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누르하치는 스스로 반문하는 형국이 되었다. 방금 전만 하여도 김충선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여진을 방문한 목적을 사적인 행위로 규정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졸렬한 짓이며 비겁한 짓인가?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변절하는 것은 군자답지 못한 행위로 소인배나 하는 일로 여기는 누르하치였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직감을 확신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인가? 이번에는 오히려 김충선이 누르하치의 견해를 반발하고 나서지 않는가. 이 작자는 당연히 누르하치의 생각에 백 번이고 동조해야 마땅한 노릇이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든지 교활하게 간이고 쓸개고, 어디든지 달라붙을 위인으로만 생각 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번에는 누르하치를 상대로 배짱을 부린다. 분명히 대답 올릴 수 있습니다. 조선은 정복하기가 진정 불가능한 나라이옵니다. 여진이 조선을 주적으로 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옵니다. 굽어 살피옵소서. 감히 여진의 칸에게 맞서려는 것이냐? 칸이시지요. 암요, 당연히 칸이 되어야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경솔한 행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고약한 위인이었다. 어설프게 측정 할 수
누르하치는 스스로 반문하는 형국이 되었다. 방금 전만 하여도 김충선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여진을 방문한 목적을 사적인 행위로 규정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졸렬한 짓이며 비겁한 짓인가?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변절하는 것은 군자답지 못한 행위로 소인배나 하는 일로 여기는 누르하치였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직감을 확신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인가? 이번에는 오히려 김충선이 누르하치의 견해를 반발하고 나서지 않는가. 이 작자는 당연히 누르하치의 생각에 백 번이고 동조해야 마땅한 노릇이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든지 교활하게 간이고 쓸개고, 어디든지 달라붙을 위인으로만 생각 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번에는 누르하치를 상대로 배짱을 부린다. 분명히 대답 올릴 수 있습니다. 조선은 정복하기가 진정 불가능한 나라이옵니다. 여진이 조선을 주적으로 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옵니다. 굽어 살피옵소서. 감히 여진의 칸에게 맞서려는 것이냐? 칸이시지요. 암요, 당연히 칸이 되어야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경솔한 행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고약한 위인이었다. 어설프게 측정 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의 인물이었다.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누르하치는 물론이고 일패공주의 안면에 가득 의혹이 떠올랐다. 틀렸다고? 황송하옵니다만 그것은 칸의 속단이었다고 감히 말씀 올리겠나이다. 누르하치의 조그마한 눈빛에서 섬광이 일렁거렸다. 좋다. 너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들어 보겠다. 목숨을 연장하고자 거짓을 발설한다면 단순히 수급을 베는 것이 아니라 팽형(烹刑)을 집행하여 그 육신을 새들의 먹이로 뿌리게 될 것이다. 팽형이란 형벌은 글자 그대로 살아있는 사람을 끓는 물에 삶아 죽인다는 것이니 극단의 극형이라 할 수 있었다. 일패공주는 일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누르하치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번복되는 일이 없다. 그것은 칸의 절대적인 권위였다. 아, 부디......! 일패공주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김충선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달려 있지 않은가. 그러나 김충선은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누르하치를 향해 말했다. 소신은 감히 엎드려 칸에게 용서를 빌고자 달려왔습니다. 용서라니? 김충선이 그 자리에 부복하였다. 소신이 목숨을 걸고 아뢰옵니다. 소신이 조선 땅에 들어와 일패공주마마를 뵙고 사모와 흠모의 마음이 하늘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그 순간에 일패공주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녀는 손끝에서 파르르 경기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간절한 눈빛으로 누르하치를 올려다보았다. 그 어인 명령이시옵니까? 살려둘 수 없다고 말하였다. 아바마마? 조선을 모르느냐? 네가,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느냐? 금방이라도 망할 듯 망할듯하면서도 다시 불꽃처럼 파랗게, 놀랍도록 시퍼렇게 살아나는 것이 저들이다. 그들 민족의 뿌리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도록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내분으로 다툼이 왕성하다가도 외부의 세력이 준동하게 되면 또 다시 하나가 되어 무서운 저항을 벌리는 것이 저들이다. 소녀가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저 자는 이제 조선인이다. 누르하치는 김충선을 손가락질 하였다. 그렇지만 김충선은 어떤 변명도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침묵하였고, 이것이 유일한 방도라고 스스로를 위안하였다. 누르하치의 목적이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인 김충선을 거부하는 것은 분명했다. 정확히 아뢴다면 그는 조일인이지요. 조선과 일본을 조국으로 둔 위인이란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난 사전에 우리의 가장 막강한 적으로 남을 조선 장수를 응징하고자 하는 것이다. 날 가로막을 생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그가 성공하였습니다. 일패공주는 흥분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침착하게 칸을 향해 말했다. 누르하치는 단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따라 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패륵이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환하게 웃었다. 대단한 감동이었소. 김충선은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행이옵니다. 만족을 드려서. 그러자 불쑥 누르하치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가늘게 찢어진 눈이 더 사납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짐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김충선이 황급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소신이 불민하여 칸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니 널리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량을 베푸시어 어리석은 소신에게 혜안을 내려주소서. 일패공주는 당황하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절대 김충선이 잘못한 것이 없지 않은가. 칸의 노여움은 대관절 어디서 비롯되었단 말인가. 애가 탔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누르하치의 피를 이어받은 여진의 공주다웠다. 당신은 여전히 아둔하군요. 아버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소. 난 나의 실수를 모르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나의 실수를 지적해 주시오. 일패공주는 살짝 부친의 눈치를 살피었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어떤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앞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누르하치를 비롯한 김충선과 일패공주, 패륵왕자의 시선이 깜찍하면서도 도발적인 홍타이시에게 집중 되었다. 홍타이시는 입을 삐죽거렸다. 이러다가 깜깜한 밤중이 되겠어. 그럼, 정말로 독수리 사냥 구경을 할 수 없는 것이잖아. 난 강궁으로 독수리를 사냥하는 광경을 보고 싶단 말이야. 그건 정말 흥미 있는 구경거리니까 난 꼭 보고 말테야. 후금의 칸이 될 누르하치는 어린 왕자에 대하여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그래, 무릇 장부란 뜻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는 법이지. 우리 멀리 조선에서 오신 귀하신 손님의 재간을 감상 하도록 하자꾸나. 일이 커진 느낌이었다. 이제는 누르하치가 참관하게 되니 김충선으로서는 더 이상의 궁색한 변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누르하치가 성공 했다면 나 역시 성공할 것이다! 김충선은 스스로 다짐하였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충선의 손에 들려있는 칸의 강궁으로 모아졌다. 특히 누르하치를 졸라서 이 자리에 데려 온 홍타이시는 까만 눈동자를 반짝 거리면서 김충선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 흡! 김충선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황금색 화살의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김충선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공손히 누르하치의 강궁을 받아드렸다. 묵직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서 그의 가슴을 온통 뒤흔들었다. 이 자와 한판 도박을 벌려야 한다! 여진의 칸 누르하치의 환심을 사야만 개벽의 서막을 제대로 열 수 있는 길이 아니던가. 이순신의 나라를 위해서 전부를 바치고자 했던 젊은 장수 김충선은 강궁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성공할 수 없다면 그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천명이 조선을 굽어 살핀다면 그는 성공할 것이었다. 넌 자신이 별로 없어 보인다. 누르하치가 엷은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김충선의 아래 위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칸의 강궁을 대하는 것도 황송하온데, 심지어 지엄하신 옥체로 직접 하사 하시니 소생 몸 둘 바를 몰라 이러합니다. 김충선은 최대한 정중하게 예를 다하였다. 그따위 격식은 조선 왕의 어전에서나 뱉어 내거라. 난 자유로운 위인을 본래 숭상한다. 그대에 대해서 보고 받기로는 아주 담대하고 열정적이며 파격적이기까지 하다고 들었거늘, 어찌 이 모양이냐? 여진의 칸 누르하치는 약간은 경멸의 시선으로 김충선을 대하였다. 김충선은 상대의 돌연한 태도에 전혀 굴하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로 응대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김충선의 담담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대하며 일패공주는 지난날의 그의 내력을 상기하였다. 김충선, 일본 이름은 사야가(沙也可).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2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의 장수로 바다를 건너왔다. - 임진년 4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머리 숙여 조선국 절도사 합하에게 글을 올리나이다. 지금 제가 귀화 하고자 함은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중략) 단지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 사야가 김충선은 부하 장병 3천을 이끌고 조선에 투항하였다. 실로 천지가 개벽할 만한 상황이었다. 누가 그의 항복을 믿을 수 있겠는가? 임진년 초의 전세는 누가 보더라도 조선의 일방적 패배였다. 일본군의 맹공에 속수무책인 조선왕조는 몽진을 감행 하였고 불과 개전 20 여 일만에 한양이 점령당하는 수모를 당하였다.임금 선조는 조선을 버리고 명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려고까지 한 절박한 지경이었다. 그런데, 왜 사야가 김충선은 그런 막대한 힘을 소유하고 있는 일본을 배신하고 조선으로 투항하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하지만 김충선은 별로 난감해 하지도 않았고,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변호 하려는 일패공주에 대해서 고마운 심정이었다. 또한 패륵 역시 적의의 시선을 거두고 있다는 것에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 문제는 꼬마 홍타이시였다. 어서 화살을 장전하지 않고 뭐하누? 홍타이시는 제법 거만하게 내뱉었다. 왕자님, 송구하옵게도 이 사람이 조선에서 달려오면서 미처 소생의 활을 챙겨오지 못했습니다. 화승총만 소유하고 있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든 것이 오늘날의 낭패를 안겨 주는군요. 김충선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홍타이시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무슨 뜻이요? 소생이 활을 준비하지 못했으니 대신 다른 활을 사용할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강궁이 필요합니다. 강궁이라? 창공을 비행하는 독수리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일반 활로는 무리옵고 반드시 강궁으로만 가능하옵니다. 일패공주는 순간적인 김충선의 기지에 내심 감탄했다. 이 사람을 용맹한 장수로만 생각하고 있었거늘...... 이런 임기응변을 지니고 있었군. 패륵 역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김충선의 노련함에 고개를 저절로 끄덕였다. 홍타이시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
[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김충선이 화살을 사용하여 독수리를 사냥하겠다고 나서자 일패공주는 우려를 나타냈다. 물론 김충선이 비범한 무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화살은 그의 전문이 아니었다. 그가 백발백중 명중률을 자랑하는 것은 화승총이었다. 당신은 화살에도 자신이 있다는 건가요? 다만,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너무 무리한 청을 수락하는 건 아닌가요? 지금이라도 철회를 하는 게 어떨까요? 홍타는 아직 어리고, 비교적 내 말을 잘 듣는 편이니 다른 것으로 인정받으면 되지 않겠어요? 일패공주는 진심으로 김충선을 염려하고 있었다. 장부의 말 한 마디는 그것으로 족하오. 자칫 대업을 망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녀는 김충선과 부친 누르하치가 혹여 대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하는 모양이었다. 공주의 조언을 듣고 보니 내가 경망되게 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니 만일 실패 한다면 나 또한 개벽의 대업을 망가뜨린 죄인으로 목숨을 담보해야 할 것이요. 무서운 말이었다. 이번 일로 만일 여진의 칸을 만나지 못하는 일이 발생 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내 놓겠다는 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