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판소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이면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는데 부채를 든 1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창(소리)ㆍ아니리(사설)ㆍ발림(몸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 음악입니다. 본래 판소리는 춘향가ㆍ심청가ㆍ수궁가ㆍ흥보가ㆍ적벽가ㆍ변강쇠타령ㆍ배비장타령ㆍ옹고집타령ㆍ강릉매화타령ㆍ무숙이타령ㆍ왈자타령ㆍ장끼타령ㆍ가짜신선타령(또는 숙영낭자전) 등 12마당이었으나, 현재는 춘향가ㆍ심청가ㆍ수궁가ㆍ적벽가ㆍ흥보가 등 5마당만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적벽가’는 ‘화용도(華容道)’라고도 하는데 중국 구전 역사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빌려와 소리하고 있지요. ‘적벽가’는 원래 충의를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당성이 없는 권력에 의해 전쟁에 동원되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민중들의 한과 이에 대한 항의와 풍자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생이별 하직허고 전장에를 나왔으나 언제나 내가 다시 돌아가 그립든 자식을 품 안에 안고 아가 응아 어루어 볼거나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라는 사설이 바로 그런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 ‘적벽가’를 완창 소리로 들어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몇 해 동안이나 비바람 소리를 내었던가 여태껏 지녀온 작은 거문고 외로운 난새의 노랠랑 뜯지도 말자더니, 끝내 백두음 가락을 스스로 지어서 읊었거니 위 시는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3대 여류시인의 하나로 불리는 매창(李梅窓, 1573-1610)이 지은 시 <거문고를 타면서[彈琴]>입니다. 매창은 천민 출신으로 뛰어난 시인이었던 유희경과 가슴 시린 사랑을 나눈 걸로 유명하지요. 매창은 지녀오던 거문고로 <난새의 노래>와 <백두음> 사이 고민하다가 <백두음>을 지어서 노랠 부릅니다. 여기서 ‘난새의 노래’란 새장에 갇힌 새의 외로움을 노래하는 것이고, 백두음은 늙어가는 여인이 자신의 흰머리를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매창은 희경을 그리워하다가 그렇게 슬픔을 노래했습니다. 매창은 열 살 되던 해 부안의 내로라하는 시인 묵객이 모두 모인 백운사 시 짓기 대회에서 구경삼아 갔다가 실로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시를 지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뛰어난 여류시인입니다. 시와 가무에도 능했던 매창은 광해군 2년(1610) 세상을 떠나자 그녀가 끔찍이 사랑하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서서히 음의 기운이 커지는 24절기 열여섯째 추분(秋分)입니다. 《철종실록》 10년(1859) 9월 6일 기록에 보면 “추분 뒤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를 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여기서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 겨레는 추분에도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또 추분 무렵이 되면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입니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벼에서는 향[香]이 우러나고 사람에게서도 내공의 향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간에 들리누나 /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 백곡을 여물게 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정학유(丁學游)의 ‘농가월령가’ 8월령에 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전라북도 전주에서는 해마다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가 열립니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조선 후기에 시작하여 전주 지역에서 펼쳐지는 전통 예술 잔치를 말하는데 전주부성의 통인들이 예인들을 초청해서 판소리를 들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영정조 시대에 체계화되었으며, 전국의 명창과 소리꾼들이 모여 겨루었지요. 1975년에 재현되어 판소리명창부, 농악부, 기악부, 무용부, 민요부 등 10개 분야 예인들의 기량이 펼쳐지고 있는데 권위 있는 경연대회로 손꼽힙니다. 며칠 전엔 우연히 텔레비전을 돌려보다가 이 전주대사습놀이가 재방송되는 반가운 장면을 보았지요. 그런데 기악부에서 결선에 오른 경연자가 백인영류 아쟁산조를 연주할 때 결선에 오른 연주자의 다짐이 자막으로 떴는데 “소리의 잘생김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하여 젊은 연주자의 멋짐을 본 것 같아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쓸데없이 ‘파이팅!’이란 문구 하나가 덧붙여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파이팅(fighting)”이란 말은 본래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출처가 모호한 가짜 영어입니다. ‘파이팅’은 호전적인 뜻으로 ‘싸우자’, '맞장 뜨자’라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아래위를 눌러 납작해진 공 모양의 몸통에 좁은 목과 넓게 되바라진 아가리를 가진 ‘사슴장식 구멍단지’가 있습니다. 어깨 쪽에는 짧고 통통한 몸통에 짧은 다리 네 개와 작은 머리를 붙인 사슴 두 마리가 붙어 있지요. 머리에는 아주 큰 뿔을 달았는데 왼쪽 사슴의 뿔은 온전하나 오른쪽 사슴의 뿔은 하나가 떨어져 아쉬움을 줍니다. 그런데 왜 5세기 가야시대에 빚은 이 단지에는 사슴이 붙어 있을까요? 사슴은 북방 아시아 여러 민족이 신성시한 동물로서 신앙 대상이었습니다. 또 사슴은 인류의 중요한 식량 자원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충북 제천 점말동굴에서 사슴 머리뼈가 발굴되어 구석기시대부터 사슴 사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지요. 잘 알려진 국보 285호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들 가운데 사슴 그림은 36점으로 약 15%나 차지합니다. 인물이나 동물 그리고 특정한 물건을 본떠 만든 토기를 상형토기(象形土器)라고 하는데 사슴 역시 상형토기의 주제로 많이 등장합니다. 소가야에서 만든 이 사슴 장식 구멍단지도 가장 중요한 식량 자원이자 권위의 상징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誰斷崑山玉 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서 裁成織女梳 직녀의 얼레빗을 만들어주었던고 牽牛離別後 견우님 떠나신 뒤에 오지를 않아 愁擲壁空虛 수심이 깊어 푸른 하늘에 걸어 놓았네 황진이가 지은 영반월(詠半月, 반달을 노래함)이란 한시입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황진이는 하늘에 걸린 반달을 보고 직녀가 견우를 기다리다 지쳐 얼레빗을 하늘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다림이 사무치던지 얼레빗을 하늘에 걸어 견우에게 손짓합니다. 그런가 하면 황진이, 신사임당과 더불어 조선 3대 여류 시인으로 꼽히는 강정일당(姜靜一堂)도 가을을 노래합니다.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萬木迎秋氣) / 석양에 어지러운 매미 소리들(蟬聲亂夕陽) / 제철이 다 하는 게 슬퍼서인가(沈吟感物性) / 쓸쓸한 숲속을 혼자 헤맸네(林下獨彷徨)“ 이 한시는 강정일당의 <청추선(聽秋蟬, 가을매미 소리)>입니다. 황진이는 임을 기다리기나 하지만, 강정일당은 그저 쓸쓸한 숲속을 혼자 헤맵니다. 기다려야 할 임도 없는 처지인가 봅니다. 강정일당에 견주면 황진이는 기다릴 임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할까요? 귀뚜라미가 애간장을 끊으러 왔다는 가을! 차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발행인] ▲ 그림 오희선 작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고려말-조선초의 학자 목은 이색이 쓴 《목은고(牧隱藁)》에는 이웃 사람들의 윷놀이를 구경하면서 쓴 시가 나옵니다. 이 윷놀이를 할 때 던져서 나온 윷가락의 이름은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 부르는데, 이 도ㆍ개ㆍ걸ㆍ윷ㆍ모는 원래가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봅니다. 곧 도는 돼지[豚]를, 개는 개[犬]를, 걸은 양(羊)을, 윷은 소[牛]를, 모는 말[馬]을 가리킵니다. 먼저 도는 원말이 ‘돝’으로 어간(語幹) 일부의 탈락형인데 돝은 돼지의 옛말로 아직도 종돈(種豚)을 ‘씨돝’이라 부르고, 또 일부 노인들 사이에는 돼지고기를 ‘돝고기’라 부르지요. 개는 지금도 개[犬]이며, 걸은 지금 양(羊)이라 부르는 가축의 옛말입니다. 또 윷은 소[牛]로 소를 사투리로는 “슈ㆍ슛ㆍ슝·ㆍ중ㆍ쇼”라고도 하는데 여기의 “슛”이 윳으로 변하였다가 윷으로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는 말[馬]인데 사투리에 몰ㆍ모ㆍ메라는 말이 있음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이들 가축은 옛사람들에게는 큰 재산이었는데 그 가축의 이름과 함께 몸의 크기를 윷놀이에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곧 몸 크기의 차이를 보면 개보다는 양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엿새 뒤에는 우리 겨레의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로 추석, 가배절, 중추절, 가위, 가윗날 등으로 부릅니다.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지요.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라 유리왕 9년에 국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두 왕녀에게 그들을 이끌어 음력 열엿새 날인 7월 기망(旣望, 음력 16일)부터 길쌈을 해서 8월 보름까지 짜게 하였다. 그리고 짠 베의 품질과 양을 가늠하여 승부를 결정하고,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을 대접하게 하였다. 이날 달 밝은 밤에 임금과 백관 대신을 비롯해 수십만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녀와 부녀자들이 밤새도록 ‘강강술래’와 ‘회소곡(會蘇曲)’을 부르고, 춤을 추며 질탕하고 흥겹게 놀았다.“ 이 길쌈짜기를 그때 말로 ”가배“라 했는데 가배가 변해서 ”가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이 쓰는 ‘추석’이라는 말은 ‘예기’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8월 18일 문화재청은 경남 김해시에 있는 김해 구산동 고인돌(경상남도기념물) 상석의 주변부에서 문화층 일부(20cm 가량)가 떨어져 나간 것이 확인되었으며, 정비사업터 내 저수조ㆍ관로시설ㆍ경계벽 설치 터는 해당 시설 조성 과정에서의 굴착으로 인해 문화층의 대부분이 파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인돌 군락지로 유명합니다. 그 가운데서 2006년 김해 구산동 택지지구 개발사업을 하다가 발굴된 경상남도기념물 제820호 김해 구산동 고인돌은 상석(받침돌 위에 올려진 돌) 무게만 350톤에 이르며, 고인돌을 중심으로 한 묘역 시설이 1,615m나 되어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로 알려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고인돌은 김수로왕의 가락국 탄생 비밀이 담긴 유물이어서 더욱 종요로운 문화재였습니다. 그런 종요로운 유적은 2022년 7월 김해시가 토목업체를 동원해 구산동 고인돌 묘역의 정비ㆍ복원 작업을 벌이다 무덤의 대형 덮개돌인 상석(上石) 아랫부분의 박석을 비롯한 묘역 대부분을 갈아엎은 것으로 확인됐지요. 특히 이 정비ㆍ복원을 하면서 문화재청과의 협의도 없었고, 고고학자 등 전문가의 입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