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원균수사를 그대로 두십시오.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순리와 이치를 따르셔야 합니다. 정도령이 설명하자 이순신은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소? 정도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은 말을 돌리지 않았다. 원균장군이 무모하게 출전을 감행하게 된 것은 도원수 권율장군의 징계에 의한 것이라고 하오. 적군과 대치하는 일선의 장수에게 곤장 형을 가하는 예는 들은 바가 없소. 내가 알고 있는 권율 도원수는 그리 경솔한 분이 아니시오. 어찌된 영문인지 정도령은 아시오? 이순신은 조카 이분을 통해서 도원수 권율과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사이에서 벌어진 사태를 보고 받았으나 이번에는 정도령에게 직접 물었다. 정도령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면 분명 진상을 꿰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과연 정도령은 이순신의 의도대로 명확하게 요지(要旨)를 전달하였다. 영상이 권율장군에게 청하였지요. 서애대감이요? 그렇습니다. 한양에서 전갈을 보냈습니까? 도원수부로 직접 방문하셨습니다. 어명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영상의 개인적 판단이었습니다. 영상께서 왜 그런 무리한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이런 건방진 작자가 있나?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돼먹지 않은 수작을 벌리는 것이냐? 살고 싶지 않은 것이지? 정도령이 싱긋 웃었다. 장군의 천명을 도와드려서 개벽의 대업을 완수하고자 달려온 사람에게 너무 무례한 언사가 아니요? 이순신을 비롯한 일행은 전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순신의 대업에 대해서 정도령이란 작자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역모(逆謀)는 왕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가장 위중한 죄목으로, 발각 당하게 되면 삼족(三族)이 멸문을 당하는 위험천만한 음모였다. 외부에 알려지는 날에는 참혹한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완의 칼이 섬광처럼 빠르게 출수 되었다. 정체를 밝혀라! 칼은 어둑해지는 저녁노을의 희미한 빛을 반사하며 싸늘한 감촉을 정도령의 목에 안겨 주었다. 그 칼은 예리 했고 무정한 살기만이 감돌았다. 하지만 정도령이라 자처한 선비는 놀랍도록 태연했다. 난 이미 여러 가지 내용을 전달했소. 성명을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정도령이라 불러주길 희망했고, 나이도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를 알 만 할 정도는 되었고. 무엇보다도 장군의 천명에 참여 하고자 이 자리에 나 온 것이요. 이회가 한 걸음 앞으로 나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예엣? 임진년으로부터 난 무적의 장수로 군림해 오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목포해전으로 시작하여 사천과 한산도대첩, 부산과 웅포 해전 등 불패의 신화를 남기셨습니다. 명나라와 일본군들 사이에서도 숙부님의 전승은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회자(膾炙)되었습니다. 그것이 나 이순신을 방자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하여서 감히 성상의 어명조차 거부할 수 있는 역심을 내게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찌 나의 불찰이 아니겠느냐? 오로지 나만이 이 나라를 수호 할 수 있고, 오직 나만이 백성들의 고단함을 구휼(救恤)할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 이런 방자하고 무례한 심성을 지니게 된 것은 내 승리에 도취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공적(功績)이 과해질수록 경계해야 한다는 공자님의 말씀을 잊었던 어리석은 무부(武夫)의 최후가 아니겠느냐. 그것은...... 이분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면 이순신의 견해가 옳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의 어명을 거역할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신하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순신이 탄식했다. 내 잘못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못내 담담한 자세로 의금부로 압송 당해 갔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34일 간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숙부님, 원균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후 제일 먼저 자행한 업무가 바로 숙부님의 측근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일이였습니다. 병선의 제조 달인 나대용, 바닷길의 전문 길잡이 이몽귀, 천자포, 지자포, 함포 사격의 명사수 최대성, 함대의 살림꾼 정경달, 무적 돌격대장 송희립, 함선의 중요 전략가 이순신 등이 모두 배척당했습니다. 물론 저도 포함해서요. 그것은 당연한 처사가 아니겠느냐? 원균장군 역시 자신이 총애하는 장수들을 임명하여 진영을 재정비했겠지. 이분은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순신에게 항의했다. 그들 전원은 삼도수군의 대표적인 무적무패(無敵無敗)의 전사들입니다. 물론 당연히 저는 통역관이니 제외하고요. 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고 다시 함대의 용사로 복귀될 것이야. 그토록 훌륭한 장수들을 한 사람이라도 잃는다는 것은 조선으로서는 엄청난 손실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조카 이분의 울분을 조용한 어조로 달래주었다. 문득 제일 어렸으나 기골이 장대한 이완이 물었다. 혹시 원균장군을 도우시겠다는 것이 우리 측근 장수들을 다시 기용해 달라는 청탁을 하시려는 것인지요? 아직 나이가 어렸으므로 그런 의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과연 운만 따른다고 연전연승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오표는 반박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것은 사실일세. 백성이란 것이 무지해서 그렇지. 주상과 신료들이 구국을 위하여 명과의 관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해. 명나라 군사가 조선에 10만 이상이 투입되었네.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 그들 천군(天君)의 영입을 위하여 주상이 얼마나 눈물겨운 공을 세웠는지 무지한 백성들은 상상도 못할 걸세. 오표는 반박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조선 왕 선조에 대한 분석은 이미 임진 원년에 끝나 있는 상태였다. 그와 관련 된 사안들은 고스란히 정리되어 여진의 칸 누르하치에게 보고된 상황이었다. 오표와 일패공주는 조선 왕 선조의 무능함과 권력욕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었다. 멍청한 조선 왕 선조, 모자란 강두명, 너희들은 조선의 해악일 뿐이야. 오표는 여진의 북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보폭을 천천히 옮기고 있었다. * * * 출전을 하란 말씀이옵니까? 원균은 부당한 명령에 항의하는 눈빛으로 도원수 권율장군을 노려보았다. 그대에게 삼도수군통제사의 중책을 맡긴 것은 바다를 수호하기 위함일세. 한가롭게 연합 공격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이런 빌어먹을 놈! 정신세계가 약간 까다로운 작자를 만났구나. 칼솜씨가 아주 비범하다 하니 내 참는 바이다. 조영은 어딘가 모르게 오표가 불편했다. 강두명이 굉장한 칼잡이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여서 오표를 만났을 뿐이었다. 상대가 조선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사이며 그의 수하들 역시 무섭게 칼질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칼솜씨는 고사하고 해괴한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채비를 하고 자하문 밖에서 대기 하도록 하지요. 오표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조영은 내심 술맛이 떨어져 가던 차에 상대가 먼저 일어나자 옳다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이틀 후에 출발이요. 묘시(=오전 5시에서 7시)에 보시지요. 오표는 다소 냉랭한 어조를 꺼내며 주막을 나섰다. 강두명이 그 뒤를 부랴부랴 따랐다. 장도에 오를 몸인데 오늘은 마음껏 취하는 것이 어떤가? 왜 이리 서두르시는가? 술 맛이 별로야. 저 늙은이하고는. 하지만 주상 전하의 밀사일세. 자네가 내금위에 오를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위인이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으나 자네의 목적을 잊지 말게나. 강두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조영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 역시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는 무언의 항의였다. 어명을 그런 식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일이야. 선전관 조영은 그래도 상전인지라 한 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강두명이 돌연 화제를 돌렸다. 김충선은 대단한 희귀종이요. 조국을 배신한 작자이니 당연 희귀종이지. 그가 일본을 거역하고 조선에 투항한 연유를 혹들 아시오? 오표의 질문에 대하여 사헌부 지평 강두명과 선전관 조영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김충선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다만 왕 선조가 그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이순신과 더불어 지난 수 년 간 적지 않은 무훈을 세워 자헌대부란 종 2품의 관직까지 올랐다는 정도였다. 그것은 알지 못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굉장한 독종이지. 선전관 조영은 김충선에게 납치되어 혼이 나갈 정도로 곤욕을 치룬 기억을 떠올리며 새삼 몸서리를 쳤다. 그랬었군요. 선전관께서는 그와 면식이 있는 것이군요. 그 자가 날 핍박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난 엄연히 조선의 관리로 그따위 겁박에 넘어갈 리가 있었겠나? 그 때문에 성상께서 나의 강직한 행동에 감복하시어 오늘과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선전관 조영은 이미 당해본 경험이 있는지라 조심성 있게 선조에게 아뢰었다. 선조는 다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과인이 그만한 안배도 해놓지 않았겠느냐? 하오면......? 강지평에게 방책을 묻도록 하라. 선전관 조영은 머리를 조아렸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그러나 여진은 먼 길 이옵고 조선과는 왕래가 없는 적국이옵니다. 신이 목숨을 걸고 어명을 받들고자 하오니, 부디 성상께옵서는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선조의 입가에 비릿한 실소가 흘러갔다.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신하된 몸으로 감히 어떠한 요구를 올릴 수 있겠나이까. 그저 헤아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올 뿐이옵니다. 당상관으로 임명해주마. 당상관이라 함은 정 3품의 이상 품계로 중앙 정치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고위 벼슬이었다. 조영의 품계에서 적어도 세 단계 위로 승차하는 기회였다. 조영은 재빠르게 성상을 우러르며 목청껏 외쳤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 * * 조영이 마주 친 사내는 첫 눈에 봐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강두명이 소개한 장본인은 바로 오표였다. 여진을 아는가? 오표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잠시 망설였다. 여진은 그의 뿌리였고 생명이며 조국이었다.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조선의 전 영토가 사지입니다. 지금도 가토의 군대가 부산을 재침하여 북진하고 있으며, 고니시의 군대는 웅천으로 상륙하였소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의 수송선단이 바다를 넘어오고 있는 형국이요. 한시가 급합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소이다. 서애 유성룡의 간곡하고 비장한 어조가 도원수 권율의 심기를 자극하였다. 이제 물러설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도원수 권율이 입술을 악물었다. * * * 여진이다. 선조의 얄팍한 입술을 비집고 나온 단어는 선전관 조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전란이 재개 되었는데 갑자기 여진을 다녀오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은 대목이었다. 의금부에서 풀려난 후 사흘 만에 강두명의 안내를 받아 은밀히 선조를 알현한 자리였다. 여진에 누구를 만나란 어명이시옵니까? 선조는 순간적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다시금 머릿속을 정리했다. 김충선이란 작자가 이순신에게서 떨어져 나가 종적이 묘연하다. 이놈이 대관절 어디에 무엇 때문에 종적을 감춘 것일까? 상감마마, 소인에게 어서 명을 내려 주소서. 선전관 조영은 재촉했다. 여진은 사실 위험한 변방이었다. 그곳을 반드시 가야 한다면 생명에 대한 보상과 보장을 받아야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도원수의 예측에 공감하는 바입니다. 아마도 전멸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이순신 함대의 궤멸은 조선의 패망과도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지요. 남해를 사수하지 못한다면 육지에서의 수비 또한 불가능해 집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순신장군은 그 때문에 어명을 따르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의 함대가 고스란히 원균장군에게 남겨진 것입니다. 대감! 그래서 저에게 어떤 어명을 거역하라는 말씀이옵니까? 왕명으로 삼도수군통제사 지위에 올라있는 원균을 인정하지 말고 이순신장군을 복귀 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유성룡의 입에서 또 다시 위험천만한 발언이 튀어 나왔다. 맙소사. 영의정 유성룡이 이건 제 정신이 아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발칙한 망언을 토해낼 수 있단 말인가. 선조가 임명한 원균을 배제하고 백의종군 이순신을 복직 시키란 말이 아닌가. 이것이 도통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럼 내게...... 어명을 거역하라는 말입니다. 대감? 놀랍소? 놀라는 것에서 그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 사람이 명령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도원수의 자리는 삼도수군통제사를 마음대로 박탈하고 임명할 수 있는 권력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