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이순신의 눈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아니오! 죽은 것도 억울하기 그지없거늘! 그 장병들의 살붙이 한 점이라도 그리 참혹하게 보낼 수는 없소. 당장 출동 시킵시다. 목숨을 걸어야 할 일입니다. 적진 깊숙이 진입해야 합니다. 홀로 그 망망대해를 누벼야 하는 일입니다. 생사를 담보할 수 없는, 사실 무모한 명령입니다. 일본 놈들이 수 천 명의 원귀를 끌고 가는 일을 어떻게 그대로 묵과한단 말이요? 당장 장수들을 집결 시키시오. 이순신의 명령에 의해서 각 판옥선의 장수들이 졸지에 불려 나왔다. 피곤한 기색들이 역력 하였으나 누구 하나 불평은 없었다. 그들은 거기서 잠이 확 깨어버리는 정도령의 설명을 들었다. 저마다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눈가에 핏발이 차올랐다. 생사는 절대 보장할 수 없습니다. 누가 지원 하시렵니까? ▲ 임진왜란 당시 실제 왜군은 조선인의 코를 베어 교토로 보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장수는 고경명 의병장, 고진후였다. 하지만 그 뒤로도 다른 장수들 모두가 손을 하늘로 쳐들었다.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장수는 없었다.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곽재우가 감탄해마지 않으면서 슬며시 말했다. 사실 나도 정도령에게 은밀히 부탁 받은 임무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원균장군에게 개벽에 대한 의중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 받았습니다. 이순신의 표정은 그냥 담담하였다. 억지로 성사되는 일은 없지요.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원장군은 마음의 준비를 이 사람 보다도 빠르게 내린 듯이 보였습니다. 곽재우는 자신이 받았던 느낌 그대로 설명했다. 이순신은 호흡을 길게 내뿜었다. 이 사람으로 인한 고심을 여러 분들에게 안겨 드리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곽재우가 눈을 부라리며 이순신을 책망했다. 행여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장군을 위한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홀로 하는 승부는 더욱 더 아닙니다. 장부의 대업(大業)을 어찌 송구하다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백성들을 위한 의협지사(義俠志士)들의 한 마음입니다. 장군의 말씀이 지당하오. 장군의 뜻을 따르는 장수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외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쯤 물러나야 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기습을 받을 수도 있고. 적의 탐망선들이 돌아가서 우리 판옥선의 현실을 보고하게 된다면 필시 왜적은 함대를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간다! 송희립의 판옥선은 한 관선(関船세키부네)의 중앙을 그대로 충돌 시켰다. 굉음이 터지면서 그 배는 반쪽으로 갈라져서 침몰하였다. 이어서 정경달과 나대용의 12호선과 10호선도 적선을 무참하게 밀어 붙였다. 관선(関船세키부네)이 판옥선의 강함에 모조리 부숴 지고 있소이다. 곽재우는 신나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원균이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매우 서둘러 배를 건조 했으니 부실할 수밖에 없지요. 선박의 이음새를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고 그냥 접철(摺鐵)을 이용하여 고정 시키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군요. 이렇게 유리한 판옥선과 화포, 수군의 경험을 지니고 있으니 바다를 저들에게 절대 내주지 않았던 것이군요. 원균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게요. 이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 당시에 어찌 그런 패배를 당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소. 절대 일방적으로 끝날 전력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곽재우는 원균의 한탄을 들으면서 그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장군에게는 괴로운 일이실지 모르나 기회가 되면 차후의 전투를 대비하여 그 날의 패전을 분석해 보는 것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좌포 발사! 이순신의 대장선과 원균의 장군선에서 일제히 현자, 지자 포가 불을 뿜었다. 계속해서 각기 좌우로 대장선과 장군선을 뒤따르던 첨사 이순신의 3호, 송여정 만호의 4호, 현령 안위의 5호, 정응두의 6호, 송대립의 7호가 역시 좌우로 판옥선을 돌리면서 함포 사격에 동참했다. 콰앙콰쾅---! 이순신 함대의 포 위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고려 때부터 왜구(倭寇)들을 방비하기 위하여 발달 된 화포와 선박의 효능, 공격 전술, 그리고 화포장들의 사격 명중률은 놀라운 것이었다. 우아앗? 피하랏--! 바다의 전면에서 얼쩡거리던 관선(関船세키부네) 5 척이 비명과 화염에 물들었다. 반파 된 배가 기울어지며 왜적들이 물속으로 속속 빠지고 수습하기 어려운 위기에 돌입하였다. 약간 뒤에 쳐져있는 관선(関船세키부네)의 장수들이 기겁을 하여 소리쳤다. 인명을 구조하라! 우리도 반격 하라. 발사하라! 일본의 군선에서 일대 혼란이 야기되고 있었다. 이때 이순신의 대장선에서는 흑룡이 새겨진 깃발이 올려 지면서 령(令)이라 새겨진 신호용 기를 전면으로 지시했다. 곽재우가 원균에게 물었다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곽재우가 아쉬워 혀를 차자 원균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장군의 작전은 어디까지나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확한 타격으로 적을 괴멸시키는 것이지. 이번 발포는 거리를 넘어오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성 사격이었네. 그랬군요. 다음 기회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을 거요. 이장군은 놓치는 법이 없으니까. 원균장군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그는 이순신에 대하여 무장으로의 경쟁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으로부터 구명을 받고난 후에는 심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게다가 곽재우로부터 전해들은 이순신의 광대한 포부는 원균에게 새로운 세계를 눈뜨게 하였다. 이순신의 대업에 동참하리라! 임금선조의 무능을 그 역시도 몸으로 겪어왔던 원균이었다. 이순신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였다. - 세상에 가장 쉬우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장군, 가치 없는 명예를 추구하지 마시오. 장군의 맹렬함으로 왜적들을 조선에서 몰아내야 하오! 장군의 용맹으로 일본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 함께 함대를 이끌고 일본 본토를 박살냅시다. - 이순신장군을 따를 것이요! 원균은 곽재우에게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전했다. 홍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원균은 곽재우의 어깨를 두어 번 가볍게 두들겼다. 나와 같은 마음이군. 그러나 우리 명량의 격전을 치룬 후에 평가하세. 과연 정도령의 계획대로 진행되어 우리가 승리하게 될지 말일세. 이들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때 적의 중형 군선인 관선(関船세키부네)이접근을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대장선에서는 초요기 대신에 붉은 바탕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저 신호는 무엇입니까? 곽재우가 묻고 원균은 그래도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했다. 대기 명령일세. 적들이 어느 정도 다가와야 공격을 감행 합니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시시각각 변하지. 이 장군은 언제나 최선의 거리를 유지하며, 항상 유리한 입장에서 적들을 공격하는 방법이 절묘하지. 그럼, 장군은 어떠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 장군의 전략을 많이 흉내 내는 편이지. 그리고 때로는 백병전(白兵戰)을 즐기기도 하고. 당파(撞破)는 나의 전문일세. 당파라? 부딪치는 충돌을 말하는 겁니까? 원균은 적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운이 좋다면 오늘 목격할 수도 있을 것이고. 홍의장군 곽재우가 통쾌하게 웃었다. 기왕이면 바다 위에서 왜적들을 베어 버리는 느낌 또한 육지와는 타를 터, 기대가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원균의 자세는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곽재우는 이순신과의 담판을 여과 없이 원균에게 전달했다. 이 또한 정도령이 곽재우에게 은밀히 부탁한 것이었다. 원균의 태도가 어찌 나올 것인지 곽재우는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주시했다. 난 이 바다에서 죽기를 소원하오. 왜적 4만 명이 목표외다. 원균의 뜬금없는 발언에 곽재우는 촉각을 곤두 세웠지만 오직 그 말 뿐이었다. 곽재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항해는 오후 내내 계속 되었다. 어둠이 막 시작 될 무렵에 저만치 파도를 타고 잉본의 관선(関船, 세키부네)의 뱃머리가 슬쩍 고개를 내미는 것이 목격 되었다. 적선이다! 판옥선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긴장감이 들었다. 드디어 마주쳤소. 원균은 철저한 패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적선의 숫자가 얼마나 될는지! 파도가 넘실거리자 적선이 하나, 둘 바다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중형 군선으로 무장한 일본 선박의 수는 모두 55 척 이었다. 이순신의 개벽함에 청색 바탕에 하얀 무늬로 북두칠성이 수놓아져 있으며, 백색의 불꽃 깃술이 달려있는 초요기(招搖旗)가 펄럭였다. 함대의 선박들이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그것이 곽재우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장군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네의 모습은 어떠한가? 의병대장으로 맹 활략을 펼치다가 왜 잠적했는가?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 명성이란 것이 생기면 생길수록 시기와 모함도 독버섯처럼 따라서 성장 한다는 것을. 권력에 기생하는 무리들은 점점 더 가증스럽고 혐오스럽게 탐욕의 저주를 안겨준다네. 난 더 이상 지치고 도망갈 수 없기에 스스로 신하의 몸을 깨 부쉈을 뿐일세. 이순신은 순간 평온해 보였으며 의연한 자세로 돌아와 있었다. 곽재우는 그의 의도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시기가 좋지 않다. 일본의 2차 침략으로 정국이 어수선 했으며 명나라 또한 많은 군대가 조선에 주둔해 있다. 만일 역성혁명이 발생 한다면 백성들의 혼란은 어떨 것이며 자칫 하다간 나라가 완전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조선이 일본과 명나라에 나누어질 판이 아닙니까? 자네는 그리 생각하나? 내란이 발생 한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를 상상하나?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니. 알고 있네. 미래를 예측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이순신이 실소
[신한국문회신문=유광남 작가] 단련이 되기 전까지는 방법이 없습디다. 단 흔들리는 파도에 몸을 덩달아 실어 호흡을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멀미는 금방 달아나고 말 거요. 곽재우가 흡족한 정보를 알아내어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 그런 방도가 있었군요. 어디 시험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음악적 재능이 아주 무뎌서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원균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하면서 자신의 의혹을 물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부는 태어나면서부터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장군! 곽장군이 이순신함대의 판옥선에 오른 까닭이 무엇이요? 원균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육지의 의병대장이 어째서 이순신의 함대에 동승하였는가. 까닭이 있었던가? 그래. 분명 이유가 존재 했었다. 곽재우는 실상 이울로 부터 심상치 않은 기별을 받고 한 달음에 이순신을 만나러 왔었다. 그리고 그때 곽재우는 선소에서 원균을 만난 직후 이순신과 독대를 가졌었다. 장군의 의도를 알고 싶소이다. 김충선장군을 여진에 보내신 연유도 포함해서 말입니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구루시마, 난 이순신과 여러 차례 충돌했지. 그때마다 패배를 하고 훗날을 도모하며 도주해 왔어. 그러나 이번은 달라. 이순신은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어. 그가 지금 행동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위를 하는 것이라 판단이 되네. 시위라 하심은? 공격당하지 않으려는 계교지. 이순신이 전술에 능하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 경험 했어. 그는 두렵기 때문에 행동하는 거야. 구루시마는 불안한 얼굴을 하였다. 과연 그럴까요? 이순신은 궁지에 몰려 있음이 확실해. 이번 기회에 숨통을 조이자! 구루시마 미치후사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총대장과 대장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희망은 이순신의 행각이 도도 총대장의 예측대로 일종의 발버둥이였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작아보였다. 구루시마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위해서 정종을 뜨겁게 데워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모두 떠나간 빈 회의실에 일본 무장 차림의 사내 한 명이 들어왔다. 아마도 대장들의 자리를 정돈하기 위해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무장의 허리춤에는 한 자루의 마상통(馬上筒=권총)이 삐죽 드러나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