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곽재우(郭再祐). 임진년 의병 역사에 가장 화려한 전공을 세우신 분이 아니십니까. 이울은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면전(面前)의 대장부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눈빛은 맑았으나 때로는 화기를 쏟아내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강직해 보이는 입매와 능선을 닮은 콧날이 전형적인 호남아풍의 생김새였다. 그가 의병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곽재우였다. 그 명성은 중봉에게 어울리네. 중봉이 누구인가. 바로 금산성 전투에서 산화한 의병장 조헌이었다. 이울은 이미 그의 제자들인 박정량, 전승업 등과 만나고 이제 의령으로 곽재우를 찾아온 것이다. 금산에서 제를 올리고 왔습니다. 제자 분들과도 만났습니다. 그런가? 박정량과 전승업은 유망한 인재들이지. 곽재우는 중봉 조헌의 제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곽장군님이 그들까지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의기가 대단하신 분들이십니다. 그 때문에 잊지 않고 있는 것일세. 평소 중봉이 아끼는 제자들이었지. 소생의 친구는 곽장군님을 그토록 아끼더이다. 신뢰하더이다. 자네의 친구라 함은 오, 김충선! 그를 말함인가? 곽재우의 입가에 봄날과도 같은 미소가 흘러갔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상큼함이 물결처럼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누르하치를 설득하고 돌아와야 하오. 충선은 내게 있어 또 한 명의 자식이외다. 그러고 보니 둘째 아드님이 보이시지 않더군요. 울은 충선의 부탁으로 의병들을 만나고 있소이다. 금산과 경주, 전주, 진주 등을 돌고 있을 것이요. 어쩌면 지금쯤은 홍의장군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소. 의병장 곽재우라면 순식간에 1만의 의병을 동원할 수 있는 의병 중의 의병이시지요. 당연히 곽재우장군도 동참해야 합니다. 내게 과분한 분이시지요. 모실 수만 있다 면이야 영광 아니겠습니까. 정도령은 단정적으로 피력했다. 곽장군은 우리의 대업을 절대 지지해주실 것입니다. 모르십니까? 그 분이 조선의 벼슬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지내시는 연유를? 당쟁(黨爭)으로 얼룩진 조정에 염증(厭症)을 느끼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충신(忠臣)이지요. 변절이 쉽지 않은 영웅입니다. 우리가 변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임금 개인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백성에 대한 충성을 하고자 함이니 오로지 그 마음 뿐 이면 변절이라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眞理)와도 같은 것입니다. 나라는 반드시 백성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 아래 엎드려 있
[한국문화신문 =유광남 작가] 이순신의 미간이 부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바다를 넘어서 일본으로 진격하고 싶소. 정도령의 입가에 신비감이 엿보이는 미소가 살짝 스쳐갔다. 이 전쟁을 끝내려면 일본에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를 죽여야만 일본은 물러날 것입니다. 언제쯤 그 비밀리에 제조한다는 전함을 타고 일본을 기습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응징할 수 있겠소? 전함의 명칭은 거북선입니다. 거북선? 거북이는 바다 속과 지상을 마음대로 오가는 놈이지요. 그 놈이라면 일본 기습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이순신은 경직된 얼굴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런 배가 존재할 수 있을까? 설마 바다 속으로 다니는 것은 아니겠지? 배라고 해서 바다 위로만 다녀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바다 속을 누비는 배도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에이, 정도령이 날 이제 놀리는구려. 하지만 정도령은 진지했다. 두고 보시면 아십니다. 그리고 광해군과 손을 잡으셔야 합니다. 세자와? 조선의 세자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를 장군이 품으셔야 합니다. 장군의 도량이시라면 광해는 분명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정도령의 주문은 일반적인
[한국문화신문= 유광남 작가] 하지만 적지 않은 쇠가 필요하며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나군관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해결해 줄 것이요. 이순신은 군관 나대용의 선박 제조와 관리를 신임하고 있었다. 정도령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이순신은 진심으로 반가웠다. 장군은 이제 다시 수사의 직위에 복귀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항 역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정도령의 예측에 대해서 이순신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저항이라니요? 조정에서는 앞으로 수군에 대한 기대를 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군선 10여 척으로 어찌 일본의 대함대를 방비할 수 있겠습니까. 이순신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정도령이 없었을 때 이야기가 아니요. 그대가 무적의 전함을 제조할 터인데 무엇이 두렵겠소. 조정에서 알 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당연히 몰라야 하고요. 그래야만 장군의 나라를 점차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순신은 자세를 고쳐 바로 앉으며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정도령, 우리의 대업이 가능하오? 정도령은 몸가짐을 단정히 가다듬었다. 물론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업을 정도령이 혹시 알고 있소? 같은 것이오? 정도령의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대답해 올리지요. 무엇입니까? 이순신은 넌지시 말을 던졌다. 도원수를 사주(使嗾)하신 분은 뉘신지요? 정도령은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을 받았다. 사주라니요? 표현이 좀 과하신 거 아닙니까? 이순신은 눈길이 마주치자 쓴 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워낙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다보니 지금 정신이 산란해서요. 정도령의 표정이 차분하게 변했다. 서애대감에게 그렇게 청을 올린 것은 소생입니다. 이순신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라 다소 감정이 섞여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것으로 조선수군을 궤멸시켰습니다. 그려. 정도령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이순신이 추궁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하늘의 뜻이기에 소생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설마 그토록 완벽하게 당하게 될 줄 사실 예상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러나 패배가 철저할수록, 아픔이 크면 클수록 장군의 영향력은 높아질 것입니다. 잔인하군요. 장군, 우린 사상최대의 반격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요? 일본 수군들을 전멸 시킬 계책(計策)을 이미 방도(方道)해 놨습니다. 이순신의 안면에 화색이 감돌았다. 그렇습니까? 뿐만이 아니라 일본 본토를 기습 할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이순신이 정도령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정갈한 눈동자에 사기(邪氣)라고는 전혀 없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동자를 닮아 있었다. 그 역사서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이 그럼 정도령이겠구려. 정도령이 펄쩍 뛰었다. 소생의 미천한 재주가 어찌 공명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단지 천기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조금 갖추었을 뿐입니다. 하기야 역사소설 속에서는 현덕 유비(劉備)가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공명을 군사(軍師)로 삼지만 정도령은 오히려 부족한 이 사람을 찾아와 주었으니 역시 소설과 현실은 많은 차이가 있소이다. 진작 정도령의 능력을 알았다면 난 세 번이 아니라 열 번이라도 정도령을 찾아갔을 것이요. 정도령은 단지 빙그레 웃었다. 그럼 장군께서 이 사람을 꿈속에 열 번 찾아 온 것으로 십고선몽(十顧先夢) 했다고 해 두지요. 이순신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사실 정도령에게 고백할 것이 하나 있소. 장군께서 소생에게 고백이 있어요? 영광스럽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이순신은 정경달을 한양으로 파견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나 정도령에 대해서 서애 유성룡은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도령의 신분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서애 유성룡이 진중한 어조를 꺼내었다. 아군의 희생을 목전에 두고 홀로 달아난 죄가 있다면 엄중히 조사하여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다스려야함이 당연하온 줄 아옵니다. 허나, 지금은 왜적들의 준동이 심상치 않으니 한시바삐 대비책을 강구하심이 우선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칫 방비를 게을리 한다면 지난 임진년의 참담함이 재현될까 두렵나이다. 선조의 용안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몽진을 거듭했던 지난날의 아픔이 되 살아났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영상의 말씀이 옳소. 그렇다면 조선 수군을 궤멸 시킨 패장 원균수사를 징계하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를 천거해야 할 듯싶습니다. 전시이니 만큼 단 하루도 비워둘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삼도수군통제사가 아닙니까? 잠자코 어전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오성대감 이항복이 입을 열었다. 선조가 물었다. 대감은 원수사를 대신하여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오? 전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만한 인물이 없다고 사료 되옵니다. 왕 선조는 힐끔 영의정 서애 유성룡을 곁눈질 하였다. 그러나 유성룡은 입을 닫고 말이 없었다, 선조로서는 다시 이순신에게 직위를 돌려준다는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장군, 가치 없는 명예를 추구하지 마시오. 장군의 맹렬함으로 왜적들을 조선에서 몰아내야 하오! 장군의 용맹으로 일본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 함께 함대를 이끌고 일본 본토를 박살냅시다. 원균의 온 몸이 전율을 일으켰다. 정녕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을까? 조선 함대를 이끌고 일본의 내륙으로 공격을 감행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원균은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 함대는 전......멸 하였소. 나의 무능함으로 남김없이 모두가 죽었단 말이요. 이순신은 힘을 주어 원균의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내가 남아있지 않소. 원수사! 원균은 고개를 돌렸다. 이순신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눈빛만이 살아서 활활 불타고 있는 조선의 명장 이순신이 거기 있었다. 이......장군! 어서 갑시다. 이순신은 원균을 잡아 당겼다. 임진년부터 왜적의 침입을 맞아서 그들은 협동 작전을 여러 차례 성공 시켰었다. 서로의 공적(功績)을 두고 경쟁을 일삼기도 했다. 모함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의금부에 투옥되어 방면 되는 시간 동안 완전히 변모하였다. 이순신은 원대한 꿈을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피핑! 핑! 이때 이순신은 연거푸 화살을 날렸다. 놀랍게도 달리면서 쏘는 화살은 원균에게 속속 달려들던 왜적들의 목과 가슴 등에 명중되었다. 원수사! 이순신은 원균을 불렀다. 원균은 몸을 돌리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날 조롱하러 온 거요? 당치 않소, 아니라면 조선의 정예 수군을 몰살 시킨 죄를 물으려 왔겠군요. 그것도 아니요. 이도저도 아니라면 대관절 내게 어떤 볼 일이 있소이까? 장군이 필요하오. 내가 필요하다니요? 어디에 쓸모가 있다는 거요? 나 이순신에게는 매우 소중한 장군이요. 원수사, 어서 돌아갑시다. 적 함선들이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소. 어서 갑시다. 원균이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제발 날 그대로 남겨두고 떠나가시오. 그럴 수는 없소. 이장군, 부디 이렇게 애원하오. 원균은 이제 두 손까지 내밀면서 빌었다. 이순신은 노성을 내질렀다. 원수사, 무엇 하시는 겁니까? 이 만의 정예병을 몰살 시켰으니 무조건 살아남아서 왜적을 사만은 소탕해야지요. 세상에 가장 쉬우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원균의 어깨가 심하게 떨렸다.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니, 생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당장 떠나라 하지 않았느냐? 바닷가 해안선을 타고 다시 수 십 명의 왜적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적은 원균과 그의 아들 원사웅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발사하라! 쾅! 하는 굉음이 울리더니 해안가를 질주하던 왜적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튕겨져 날아갔다. 개벽에서 함포 사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원균 부자를 잡기 위해서 날뛰던 왜적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배를 대어라. 개벽호가 원균 부자를 태우기 위해서 육지로 접근했다. 직접 현자포(玄字砲)를 발사했던 첨사 이순신이 다시 장전 하면서 소리쳤다. 장군, 시간이 없습니다. 후미에 적선이 나타났습니다. 물러서지 마라! 원수사와 원사웅 군관을 구조한 후 퇴각한다. 이순신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후방에는 적의 함선이 20 여 척으로 대폭 늘어나 있었다. 되돌아갔던 순시선들이 다른 선박과 합류하여 추격해 온 것으로 보여 졌다. 원균은 미끄러지듯이 해안으로 다가오는 판옥선을 발견하고는 탄식을 토해냈다. 흐웃! 자신과 아들 원사웅을 구조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돌진해 오는 판옥선에는 전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한 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수치스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