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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인생은 짧고... 폴 게티 미술관에서

예술품을 모아서 우리에게 마음 놓고 볼 수 있게 한 폴 게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2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달 예정으로 미국 LA에 건너온 지 열흘이 되는 날이다. 폴게티 미술관을 찾은 이야기를 쓴다.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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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남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모든 일이 그럴 수 있다면 그만큼 인식의 깊이가 깊어지고 오류나 실패의 확률도 줄어들 것이다. 그 점에서 올해 나는 특별한 해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6월에 일본의 한 시골동네를 40년 만에 다시 가서 그 동네에 얽힌 과거의 역사와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하반기에는 10년 만에 다시 미국 LA에 와서 이곳의 훌륭한 미술관을 다시 가 볼 행운이 온 것이다. 그 미술관은 미국 LA북쪽 베벌리힐스(속칭 비벌리 힐즈)에 있는 폴 게티 미술관이다.

 

폴 게티(Paul Getty 1892~ 1976)는 미국의 석유사업가로 1913년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께 석유사업을 시작해 유전을 사들인 것이 대박을 쳐서 1920년대에 게티 오일이란 회사로 엄청난 부호가 된다. 그는 곧 미술품 수집에 나서서 훌륭한 작품들을 대거 수집하기에 이르자 1953년에 말리부에 게티 미술관을 열어 이를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했고 사업의 번창함을 바탕으로 더 많은 미술품을 수집해 추가로 미술관을 베벌리힐스에 더 크게 짓는 등 자신이 좋아하는 꿈과 취미를 사회에 드러내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을 뜨기 3년 전인 1973년에 한 이탈리아인이 그의 손자를 유괴해 1,600만 달러에 이르는 몸값을 요구했으나 인질범과 타협하면 유사범죄를 조장하게 된다며 이를 거부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가 죽은 뒤 1988년에 게티 오일 사는 텍사코사에 흡수되었지만, 그가 수집한 미술품들은 여러 곳의 미술관에서 일반에게 계속 공개되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필자는 10년 전 회사에서 퇴직하고 처제와 동서가 사는 LA에 잠시 나와 미술관을 찾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미국의 처제와 동서가 퇴직한 기념으로 LA로 다시 여행을 나오게 되면서 폴 게티 미술관도 다시 보는 행운을 얻었고 폴 게티의 삶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폴게티 미술관은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비벌리 힐즈의 태평양쪽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평지 높이에 큰 주차장을 만들고 거기서부터 모노레일 전차로 달팽이처럼 빙 돌아서 올라가면 언덕을 평평하게 다듬고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기단과 건물을 세웠는데 동서남북 네 곳의 전시동과 가운데의 넖은 분수광장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지치지 않고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이 미술관은 입장료를 받지 않기에 더욱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나는 동관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했는데 마침 옛 작품들을 디자인 차원에서 재조명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눈길을 끈 것은 15세기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만들어진 유리공예 제품이었다. 우리나라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리공예 작품과 너무도 흡사한 것들이 16세기 17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졌음을 알게 해준다.

 

 

명나라 때 청화도자를 모방한 그릇들도 나와 있었다. 형태와 무늬는 비슷한데 재질은 자기(磁器)가 아니라 도기(陶器)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뛰어난 회화작품들도 소장품 혹은 대여품들로 전시장을 채워주었다. 한 곳에서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르주 루오의 막달라 마리아 그림은 촛불과 해골로 덧없는 사랑과 삶의 허무를 한 번에 드러내 주는 명작으로 유명한 데 마침 여기서 보게 되었다.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메오가 그린 이 작품은 어린 예수와 요한이 만나고 마리이와 요셉이 지켜보는 상황을 설정한 것인데 생생한 표정과 선명한 색조의 풍경이 돋보인다고 한다. 또 렘브란트의 작품도 있었다.

 

 

 

이런 전시는 소장품이 주를 이루면서도 곳곳의 명작들을 함께 보여주고, 또 주차료 외에는 관람료를 받지 않음으로써 누구에게나 훌륭한 예술 교육장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어린이, 가족 관람.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생전의 폴게티는 천하에 유명한 구두쇠, 짠돌이로서 생활에서 모든 물자를 아끼고 심지어는 집에 손님들이 와도 전화를 밖에 나가서 공중전화를 하도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올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손자의 몸값 지불 거절도 돈이 아까워 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해서 그의 가족들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고생했고, 그가 죽은 뒤에는 유족들의 유산분쟁으로 재산이 흩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고 수집했던 미술품들은 폴 게티 미술관에 남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시민들에게 최고의 교재이자 정신의 보양재로 사랑을 받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모질게 모은 재산은 다 흩어졌지만, 다행히 미술품과 그 전시장을 운영할 힘은 남아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 하니 참으로 " 인생은 짪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 폴 게티가 돈을 모으고 지키려 가족의 안위도 모른척한 과정 등에 대해서는 말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그것을 모아서 우리들에게 마음 놓고 볼 수 있게 한 그 마음은 우리가 문화의 달을 지나며 다시 한번 더 평가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