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어머니께서는 젊어서부터 한 번 보거나 들으신 것은 종신토록 잊지 않으셨으니, 궁중의 옛일부터 국가 제도, 다른 집 족보에 이르기까지 기억하지 못한 바가 없으셨다. 내가 혹시 의심스러운 바가 있어서 질문하면 하나하나 지적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으셨으니, 그 총명과 박식은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다. 「혜경궁지문」, 《순조실록》, 1816년 1월 21일 / 20쪽 혜경궁 홍씨. 정조의 어머니이자 순조의 할머니인 그녀는 죽은 다음 ‘헌경(獻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총명하다고 해서 ‘헌’, 늘 조심스러웠다고 해서 ‘경’이라는 글자를 썼다. 칠십 년 가까이 계속된 그녀의 궁중생활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이런 살얼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지고, 조심스러워지는 수밖에 없었다. 열 살에 입궁한 혜경궁은 빨리 어른이 되었다. 1744년 가례를 올리고 1762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기까지 약 18년 동안 이어진 불안한 혼인 생활, 아들 정조가 즉위한 뒤 외척 척결에 따른 친정의 몰락, 그리고 마침내 손자 순조가 즉위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칠십 년 궁중생활이었다. 정병설 작가가 쓴 이 책 《혜경궁 홍씨, 회한의 궁중생활 칠십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새벽 장거리 산행을 하기 위하여 세 시쯤 집을 나섭니다. 아무리 빨리 새벽을 맞아도 길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은 아직 꿈속에 헤맬 거로 생각하겠지만 언제나 세상은 나보다 빠릅니다. 도시에서는 새벽이슬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밤새 맺힌 이슬이 이른 아침의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새벽이 살아있음을 이슬을 통하여 느낄 수 있습니다. 이슬은 밤새 뿌리가 흡수한 물이 밖으로 빠져나온 것입니다. 넘치기 전에 비우는 것이 좋습니다. 비움을 실천하지 못하면 욕심을 부리게 되고 결국 욕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이 들면서 기상 시간이 조금씩 앞당겨짐을 느낍니다. 새벽 시간이 좀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안온한 이불 속에서 실컷 게으름을 구가하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은 행복입니다. 새벽의 어둠은 한밤중의 어둠과 그 깊이가 다릅니다. 새벽은 밝음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슴푸레한 사물이 점점 뚜렷하게 다가올 때의 환희를 생각합니다. 중국 송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도연명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일일난재신(一日難再晨)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인생은 단품입니다. 영산홍 꽃떨기도 봄 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효백 교수가 《한국 진달래 오라》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표지에는 제목 옆에 작은 글씨로 ‘일본 무궁화 가라’가 적혀있고, 또 표지 윗부분에 ‘어느 경솔한 자가 진달래를 놔두고 궁벽한 무궁화를 조선의 꽃이라고 불렀는가’라고 적혀있습니다. 표지에 적혀있는 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강 교수는 ‘일본 무궁화를 왜 우리나라 국화로 하느냐? 그보다는 한국 진달래를 국화로 해야 한다’라고 목청껏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궁화는 일본 열도 전체에 자생함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금북정맥 이남에서만 자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문화적으로 일본에는 무궁화에 대해 많은 자료가 있음에 반하여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강 교수는 이런 무궁화에 대해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는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로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전에 펴낸 책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자세히 얘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책의 끝에 그럼 무궁화 대신 어느 꽃을 국화로 봐야 할지에 대해 여러 후보 꽃을 들면서 그 가운데 진달래를 유력한 후보로 거론했습니다. 그렇게 강 교수는 그 책에서는 진달래를 유력한 후보로 거론하고 책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UFO는 우리말로는 ‘비행접시’ 또는 ‘미확인 비행물체’ (Unidentified Flying Object)라고 말한다. UFO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상한 모양의 비행체 사진을 증거로 제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에 경기도 가평군에서 문화일보 사진기자가 찍은 UFO의 생생한 사진이 공개됐다. 그러나 UFO라고 주장하는 사진은 많지만, 사진에 찍힌 물체가 실제로 지구에 착륙했거나 파편이라도 남은 흔적은 아직 발견된 적은 없다. 1952년 7월 미국의 워싱턴 D.C. 공항 근처에서 목격자의 진술과 일련의 레이더 탐지 결과가 일치하였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공학자, 기상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UFO의 존재 여부를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는 극비로 분류되어 한동안 공개되지 않아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나중에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목격한 것의 90%는 미지의 물체와 빛의 반사가 작용한 현상이라고 밝혀졌다. 곧 인공위성, 유성, 오로라, 기상관측기구, 비행기, 새떼, 풍선, 탐조등, 구름의 사진을 UFO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기상학적 조건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공자는 논어에서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오도(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니라 곧 "나의 도(道)는 한 가지로 일관된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필요에 따라 붙여 놓은 사회적 약속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사물의 이름은 숱한 세월을 거친 지혜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그 일관성이 이름을 낳은 것이지요. 우린 일관성 하면 늘푸른나무 곧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낙락장송의 멋스러움을 떠올리지요.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고독한 귀양살이를 할 때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제자 이상적이 고마워서 그려준 그림입니다. 그리고 《논어》의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를 그림 귀퉁이에 적어 두었지요. "세월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사람도 어려움을 당했을 때 진정한 친구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하지요. 세상인심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사람이 성공하고 부유하게 살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실패하고 가난해지고, 귀양을 떠나게 되면 외면하게 마련입니다. 세한도를 그린 추사 김정희는 물론 대단한 사람이지만 어쩌면 스승에 대해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인 제자 이상적이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릅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학교 2학년이던 1967년 내가 살던 충주의 거리에는 위의 사진과 같은 <가쓰므>라는 영화 광고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뭔가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 같은 배경이고 70밀리 대형 스크린이라 하니 궁금하기는 했지만, 당시 영화를 마음 놓고 볼 형편이 안 돼 아쉬운 영화로만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직장인 KBS에서 런던주재특파원을 하면서 영국인들의 세계진출 과정을 들여다보다가 찰스 조지 고든(1833~1885)이란 장군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은 곳이 수단의 하르툼(Khartoum)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보니 이게 그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가쓰므>가 아닌가? 어떻게 하르툼을 이렇게 일본식으로 표기하였는지 씁쓸한 적이 있었다. (더욱 우스운 것은 3년 뒤 비디오테이프로 다시 나왔을 때는 제목이 '카슘공방전'이었음을 언론인 임철순 씨의 글을 통해 알게 됐다. 엉뚱하기는 이 제목도 마찬가지이다. 영어의 T가 SH로 표기된 것을 처음 본다) 1967년 국내 개봉된 이 작품은 이집트(배후에 영국이 있지만)의 지배를 받는 아프리카 수단 사람들의 독립투쟁을 다룬 70mm 대작 전쟁영화다. "총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꽃은 무궁화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을 불렀고, 무엇보다도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가 나오니까요. 그런데 왜 무궁화가 나라꽃(國花)인지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사실 무궁화는 공식적으로 나라꽃으로 지정된 것도 아닙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무궁화가 왜 나라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파고들어 《두 얼굴의 무궁화》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강 교수는 전 세계의 나라꽃을 조사해보니, 세계 각국은 나라꽃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5가지 특성을 보유했거나, 보유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⓵ 지리성 : 원산종 또는 자생지가 분포하고 있거나 국토 대부분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한 꽃 ⓶ 민주성 :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 지정이 아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선정한 꽃 ⓷ 역사성 : 예로부터 그 나라의 신화, 역사, 문학과 예술에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한 꽃 ⓸ 접근성 :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고 국민 일상생활에 쉽게 접할 수 있는 꽃 ⓹ 상징성 : 나라와 겨레의 특징과 전통을 대표할 수 있는 꽃이거나 세계적으로 희귀한 특산종 그런데 강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 왕실은 아이를 어떻게 길렀을까? 조선 왕실에 태어난 아이는 특별했다. 왕조시대에 임금의 핏줄로 태어난 것부터가 특별한 일이거니와, 특히 왕위를 이어갈 ‘원자’로 태어난 아이는 그 출생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 나라의 존망이 그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기에, 왕실에서는 자녀교육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그 정성이 반드시 아이의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세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조기교육’은 그저 뛰어놀고 싶을 나이의 아이들에겐 상당히 가혹한 것이었다. 물론 특별한 자질이 있는 경우에는 공부로 가득 찬 일과를 즐기기도 했지만, 대체로 버거운 일상이었다. 신명호가 쓴 책, 《조선 왕실의 자녀교육법》은 조선 왕실의 태교부터 육아, 청소년 시기의 갈등 해결 방법까지 자녀교육의 모든 면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사람을 낳고 기르는 일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았나 싶어질 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던 조선 왕실을 보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집안에 면면히 흐르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p.243)좌의정 채제공: 회의를 시작한 지 이미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원자는 마치 심어 놓은 나무처럼 단정하게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순천 선암사를 가보자. 그곳에 가면 옛 정취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선인들의 숨결이 가슴에 파고든다. 우리나라 곳곳에 많은 고적지가 있지만, 옛 모습 그대로 선인들의 채취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선암사만 한 데가 없다. 선암사는 옛 모습 그대로 조계산 자락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유적이란 옛사람들이 남기고 간 자취나 건축물, 생활했던 터, 싸움터,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나 패총, 고분 따위를 이른다. 그리고 유물이란 선인들이 생전에 사용하다 남긴 물건을 말하는데, 넓은 의미로는 옛 선인들이 생활했던 자취나 사용했던 유물들을 총괄해서 말한다. 이처럼 유적과 유물 그리고 옛 선인들이 생활했던 생활방식을 통틀어 고전문화라고 한다면, 현시대에 행해지는 모든 것들을 근대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화를 두 가지 시대적 분류로 말할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근대문화가 아무리 월등하다고 해도 고전문화의 뒷받침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고, 고전문화 없이는 그 나라 민족 가치성을 주장하기 또한 궁색할 것이다. 하여 현대 문물이 눈부시게 발달했는데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옛 문화와 문물을 소중히 다루고 있는 까닭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퇴계 친필로 된 묘갈문 비석이 있어요” 파주 쪽 아는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퇴계는 경북 안동 사람이어서 고향 쪽에는 많은 글씨를 남기셨지만, 퇴계의 친필 묘갈문이 파주땅에 비석으로 있다니. 부쩍 궁금증이 일어나서 어디에 있냐고 하니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에 있단다. “거기에 왜 있지요?” 하고 다시 물으니, “아 묘갈이 있는 곳은 성수침이란 분의 묘소이고, 그분은 성혼의 아버지인데 그 옆에 나란히 묘소가 있어요”라고 한다. 성혼(成渾)이라면 호를 우계(牛溪)라고 하는 유명한 성리학자이신데 그 아버지가 성수침(成守琛)이구나. 그런데 거기에 퇴계가 쓴 친필 묘갈이 비석으로 있단 말인가? 곧 가서 보자고 하니 저녁 무렵에 안내를 해준다. 과연, 향양리라는 곳, 약간의 야산을 끼고 언덕을 따라서 조성된 꽤 넓은 묘역에 들어가니 비각이 눈에 들어온다. 비각 안에는 사람 키보다 큰 두 개의 비석이 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성혼의 신도비(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무덤이 있는 근처의 길가에 세우던 비석)고, 왼쪽의 것이 성수침 선생의 묘갈비이다. 팔작지붕형의 가첨석(加檐石, 빗돌 위에 덮어 얹는 지붕 모양으로 된 돌), 비신(碑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