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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아니라 ‘말’이다!

서양말 랭귀지(language)’는 우리말로 ‘말’이라 해야
김두루한 배움이야기 5

[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언어폭력의 언어는 무엇을 말할까?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 4%를 대상으로 한 지난해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피해자 10명 중 7명가량이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피해 응답률이 높았다. 가해 이유는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가 1위였다. 6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2022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른 내용이다.

 

위 기사에서 나온 ‘언어폭력’에서 ‘언어’란 무엇일까? 말모이인 《표준국어대사전》, 《두산백과사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는 ‘언어’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①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는데 쓰는 음성ㆍ문자 따위의 수단 ②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관습적 체계.”(표준)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성ㆍ문자ㆍ몸짓 등의 수단 또는 그 사회관습적 체계.”(두산)

“자아 존재의 본질이며 공동체 문화의 핵심.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면서 인격을 완성한다.”(국어, 좋은책신사고)

 

‘언어’는 스위스 소쉬르가 만든 ‘랑가쥬’를 옮긴 일본말이다

 

《표준》에 나온 ①은 ‘입말’과 ‘글말’을 싸안은 ‘말’을 뜻한다. ②는 차이나말, 니혼말, 몽골말따위로 쓰인다. 하지만 본디 언어처럼 언과 어는 붙어 있지 않았다. ‘논어’에서 ‘어’는 무엇을 뜻할까? 제자들이 공자에게 묻는 말은 ‘언’이고 대답하는 말이 ‘어’다. 언(言)이 낱말(워드)이라면 어(語)는 뜻을 갖춘 이야기다.

 

언에는 조리가 필요 없지만 어는 조리를 요구한다. 조리도 없이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듣는 사람도 원하지 않는다. ‘어’는 어눌한 사람, 어폐 있는 말, 어색한 분위기란 말에서처럼 쓰인다. ‘어’가 조리를 갖추지 못하면 ‘언’으로 추락한다. 《언 다르고 어 다르다》, (김철호, 151쪽)

 

스위스 말글학자 소쉬르는 ‘머릿속에 갈무리된 말’을 ‘랑그’라 하고 ‘저마다 부려쓴 말’을 ‘파롤’이라 하여 이들을 싸안은 것을 ‘랑가쥬(language)’라 하였다. ‘언어’는 이를 옮긴 일본말이다.(일본한자말) 중국 사람들은 ‘언어’를 뒤집은 ‘어언’(위옌)이란 표현을 채택했으니 겉만 다를 뿐 알맹이는 똑같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 가운데 ①에 해당하는 내용, 곧 입말과 글말을 합친 것을 가리키는 전통 표현은 ‘언문’이다.

 

일본말로 이룬 ‘교육/학습사회’에서 벗어나야 할 까닭

 

광복을 이뤘으나 친일파들이 이승만 정권부터 어느새 정부와 군대, 경찰 등에서 요직을 차지했듯이 학자, 정치인, 언론인 가운데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본식 문물에 익은 이들은 일본말(한자말)을 내세웠다. 또다시 36년 동안 우리를 억눌렀던 말들로 국가 교육이나 법률 틀 안에서 살았다. 미래임자인 학생들은 교과서와 시험에 얽매 한말글을 제대로 배우고 부려 쓰기 어려웠다.

 

“징역, 공소, 항소, 상고심, 공판, 구형, 언도, 집행유예, 피고, 원고, 심리, 진술, 논고, 조회, 집달리, 지불, 선고, 명령....”《국어교육론》(려증동, 61쪽)

 

“1965년 초등 4학년부터 모든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쓰며 한자말로 바뀌었다. 물뭍동물(양서류), 젖먹이동물(포유류), 붙박이별(항성), 가지치기(전지), 거름주기(시비)” 《언어는 인권이다》(이건범, 173쪽)

 

일본말로 이룬 교육/학습사회에서 벗어나야 할 까닭은 뚜렷하다. 느낌과 생각을 담아내는 토박이말이 지닌 힘을 살리고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흉내내기 가르침과 익힘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문법’이 아니라 ‘말본’이다

 

4296(1963)년 7월, 말본파와 문법파 학자들이 국어사정위원회로 모였다. ‘낱말을 부려서 월을 만드는 본(법)’과 ‘말의 구성 및 운용상의 규칙’을 두고 용어를 어느 쪽으로 통일할지 15명 위원이 말소리, 낱말, 월 세 가지에 걸쳐 표를 던져 정했다. 낱말에서는 8:7로 문법파가 말본파를 이겼다. 일본식 번역 문물에 익은 이들이 ‘흰피톨’보다 ‘백혈구’를 썼듯이 스스로 배달말인 ‘말본’을 저버린 지 벌써 예순 해이다.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 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 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또 국문을 이렇게 구절을 떼어 쓴즉 아무라도 이 신문보기가 쉽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보게 함이라. 각국에서는 사람들이 남녀 무론 하고 본국 국문을 먼저 배워 능통한 후에야 외국 글을 배우는 법인데 조선에서는 조선 국문은 아니 배우더라도 한문만 공부하는 까닭에 국문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묾이라. 조선 국문하고 한문을 비교해 보면 조선 국문이 한문보다 얼마가 나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첫째는 배우기가 쉬우니 좋은 글이요, 둘째는 이 글이 조선글이니 조선 인민들이 알아서 백사를 한문 대신 국문으로 써야 상하 귀천이 모두 보고 알아보기가 쉬울 터이라. 한문만 늘 써 버릇하고 국문은 폐한 까닭에 국문으로 쓴 것은 조선 인민이 오히려 잘 알아보지 못하고 한문을 잘 알아보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논설>, 《독립신문》 창간호 1896. 4.7

 

127해가 지난 뒤 다시 읽는 글이다. 이 글을 새삼 읽으며 박근혜 정권 교육부가 벌인 ‘한자교육’ 정책을 떠올린다. ‘2019년부터 초등교과서 한자 300자 표기’란 정책연구를 맡겼다가 취소한 이 정책은 누가 왜 벌인 일일까? 조선 고종이 1894년 공문서에 국한문 혼용을 허용한 일과 1895년 왜인들 입김이 들어간 ‘교육강령’을 내세운 것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한마디로 국가가 내세운 교육은 ‘국민정신’ 등으로 명령에 복종하거나 고분고분한 채 순종하도록 강제로 부추긴다는 점이다. 3선 개헌을 한 박정희는 극우민족주의, 독재 파쇼주의자가 되었다. 1968년 세계 흐름과 달리 ‘국민교육헌장’을 내세웠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1972년 ‘10월 유신’을 감행하여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다. ‘민족주체성’이나 ‘국어순화’, ‘국어사랑 나라사랑’이란 구호로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를 강요했다.

 

국어인가? 한국어인가? 아니면 한말글인가?

 

한글날에서 나아가 한말글날이 좋겠다. 토박이말에 바탕을 두고 뿌리를 내린 말글살이를 할 때가 아닌가? 스스로 사랑하는 나라에서 말글임자가 되고 씨알로서 임자로 참삶을 누리고 싶다.

 

임자누림(민주주의)을 말로만 할 게 아니다. 이듬해 4357(2024) 4월이면 또다시 나를 대신하여 임자 노릇을 하면서 대한민국을 꾸려 갈 나라모임 일꾼을 뽑는다. 하지만 이젠 뽑힌 그들에게 맡기기보다 씨알 스스로가 나설 때다. 건너임자가 아니라 바로임자가 되어 말글살이도 바꾸자. 시험을 대비하면서 외고 찍는 일이 배움이 아니다. 문법에서 벗어나 말본을 살려 쓰자! 새롭게 묻자. 자라나는 새싹들이 벅찬 마음을 품도록 토박이말로 배움을 누리자. 말글(어문)이나 새김(역사)ㆍ밞힘(철학)을 나답게 차릴 때다. 참삶을 누리려면 나부터 말글임자로서 씨알이 돼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