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아들이 위험에 빠지자 호신용 단검을 냅다 던졌다. 예리한 단검은 파공음을 내면서 그대로 이회에게 달려들던 자객의 눈을 파고들었다. 악! 복면을 착용한 자객이 눈을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허벅지의 자상과 눈의 상처로 인해서 풀썩 주저앉았다. 이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을 돌리면서 위에서 아래로 칼을 내리 그었다. 상대방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순간이었다. 타앙- 이완과 대적을 하던 다른 자객이 비스듬히 몸을 돌리면서 이회의 칼을 중도에서 튕겨냈다. 그는 동료가 위기에 처하자 본능적인 방어 자세로 바뀌었다. 칼날을 정면으로 세우고 한쪽 눈에 단검이 박혀버린 동료 자객을 부축했다. 날 두고 가라. 비장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자객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같이 죽는다. 아니면 같이 돌아간다. 부상당한 동료를 그대로 두고 떠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순신의 좌우에서는 회와 완이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칼을 겨누고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뿌연 달빛아래 그들은 숨이 막히는 긴장감으로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천천히 완의 발이 움직였다. 가만. 그런 완의 소매를 붙드는 것은 이순신이었
[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어서 일어나라. 이순신은 곤하게 잠들어 있는 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순신을 보필하면서 남하하던 중이라 여간 피곤한 몸들이 아니었으나 회와 완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쉬, 조용히! 이순신이 입을 다물라는 시늉을 보내는 순간에 회와 완은 이순신의 손에 들린 단검을 발견했다. 그들은 일거에 잠이 달아남을 느낄 수 있었다. 자객들이다. 자객들이란 말에 회와 완은 즉시 자신들의 병기를 꺼내 들었다. 전시이기 때문에 호신용 칼을 소지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들은 방문의 좌우에 서서 긴장된 눈초리로 밖의 동정을 살폈다. 어떤 소음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들이 막 의아하게 생각하는 순간 달칵하고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합! 이순신은 별안간 외마디 기합성을 토해냄과 동시에 방문 출입구의 문짝을 향해서 돌진하면서 냅다 발길질을 감행 하였다. 우지직, 하는 소음과 동시에 문짝이 부숴져 나가면서 어이쿠하는 비명이 터졌다. 자객 한 명이 제대로 문짝과 동시에 뒤로 나가떨어진 모양이었다. 이놈들! 이회와 조카 완이 그 틈새를 이용해서 뛰쳐나갔다. 조카 완의 칼날이 바닥에 나가떨어진 자객의 허벅지를 베었다. 아야...야.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이순신은 잠에서 문득 깨어났다. 꿈자리가 몹시 사나웠다. 미열이 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공기가 답답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임시로 마련해준 관사(官舍)는 제법 정갈하였으나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란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나도록 편안한 잠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 같았다. 주적을 몰아내기 전에는! 왜적을 물리치기 전에는 절대 안락한 보금자리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터였다. 그가 결행해야 할 위업은 참으로 막중한 것이었다. 이순신은 밖으로 나왔다. 너희들에게 거는 기대가 참으로 크다. 이순신은 만주로 떠나간 항왜 장수 김충선과 둘째 아들 울을 떠올렸다. 그들도 혹여 이 달을 보고 있으려나? 달빛은 심난하였다. 밝지 않았으며 안개에 휘감긴 듯 흐리기까지 하였다. 이순신은 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때였다. 인기척이 담장 밖에서 일어났다. 미세한 소음이었으나 무장 이순신은 감지할 수가 있었다. 칼을 뽑는 소리다! 이순신은 긴장감을 느꼈다. 자신을 보호해줄 능력을 지니고 있는 젊은 장수들은 현재 이곳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관사 건너 방에는 큰아들 회와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허, 이것 참...이 장군의 아드님이라 어쩔 수도 없고. 무슨 뜻이요? 고진규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러자 상당히 사나워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 이 공은 부친의 일이 제대로 된 것이라 생각하오? 무엇이 잘못 되었소? 이울의 태도에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버리는 그들이었다. 정신 나간 놈일세! 박정량과 전승업, 고진규가 이울을 외면했다. 이울은 다시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왕은 도주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왕권의 보존을 위하여 잠시 피했을 뿐이요. 부친의 일 또한 사사롭게는 인정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었으나 왜적을 목전에 두고 군기를 강화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듣기 싫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요? 이울은 그들의 분노를 은연중에 무시했다. 작금의 사태는 매우 위중하오. 아시겠지만 왜적은 물러난 것이 아니라 호시탐탐 재침략을 노리고 있소이다. 귀 공들은 이러한 시기에 왕과 신료들에 대한 불만만 쌓아둘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위로는 상감과 아래는 만백성들을 보존하기 위한 작업에 매진해야 할 것이외다. 이런 국면에 있어서...... 급기야 고진규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장군의 아드님이라 혹시나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또한 2차 전투에서 몰살당한 조헌 의병장과 영규대사 등 의병과 승려 700 여 구의 시신을 수습했던 의병장 조헌의 제자 박정량(朴廷亮)과 전승업(全勝業)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 날의 참상을 되새기며 울부짖었다. 이울은 그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고진규와 전승업은 각기 아버지와 조부, 스승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선을 침범한 왜적들에 대해서 철저한 원한을 품고 있음이 당연했다. 이울은 그들과 따로 한적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술을 마셨다. 어떻게들 지내십니까? 이울은 우선 의병장 조헌의 제자들에게 물었다. 울화통을 간신히 참고 있을 뿐이지요. 박정량이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무슨 말씀이온지? 박정량은 기개가 남다른 중봉(重峯)의 제자였다. 임금께옵서 하는 짓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아니, 지금이 어디 시기인데 부친을 압송하고 백의종군을 시키신단 말입니까? 그게 정신이 올바른 임금님이 하실 일입니까? 전승업 역시 혈기가 방자했다. 백 번 잘 못하신 처사입니다. 조선의 희망이 뉘십니까? 이순신 장군을 그리 대접해서는 아니 됩니다. 조선에 주둔한 명군들은 적을 몰아낼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장군에게 죄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도승지 오억령은 즉석에서 서찰을 작성했다. 내용은 조정의 공문을 유실하여 임금에게 근심을 안겨 주었으며 비변사에게 혼란을 야기 시킨 죄로 감금되어 있는 선전관 조영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임금의 죄를 대신 누명쓰고 붙잡혀 있는 조영을 석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논지였다. 그런데 주서, 구대일이란 자는 어떤 자 입니까? 도승지의 눈썹이 치켜졌다. 구주서를 아는가? 강두명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오나 다소 발칙한 면이 없지 않아서. 하하하, 풍류를 아는 선비일세. 풍류라 하시면? 구주서 말이야... 가끔은 뚱딴지 같이 엉뚱한 구석이 있네만 임기응변(臨機應變)이 좋네. 일이 신속하고 음주에 가무를 아주 즐기는 편이지. 사헌부의 강두명은 한 마디로 그를 폄하했다. 한량(閑良)이로군요. 그러나 승정원의 직무에는 꽤 충실하다네. 그렇습니까? 강두명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 놈이! 하고 구대일은 인상을 구겼다. 처음부터 탐탁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만일 이순신의 이름을 그가 거론하지 않았다면 도승지와의 대화를 엿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구대일이 유일하게 존경하는 친구 김충선의 일이었기 때문에 이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강두명은 실수를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으나 설마하니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하고 자신을 위안하였다. 상대가 내막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정이 되었다. 사헌부의 지평나리이십니까? 의정전 앞으로 구대일이 아닌 다른 젊은 관리 한 명이 나와서 공손하게 물었다. 그렇소만? 구대일 주서님께서 지평나리를 도승지영감에게 모시라 분부하셨습니다. 이런 때려죽일 놈이 있나? 강지평은 혈압이 상승하였다. 결국 송사리마냥 자신은 빠져 나가고 만 셈이 아닌가. 두고 보자! 심사가 뒤틀어진 강두명의 입에서 쇳소리가 났다. 앞장서라. 조영을 방면하라는 것인가? 도승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강두명은 턱을 가만히 끄덕였다. 선전관에게 어떤 혐의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자는 장계를 유실했지. 왜 이러십니까? 도승지영감! 도승지 오억령은 노련한 정 3품의 당상관이었다. 수군통제령의 중요 장계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궁궐에서 큰 사단이 발생했음을 모르는가? 임금의 체통에 위엄이 서지 않은 일이였어. 그러나 강두명 역시 예사롭지 않은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사헌부의 지평이란 알려진 관직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도승지 영감은 무슨 일로 뵈려는 것입니까? 궁금하오? 헤헤, 뭐...조금...... 내가 구주서의 질문에 반드시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 대해서 동의 하시오? 강두명은 다소 싸늘한 어조로 승정원의 주서 직위에 올라있는 구대일에게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상대도 만만하지 않았다. 용건이 분명하지 않으면 서리(書吏)를 불러 모시도록 하는 게 어떨까 해서요. 강두명은 기분이 나빠졌다. 말하자면 용무를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승정원의 말단 부하에게 자신을 떠넘기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구주서는 사헌부 지평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 같소. 강지평께서 승정원을 홀대 하시는 것은 아니고요? 이 놈 봐라? 강두명은 제법 언중유골(言中有骨) 대꾸하는 구대일에 대해서 불쾌한 심사가 되었다. 어명을 받들고 오는 길이요. 임금의 명령이라면 그대로 기가 질리고 말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강두명이 던진 말이었다. 필경 기겁을 하고 몸을 도사릴 일이었다. 그런데 이 구대일이란 작자는 다른 평범한 관리들과는 달랐다. 어명이라고 했소? 분명히. 크큭... 장난하시오? 어명이라면 전하께서 친히 도승지영감을 어전으로 부르셨을 것입니다. 무엇
[그린경제/얼레빗 유광남 작가] 내관의 여자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내시의 몸으로 여자를 취할 수 있겠는가? 진상이 알려진다면 궁궐이 크게 시끄러워질 수 있는 일이었다. 고명수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인사는 사양일세. 주의 하겠나이다. 고명수 내관은 화제를 돌렸다. 상감마마를 뵈었던 일은 어찌 되었는가? 도승지 영감을 만나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안내하지. 따라 오시게. 고명수는 직접 사헌부의 지평 강두명을 승정원으로 안내하였다. 임금을 측근에서 모시는 내관이 일개 지평을 위하여 길을 나서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승정원 입구에서 그들은 관리 한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소생은 승정원 주서 구대일이라 하옵니다. 어인 용무 시온지? 도승지를 뵈러왔소. 강두명은 다소 힘이 들어 간 눈빛으로 거만하게 대꾸했다. 구대일은 눈치가 매우 빠른 인물이었다. 제법 나이가 든 내관이 함께 한 것으로 미루어 평범한 신분 같지는 않았다. 동행이시옵니까? 내관 고명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세. 난 이만 돌아갈 것이야. 구대일은 황급히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혹시 상감마마를 모시는 상선 영감 아니십니까? 고내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강두명은 자세를 더욱 공경히 하며 바싹 낮추었다. 의금부에 있는 줄로 아옵니다. 선전관 조영은 통제사 이순신의 장계를 받아오는 도중에 유실하였다. 선조는 능숙하게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일을 끄집어냈다. 조영은 없는 죄를 실토하고 의금부에 감금되어 있는 중이었다. 왕의 교묘한 술수에 말려들었던 그는 이순신을 제거하지 못한 벌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강두명은 자기 역시도 이번 왕의 밀명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경우 선전관 조영의 꼴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오로지 상감마마의 은총만을 고대하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그래..... 사헌부에서는 그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제는 오히려 조영을 위한 탄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두명의 두뇌는 빛보다도 빠르게 왕성하게 움직였다. 선조가 조영의 이름을 들먹이는 순간부터 그는 왕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도승지와 좌의정을 우선 찾아가야 할 것이다. 선조의 하명이었다. 강두명은 대전을 물러나며 머릿속으로 일의 순서를 차례로 열거해 보았다. 좌의정 육두명과 도승지 오억령은 왕이 수족처럼 아끼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선조의 측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