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프리카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백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농장을 떠나던 날 일하던 흑인 하녀의 딸이 이별 선물을 주었습니다. 벌판에서 주운 광채 나는 큰 돌이었지요. 고향으로 돌아간 여자는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임을 알았고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여인은 흑인 소녀를 기억하고 싸구려 인형을 사서 보냅니다. 흑인 소녀는 그 인형과 더불어 행복했습니다. 매일 인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나이 들어 그 인형을 딸에게 주었습니다. 그 딸도 인형과 더불어 행복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인생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자가 된 백인 여자는 돈 때문에 자식들과 불화를 겪게 되었고 돈을 노리는 온갖 사람들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자식들도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돈으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꺾으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답지요. 그건 소유하지 않은 풍경이 아름다운 것과도 같습니다. 우린 평생 무언가 소유를 염원하며 살아갑니다. 늘어가는 것에 안온하고 줄어드는 것에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할 수 있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6)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던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조각가 김종영의 생가는 <고향의 봄> 동요의 노랫말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대궐’ 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 지금도 ‘새터마을 소답꽃집’으로 불리는 그 집이다. 한국 조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 조각가, 김종영은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태어났다. 조은정 작가가 쓴 이 책, 《생각을 새긴 조각가, 김종영》은 한국 조각계의 거목인 김종영의 삶을 보여주는 ‘어린이미술관’ 시리즈 가운데 한 편이다. 이 ‘어린이미술관’ 시리즈는 ‘온 가족이 보는 예술책’답게,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볼 수 있을 정도로 쉽고도 알차게 내용을 담아냈다. 김종영의 증조부 김영규는 조선이 강제로 합방되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은거했다. 그리고 1915년, 증손자 김종영이 아버지 김기호와 어머니 이정실의 5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종영은 집안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사랑방에서 글씨를 쓰고 난초와 대나무를 그리며 자랐다. 열여섯 살이 되던 1930년, 일본인이 세운 학교가 아닌 민족재단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고교동기 채백 교수가 쓴 책 《민족지의 신화》를 보았습니다. 채 교수는 오랫동안 부산대 교수로 근무하다 2022년 8월 정년퇴임 하였습니다. 내가 부산에 근무할 때 동기들 모임으로 가끔 만났던 채 교수가 책을 냈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에 책을 사두었었지요. 하지만 그동안 앞선 자기 차례를 주장하는 책들을 먼저 보다가 얼마 전에야 이 책을 보았네요. 아참! 책이 세상에 나올 무렵에는 채 교수는 명예교수로 물러나 있었네요. 그동안 교수 정년퇴임은 선배들 이야기이지 우리에게는 아직 미래의 일인 걸로 치부했는데, 어느새 지난해, 올해에 걸쳐 동기들이 다 강단을 떠납니다. 한 친구는 늘 학교 연구실로 향하던 발길이 어느 순간 멈추니, 우울증이 왔었다고도 하더군요. 저도 정년으로 작년에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 업무에서는 은퇴하였지만, 그래도 변호사로서의 업무는 계속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근하면 기록 보고, 소속 변호사가 써온 서면도 검토해야 하며 재판에도 나가야 하니, 아직은 뒷방 신세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거~ <《민족지의 신화》 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얘기가 엉뚱한 길로 빠져들었네요. 채 교수는 머리말을 이렇게 시작합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작은 구멍을 통해 원근법에 따라 채색 또는 제작된 축소된 경치를 볼 수 있는 기계장치를 ‘요지경’이라고 부릅니다. 알쏭달쏭하고 묘한 세상을 비유적으로 요지경이라고 하기도 하지요. 요지경인 세상입니다. 요즘은 꽃들이 아무 순서 없이 마구 피어납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순서의 계열성이 깨진 까닭이지요. 어쩌면 요즘은 우리가 기대어 살아왔던 많은 것들이 위협을 받고 질서가 흔들린 재난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데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연의 질서에 따라 흘러가는 것뿐이지요. 그 위대한 자연의 질서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자연의 희생이 따릅니다. 하지만, 개발과 보전이라는 명제 앞에 중용이 종요롭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춘추시대를 살았던 공자는 "낚시질은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았으며 주살질은 하되 잠자는 새는 쏘지 않았다고 합니다.“ ※ 주살질 : 화살로 짐승을 쏘아 잡는 일 우린 경제를 앞세워 많은 것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비좁은 축사에서 사육되는 가축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으며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잡고자 하는 욕망을 감추지 않고 있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을지로 4, 5가와 청계천 사이에 ‘방산시장’이라고 있지요? 서울시민이라면 한 번쯤이라도 방산시장을 가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방산시장’의 ‘방산’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芳山’ - 한자로는 향기로운 꽃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왜 재래시장에 이런 이름이? 이런 의문을 가지시는 분도 있겠네요. 지금부터 그 유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산시장 앞의 청계천은 북악산에서 발원하여 살곶이다리 근처에서 중랑천에 합류하는 하천입니다. 그런데 하천에는 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이 물을 따라 모래와 흙도 흐르다가 멈추다가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멈춘 모래와 흙이 자꾸 쌓이다 보면 하천의 바닥 면이 자꾸 높아집니다. 바닥 면이 높아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홍수가 아니더라도 불어난 물이 하천을 넘어가 주변 지역은 물난리를 겪겠지요. 그래서 조선시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청계천 준설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준설공사 가운데 제일 규모가 컸던 것은 영조 때 준설공사입니다. 이 무렵 청계천 바닥 면 높이가 옆의 대지 높이와 별반 차이가 없어,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특히 이 무렵에는 농촌에서 살기 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무엇이든 제철에 많이 나는 것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요즘 화단이나 밭두렁에 흔하게 자라는 키다리 꽃나무가 있습니다. 가을이면 멀대같이 큰 키에 노란 꽃을 이고 있는 청초한 꽃이지요. 이 키다리 꽃의 어린싹은 나물로 먹을 수 있습니다. 키다리는 원래 이름이 ‘키다리노랑꽃’이며, ‘겹삼잎국화’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잎의 모양이 대마(삼)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끓는 물에 데쳐서 무쳐 놓으면 두릅이나 취나물 비슷하면서도 국화 향이 온 입안에 가득 퍼지는 나물이지요. 두어 번 잘라 먹어도 가을에 꽃이 피는 것에는 크게 영향이 없으니 봄철에 맛볼 수 있는 나물을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키다리 나물은 칼슘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되고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하여 면역력을 높여 주는 좋은 식품이지요. 키다리의 꽃말은 충실한 기다림, 영원한 행복, 평화로운 공존입니다. 한 낱말이 아닌 임자말(주어)와 풀이말(서술어)로 뜻이 되어있는 것이 독특하고요. 꽃이 피기까지 천둥과 먹구름 속에서 진정으로 기다린다는 아름다운 마음이 함께하는 꽃이라서 참 좋습니다. 꽃이 비슷한 것으로는 돼지감자가 있기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기억되는 영문학자 이양하(1904~1963) 선생의 대표적인 수필 「신록예찬」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록을 만끽할 때로 5월을 거론하신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져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님의 수필을 다시 펴지 않아도 대체로 사람들은 5월을 신록의 계절로 보는 데에 이견은 없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1월 17일. 대련 수상경찰서.’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는 짧았다. 그가 살다 간 태산 같은 인생에 견주면 허무한 결말이었다.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은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살아간다지만, 30년이 넘는 숱한 시련에도 건재했던 아버지였기에 아들 이규창의 충격은 그만큼 컸다. 그는 곧 동지들을 불러 모았다. 아버지가 대련으로 간다는 정보가 어떻게 일본 경찰에게 들어갔는지 모든 연결망을 동원해 샅샅이 알아보았다. 아버지를 죽게 한 밀정이 누구인지 찾게 될 때는, 그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김은식이 쓴 이 책, 《이회영-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는 1910년, 망국의 파도가 대한제국을 집어삼킨 그해, 일제의 치하에서 단 한 해도 살 수 없다며 1910년 12월 30일 재산을 처분해 전 가족이 만주로 망명한 이회영 일가의 이야기다. 나라가 망했을 때 조상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으며 조선을 좌지우지하던 권문세족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책에 소개된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처럼 자결, 사설 게재, 무장투쟁을 하는 저항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대다수 양반은 일제가 던져주는 달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田間拾穗村童語(전간습수촌동어)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들이 말하기를 盡日東西不滿筐(진일동서불만광) 온종일 왔다 갔다 하여도 광주리가 안 찬다네. 今歲刈禾人亦巧(금세예화인역교)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의 솜씨도 교묘해져 盡收遺穗上官倉(진수유수상관창) 남은 이삭까지 모두 거두어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 손곡 이달의 시 <이삭을 줍는 노래(습수요, 拾穗謠)>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밭고랑에는 여기저기 이삭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입에 풀칠하기 위해 밭고랑에서 이삭을 줍습니다. 성경에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이삭을 줍지 말라고 하였으니(레위기 19: 9, 신명기 24:19),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이삭줍기 배려는 동서양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아이들이 광주리를 들고 종일토록 밭고랑 사이를 다녀도 광주리가 차지 않습니다. 왜 그렇지? 올해는 흉작인가? 시에서는 올해엔 벼 베는 사람들의 솜씨가 교묘해져 예년보다 떨어뜨리는 이삭이 적다고 합니다. 아니 동네 인심이 야박해졌나? 전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부러라도 이삭을 떨어뜨렸을 텐데... 그러나 민심이 야박해진 것은 아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아래 줄임)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의 선시다. 선시에서 나옹선사는 "산이 말을 한다."라고 했다. 나옹선사가 산과 소통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옹선사뿐만 아니라 자연과 소통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산을 향하여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되고, 누구나 가슴을 열고 산을 바라보면 산과 대화가 어느 때고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내가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문을 열고 나오면 눈앞에 산이 우뚝 서 있다. 비록 낮은 산이긴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산은 뽀얀 안갯속에서 서서히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낼 때쯤, 나는 두 손 모으고 앞산을 바라보는 것이 그날 일과의 시작이다. 며칠 전 단비가 내린 뒤 산은 생기를 되찾았다. 온갖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고 지고, 온 산은 연한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색깔로 모습을 변화시켜가고 계절의 아름다움을 부지런히 연출해 내고 있다. 그 가운데 봄 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