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김충선의 행적을 수소문 하게나. 난 이 길로 상감을 뵈어야겠네. 그러지. 오표가 가뜩이나 예리한 눈에 힘을 주어 부하들을 둘러보자 살벌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당장 김충선의 행방을 추적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하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표는 품안에서 명주 수건을 꺼내어 손가락 마디 4개를 소중히 싸매었다. 임금님께 올리시게. 김충선을 놓친 벌칙이라고 말씀 올리고 또 다른 실수가 발생할 경우 이번에는 목을 바칠 것이라고 전하시게. 강두명은 다소 떨리는 손으로 그가 내미는 명주수건을 건네받았다. 금방이라도 절단 된 손가락들이 그 안에서 꿈틀 거리는 것만 같았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이럴 필요가 있을까? 오표는 냉정한 신색을 잃지 않았다. 군주에 대한 충성의 맹세와도 같은 것일세. 강두명은 내심 혀를 찼다. 과연 오표란 인물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운 집념과 도발적인 욕망을 소유하고 있는 자였다. 의금부 나장에서 어전(御殿)의 내금위로 신분 상승을 꾀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음이 다시 한 번 입증 되었다. 이런 작자를 만난 것은 어쨌거나 강두명으로서는 행운이었다. 상감마마의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장부의 약속은 천금보다도 귀중한 것을! 하지만 기회는 다시 있을 것이옵니다. 저하를 외면할 수밖에는 없으나 결코 잊지는 않겠습니다. 김충선은 걸음을 빨리 옮겼다. 장예지의 행방을 확인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인지는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녀를 포기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예지낭자, 난 이제 여진으로 가야 할 것이요. 김충선은 조선을 떠나서 여진으로 갈 예정이었다. 이순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여진은 매우 중대한 역할을 감당 할 것이었다. 여진의 족장 칸 누루하치는 임진 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에 2만 원군의 파병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물론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그 제안을 수락하지 못했었다. 우린 10만 여진의 용병이 필요하다. 김충선은 내심 중얼거리며 방향을 북쪽의 자하문(紫霞門)을 향해서 힘 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둠이 무섭게 몰려들고 있었다. 울적한 심야로군. 밤길을 이토록 두려움 없이 걷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연인이라 믿었던 장예지를 찾지 못하고 조선을 떠나는 김충선의 마음은 지독히 아팠다. 그 통증으로 주변의 그 어느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는지 모른다. 인왕산은 험준했고 때때로 호랑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그러나 이렇게라도 행동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으며 영문을 알 수 없기에 답답함은 더욱 컸다. 장예지는 분명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그녀는 결코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일이 해결될 조짐이 보이자 내가 부담스러워졌던 것이요? 김충선은 그리 생각 되었다. 장예지는 둘도 없는 조선의 친구 김덕령의 여자였다. 동시에 서로의 연모(戀慕)를 확인 하였으나 조선의 시대적 규범에 의해서 그 마음을 억누르고 외면했었다. 우리 이제 가까스로 다시 해후했거늘. 어디로 또 달아난 것이요. 예지낭자! 가슴이 미어졌다. 울고 싶을 때 울었으면 좋으련만 김충선은 그리하지 못했다. 나라를 위해, 이순신을 위해서는 눈물이 통곡 되었으나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울어 줄 눈물은 이상하게도 인내(忍耐)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김충선은 오늘 밤이 지나면 더 이상 방황할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새 하늘을 열어야 하는 개벽의 임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윤자신의 앞에서 이순신과 김충선은 상호 불화(不和), 불신(不信)의 연기를 해야만 했지 않은가. 조선 왕의 의심에서 그들은 절대 자유로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물론 전사한 의병장과 의병들에게 장군의 이름으로 애도(哀悼)를 표하고 그들의 공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해 주고! 김충선은 세심한 부분까 지 설명했다. 이울은 이른바 그가 포석(布石)을 시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역시 이 일본에서 온 조선 놈은 대단했다. 존경심이 봄날의 싹처럼 피어올랐다. 푸른빛이었다. 명심하겠네. 그리고 곽재우 장군님도 물론 찾아뵙겠네. 내가 여진으로 떠났다고 말씀 올리시면 곽장군은 모두 이해하실거야. 김충선은 홍의장군 곽재우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이순신의 무고를 애초에 믿고 있었고 그 자신 역시 한때 모함에 빠져서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지 않은가. 그때 곽재우는 가까스로 누명을 벗었으나 김덕령은 덫에 빠져 나오지 못했었다. 이울 역시 곽재우라면 능히 이순신의 한 팔이 되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가장 기뻐하실 분이시지. 이울은 물론 김충선 까지도 홍의장군 곽재우의 가담을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것이 크나 큰 오산(誤算)이라는 것을 그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럼 다녀오겠네. 김충선은 마치 이웃집에 놀러가는 사람처럼 가볍게 거동을 하였다. 불쑥 이울이 물었
[그림경제=유광남 작가] 윤자신이 궁금하여 물었다. 이순신과 김충선이 여진을 입에 올렸단 말입니까? 그들이 어떤 말로 상감마마의 어심(御心)을 혼란스럽게 하였습니까? 근래의 여진에 대해서 아시오? 건주여진의 누루하치가 여진의 전 부락을 통일시켜 통치한 이후에는 별다른 조짐이 없는 줄 아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선조 이연은 이순신과 김충선이 땅바닥에 낙서했던 글귀에 대해서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여진과 왜적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분명히 뭔가 내막이 있었다. 하지만 선명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심 많은 조선의 왕 선조를 자꾸만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비변사를 통하여 북방의 행적을 탐문하시오. 선조 이연은 절대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반드시 그들이 휘갈긴 낙서의 진의(眞意)를 밝혀내고자 했다. 황공하옵니다. 신 윤자신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어디로 간다고? 이순신의 둘째 아들 울은 김충선의 소매를 잡았다. 이울. 김충선과 동갑의 나이이다. 그들은 조선에서 둘도 없는 지기가 되었다. 여진으로 가야한다. 김충선의 선언에 울은 별로 놀라운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너만 보낼 수 없다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김명원장군과도 아주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뿐이 아니오. 박진과 권율, 곽재우, 정기룡 등 김충선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지지 하는 세력들이 적지 않소. 이순신 역시 김충선을 매우 아낀다고 들었소. 윤자신이 왕의 눈치를 살폈다. 항왜 장수를 어찌 신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총에 대한 해박한 기술과 사격 솜씨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세자의 무군사(撫軍司) 시절 일지에 따르면 김충선은 화약과 총기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서 우리 군에게 막대한 이로움을 주고 있으며 실제 전투에 있어서도 매우 위력적인 실력을 발휘하여 일본군에게 불패의 신화를 성취하였다고 하오. 선조 이연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김충선에 관한 내용을 뱉어냈다. 이로 미루어 왕은 이미 김충선에 관한 내력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전하께옵서 일개 항왜 장수에 관해서 이토록 소상히 알고 계실 줄은 몰랐나이다. 그 자에 관해서 관심이 많소. 이순신의 곁에 있기 때문이옵니까? 일본을 배신했기 때문이요. 하오면? 선조의 입가에 야비한 미소가 감돌았다. 일본을 배신한 자가 조선을 또 배신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소. 윤자신은 흠칫 경직될 수밖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술을 마셨다. 이상하게 취하지 않았다. 다른 날이라면 당연 취기가 온 몸을 적셔 와야 했다. 그런데 마시면 마실수록 의식이 또렷해 졌다. 윤자신의 앞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김충선에게 모질게 대한 것이 마음 아파서도 아니었다. 이순신은 윤자신 앞에서 그런 연기를 해야 하는 자신이 서글퍼서 술이 취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이 반목(反目) 하였단 말이요? 선조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윤자신에게 물었다. 강두명의 미행과 유성룡의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제 3의 인물 윤자신을 직접 이순신에게 보내 의중을 살피게 했던 것이다. 용의주도(用意周到)한 선조다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런 윤자신에게서 나 온 보고는 의외였다. 김충선이란 자는 아직 혈기방자(血氣放恣) 하여 그리 근심이 될 것 같지 않사옵니다. 선조는 김충선과의 독대를 떠올렸다. 이순신을 구해내기 위한 사내의 의지가 굳었고 총기가 남달랐다. 배짱도 대단한 자라고 생각했었다. 선조의 용안에 주름이 잡혔다. 그대가 혹 잘 못 본 것은 아니겠고...... 과인이 그대를 보낸 것을 짐작하고 했던 위선의 행동은 아니었소? 놀랍게도 선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주상은 만백성의 어버이시오. 변함없는 우리의 임금이시오. 소신은 신뢰하지 못하옵니다. 젊은 혈기의 김충선은 거침이 없었다. 그를 제지하고 나선 것은 이순신이었다. 충선아! 네가 감히 임금을 평가하려 하는가? 그런 불충을 저지르고도 무사 하리라 생각하느냐? 이놈이 출신이 비루하여 안하무인(眼下無人)이로세. 당장 물러가거라. 이순신은 노성을 질렀다. 오히려 그를 만류하는 것은 윤자신이었다. 장군, 노여움을 걷으세요. 김장군은 성상의 깊으신 뜻을 곡해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김충선은 벌떡 술상 앞에서 일어났다. 장군께서는 정녕 억울하시지 않은 것입니까? 왜란이 일어난 후 조선을 누가 구원 했습니까? 그리고 이제 왜적은 강화를 포기하고 다시 남해바다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을 누가 방어할 수 있습니까? 원균 따위로는 어림없습니다. 그에게 삼도수군의 통제사 지위를 빼앗겼으니 조선의 함락도 멀지 않은 것입니다. 장군은 당연히 분기해야 합니다. 장군의 몸은 장군 개인의 육신이 아닌 것입니다. 장군은 조선 백성의 희망이며 남해를 사수하고 있는 이 만 수군의 주인이십니다. 이순신의 눈에서도 불꽃이 일렁거렸다. 닥쳐라! 어떤 경우라도 임금을 원망하는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조정의 소문은 반드시 믿을 것이 못됩니다. 김충선장군! 그 이름도 삼감께옵서 하사하신 이름 아니요? 지금도 조정에서는 당의 파벌로 인해서 김장군을 인정하지 못하는 무리들도 있소이다. 그렇지만 상감은 강행 하셨지 않습니까? 여기 이순신 장군만 하여도 조일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이미 삼사의 빗발치는 상소를 무시하고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셨으며, 이어서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도수군통제사란 고금에 없는 수군의 막중한 총 책임을 맡기셨소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선조는 그래도 일국의 왕이었다. 조석(朝夕)으로 강연(講筵)에 참여하여 제왕(帝王)의 학문을 연마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이 될 수 있는 자질과 자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성군 이연은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 비록 지금은 왕좌의 보전을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추악한 제왕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나 한때 그는 영민한 왕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현재도 비상한 지모(智謀)를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순신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수군의 장수, 그저 평범한 전쟁 영웅을 시기 질투하여 모함하고 제거하려는 것은 선조 이연의 예측이 얼마나 탁월한 가를 증명하는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이순신이 비록 백의종군의 신분이었으나 그를 만나고자 하는 관리들은 적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그는 모든 것을 마다하고 한산도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개벽을 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자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했다. 누구도 원한다면 만나야겠지. 이순신은 새벽에 유성룡을 만나고 온 후, 점심나절에 방문을 요청하고 찾아온 윤자신을 마주하였다. 윤자신은 호조참판을 지낸 경력이 있으며 명나라 사신으로도 다녀왔고, 조일전쟁이 발생한 임진년에는 승정원 우승지로 임금을 모시고 피난을 다녀왔던 선조의 측근이었다. 고생하시었소이다. 윤자신은 초췌한 몰골의 이순신을 위로하였다. 하인을 대동한 그는 술과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주상의 하해와 같은 은덕을 입었나이다. 이순신이 술잔을 받으며 감읍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정부사의 상소문에 성상의 마음이 움직였으니 이것은 하늘이 도운 것입니다. 앞으로 이수사의 앞날은 더 이상 나쁜 일이 없을 것이외다. 정탁의 신구차(伸救箚, 이순신을 변호하려고 선조에게 올렸다는 1298자의상소문-편집자주)를 말함이었다. 그렇습니까? 물론이지요. 처음에는 주상의 진노를 누구도 제지할 생각을 못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