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23년 7월 4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서 “삼중수소를 제외하고는 기준치를 넘는 핵종이 검출되지 않았다”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러한 발표 이후 정치인들은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과학자들의 주장도 엇갈리고 있다. 일반 국민은 누구 말이 맞는지,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쿠시마 오염수, 과학적 기반 없다면 선동이다.” 김기현 여당 대표: “IAEA의 과학적 조사 결과를 괴담으로 부정하겠다는 것은 천동설이라는 괴담을 근거로 종교 재판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재명 야당 대표: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하면 괴담 유포한다며 국민 협박” 과학은 자연물과 자연현상을 다루는 학문으로써 물리학이나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이 과학이라고 인정된다. 그러나 자연물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만이 과학은 아니다.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도 과학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엄연히 과학의 한 분야다. 그러므로 연구의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과학적 방법’을 따르면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적 방법의 특징은 논리성, 객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대문 밖 주택가에 작은 갤러리가 있는데 가보실래요?" 회사 후배의 권유에 조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더니 이번에는 거기는 서양화가가 살던 집인데 가보시면 아는 분이 있을 것이란다. 그래, 그렇다면 한 번 가보지. 이렇게 해서 발길을 들여놓게 된 것이 숭인동 골목이다. 숭인동 주민센터가 있는 골목길을 들어서니 좁은 골목을 낀 집 벽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과 토끼, 거북 등이 함께 노는 그림이다. "이거 생전에 그 미술가가 재능기부로 그려주신 것입니다" 그러고는 비탈에 있는 3층 건물의 입구로 끌고 간다. 거기에 작은 간판이 있다. "욘보 스페이스" 욘보? 못 듣던 말인데 뭐지? 그랬더니 이 집이 김용기라는 화가가 사시던 곳이고, 그 화가가 어릴 때 일본에서 자라면서 일본 사람들이 용을 발음을 잘 못해 '욘기'라고 하니까 그 모친께서 욘보라고 아들에게 붙여준 애칭이란다. 말하자면 어머니한테는 영원한 아기인 그 아들의 뿌리가 살아있는 이름인데, 욘보 스페이스, 곧 욘보가 있던 공간이란 뜻이고, 그것이 이 골목에 있는 갤러리 겸 카페의 이름이 된 것이다. 정문을 들어서니 집안 곳곳이 온통 그림 천지다. 파란 바닷물의 항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이태영 변호사.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그녀는, 한국 여성 인권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여성 법조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등 고시에 합격한 여성, 이태영! 그녀는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마침내 한국 첫 여성 변호사가 되기까지 절대로, 절대로 꿈을 놓지 않았던 멋진 여성이었다. 강효미가 쓴 책, 《이태영 변호사의 낡은 가위》는 우리나라 첫 여성 변호사로 오랜 세월 차별받아 온 수많은 여성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 준 이태영의 일생을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된 부속물처럼 여겨지고 ‘여성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절, 그녀는 시대를 앞서간 감성으로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이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은 불과 백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914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2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이태영은 한 살 무렵 광산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이태영의 어머니는 아들딸 차별 안 하고 공부시켜주기로 약속했다. 그 누구보다 총명하고 웅변도 잘했던 그녀는 평양 정의여자고등보통학교를 1등으로 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인천만》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무슨 책일까요?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책? 하하! 아닙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천만 새로운 일자리 만들기’에서 첫 글자만 따와 책 제목을 만든 것입니다. 제 고교동기 장준호가 아들 장기석과 함께 쓴 책입니다. 준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삼성에서 근무하다가, 같은 고교 친구 박태형과 함께 1995년 ‘인포뱅크’라는 회사를 창업하였지요. 근래에는 40여 개의 인공지능 새싹기업 회사에 투자도 합니다. 요즘 전 국민이 잠시라도 없으면 살아가지 못할 카카오톡이 있지 않습니까? 준호와 태형은 카카오톡보다 앞서서 이와 비슷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사업을 시작하였었지요. 그러나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바람에 사업을 지속할 자금력 등에서 딸려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그때 인포뱅크의 새로운 서비스를 신기해하면서 이용하였는데, ‘그때 그 고비만 잘 넘겼으면...’ 하면 하는 아쉬움이 크지요. 요즘 인공지능이 무섭게 발달합니다. 전에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와 바둑을 두어 일방적으로 이기는 것을 보고 ‘세상에나!’ 하며 놀라워했는데, 요즘 챗지피티(ChatGPT), 구글바드 같은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21세기를 맞은 전 세계는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2019년 12월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로 확산하면서 지역봉쇄, 이동 통제 등 나라별 방역지침이 강화되었다. 대면을 통한 소통과 교류가 불가능해지면서 그 대안으로 미디어 매체들을 활용하였다. 특히, 공연예술계는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며 공연예술을 완성하는 ‘현장성’을 대신하기 위하여 미디어 매체를 단순히 영상을 통해 공연의 작품을 전달하는 용도가 아닌 소통하며 교류할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2022년 위드 코로나 시기를 지나 2023년 대부분의 나라들은 코로나 종식을 발표하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인들은 미디어 매체를 활용하면서 좀 더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였으며, 독특한 미디어 매체만의 문화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연예술계는 다양한 기술을 융합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코로나 팬더믹 시대 속에서 예술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론들이 제시되었다. 영상콘텐츠, VR, AR,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기존의 표현과 다른 방법들로 새로운 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해마다 7월이면 나는 백남준 씨를 생각한다. 그분의 생신이 7월 20일이기에 해마다 탄생 몇 주년 등등의 수식어가 붙으면서 필자에게 그분은 늘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백남준 씨는 2006년 1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서거는 우리 문화예술계에 큰 충격이었다.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그의 유해가 우리나라에도 일부 왔다. 국내에서도 추모의 열기가 잠시 일었다. 그러다가 곧 관심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부설 어메리칸 아트 뮤지엄이 백남준의 아카이브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2012년 12월에 그 아카이브를 정리해서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제목은 '백남준:글로벌 비저너리(Global Visionary)', 곧 '백남준, 지구의 예언자'였고 전시회는 그다음 해 8월까지 8개월 이상 열고 있었다. 마침 2013년 5월 7일에 워싱턴에서 우리 대통령의 미국방문으로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서 우리 외교통상부와 문화부는 이 전시회를 한미 두 나라가 문화적으로 협업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이 전시장을 찾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집 대부분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담은 밖으로부터 안을 보호하고 침입을 막으며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고 공간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담을 언제부터 쌓았는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 간에 주거의 차이가 생기면서, 신분에 따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담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담 높이가 6두품은 8척을, 5두품은 7척을, 4두품 이하는 6척을 넘지 못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담의 높이가 권력의 높이와 비례한다는 것이지요.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울타리에 싹이 돋아 나무로 성장하기도 했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담은 건축주의 신분에 따라 재료와 축조 방법이 다릅니다. 서민층에서는 울타리, 돌담과 같은 자연적인 모습의 담을 중상류나 궁궐은 벽돌담, 화초담과 같은 인공이 많이 드는 담을 쌓았지요. 서민의 담은 집의 경계로서의 성격이 강하지만 상류층이나 궁궐의 담은 외부에 대한 방어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 남부에 금융가인 월가가 있습니다. 미국식으로 월 스트리트라고 부르지요. 오늘날 전 세계를 좌우하는 금융의 중심지입니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역사 앞에서’ 하니까, 제가 꼭 역사에 대한 거대담론을 말하려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네요. 《역사 앞에서》는 제 서울법대 대선배(1937년 서울법대 전신인 경성법학전문학교 졸업)인 김성칠 서울대 사학과 교수님이 쓰신 책입니다. 지금 제 앞에는 예쁘게 제본된 책이 놓여 있지만, 사실 《역사 앞에서》는 김 선배가 1945. 12. 1.부터 1951. 4. 8.까지 쓴 일기입니다. 다만 1946. 12. 23.부터 1949. 12. 31.까지의 일기는 빠져 있습니다. 아마 그 부분 일기장은 유족들이 찾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일기를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니까, 책의 부제는 <한 사학자의 6.25 일기>입니다. 김 선배는 6·25 때 미처 피난 가지 못하고 인공치하를 서울에서 고스란히 보냈습니다. 일기에는 한 개인이 겪은 6.25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그것도 사학자의 눈을 통해 보는 것이기에, 좌나 우로 편협된 시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눈으로 6.25의 참상이 그려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전쟁은 어떠한 명분으로든지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창백한 낯빛, 수염 없는 매끈한 턱, 가느다란 목소리... 흔히 내시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모습들이다. 내시는 그림자처럼 임금을 수행하면서 궁 안팎의 일을 두루 살피는 벼슬이었다. 비록 거세됐다는 까닭으로 세간의 인식이 좋지 않기도 했지만, 높은 영화와 권력을 누릴 수도 있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내시는 거세된 만큼 자손을 볼 수 없었지만 대체로 양자를 들여 가문을 유지했다. 윤영수가 쓴 책, 《그림자처럼 왕을 섬긴 왕의 남자 내시》에서는 내시 박계운의 양자로 들어간 서개동이라는 소년이 내시가 되기 싫어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양부의 대를 이어 훌륭한 내시가 되는 과정을 담았다. 내시가 되는 과정은 아주 고된 일이었다. 우선 어릴 때 불의의 사고로 성기를 다친 소년들이 내시의 양자로 입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시대 내시들의 계보를 적은 족보 《양세계보(養世系譜)》를 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의 성이 모두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비록 양자를 들였더라도 원래 집안의 핏줄을 존중해 주는 내시 가문의 가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시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면 원래 식구들은 집과 논밭을 받아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승자의 저주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려 결과적으로 큰 손해가 난 것을 뜻합니다. 고대 로마 시대 에피루수 왕국의 피로스 왕은 로마를 침공하여 대승을 거두지만 군사의 70%를 잃고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돌아옵니다. 싸움엔 이겼지만 지나친 출혈로 인해 왕국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초한지에 보면 항우가 유방과 싸워 연전연승을 거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가 기울어져 해하의 전투에서 사면초가와 패왕별희라는 유명한 고사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승자의 저주는 지도자가 성공을 거둔 뒤, 그 성공에 취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승자의 저주에 빠지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게 됩니다. 승리에 도취하여 자만심이 생기고 자기 능력을 과신합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집이 세집니다. 주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립니다. 승자의 저주는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승자의 저주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