 행궁과 수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두 번째 만남 사람이 먹고살 만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개성을 알 수 있다.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재산을 늘리기 위하여 주말이면 부지런히 땅을 보러 다닐 것이다. 돈이 좀 있는 사람은 골프나 스키를 타고, 돈이 없는 사람은 낚시나 등산하러 다닐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교회나 절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한다. 돈도 열정도 없는 사람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인생을 진지하게 배우는 자세로 사는 소수의 사람은 책을 읽는다. 책 읽기는 다른 취미에 견줘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며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취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론상 매우 쉽지만 그렇게 쉬운 취미는 아니다. 책을 읽으려면 돈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 책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슨 일로던 세상살이에 바쁜 사람은 책을 읽지 못한다. 바쁘지 않은 사람, 혹은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독서를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일본을 여행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놀라는 것은 지하철에서 모두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