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김충선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공손히 누르하치의 강궁을 받아드렸다. 묵직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서 그의 가슴을 온통 뒤흔들었다.
‘이 자와 한판 도박을 벌려야 한다!’
여진의 칸 누르하치의 환심을 사야만 개벽의 서막을 제대로 열 수 있는 길이 아니던가. 이순신의 나라를 위해서 전부를 바치고자 했던 젊은 장수 김충선은 강궁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성공할 수 없다면 그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천명이 조선을 굽어 살핀다면 그는 성공할 것이었다.
“넌 자신이 별로 없어 보인다.”
누르하치가 엷은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김충선의 아래 위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칸의 강궁을 대하는 것도 황송하온데, 심지어 지엄하신 옥체로 직접 하사 하시니 소생 몸 둘 바를 몰라 이러합니다.”
김충선은 최대한 정중하게 예를 다하였다.
“그따위 격식은 조선 왕의 어전에서나 뱉어 내거라. 난 자유로운 위인을 본래 숭상한다. 그대에 대해서 보고 받기로는 아주 담대하고 열정적이며 파격적이기까지 하다고 들었거늘, 어찌 이 모양이냐?”
여진의 칸 누르하치는 약간은 경멸의 시선으로 김충선을 대하였다. 김충선은 상대의 돌연한 태도에 전혀 굴하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로 응대했다.
“소신 역시 위대한 칸께옵서 권위와 명예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 천리를 찾아온 빈객에게 이런 무례하고 유치한 조건을 내거신 연유를 정녕 헤아리기가 어렵나이다.”
상당히 날카로운 반격이었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곁에서 보고 있던 일패공주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무례하오!”
일패공주가 소리치는 것을 누르하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 놈은 정말 흥미로운 놈이구나. 일패, 너의 보고처럼 말이다.”
“송구하옵니다.”
일패공주는 설마 김충선이 이토록 무례하게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할지 난감한 표정으로 누르하치를 올려다보았다.
“이 놈은 그냥 독수리 사냥 하는 것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구나.”
누르하치는 일패공주를 바라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김충선의 경박함에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칸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이 순간에 김충선은 강궁의 탄력을 알아보려는 듯이 손가락으로 시위를 가볍게 튕기고 있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가롭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일패공주는 한숨이 저절로 터졌다.
‘정말로 어이 상실이다.’
그런데 누르하치는 달랐다.
“내게 실망하여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였다는 것이구나. 일종의 내 조건에 답한 반발 이었다?”
“그리 느끼신 것입니까?”
“설마 아니라고 대답하려는 것이 아니겠지?”
김충선이 막 대꾸를 하려는 순간에 어린 홍타이시가 짜증을 부렸다.
“독수리 사냥은 언제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