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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의 꿈꾸는 나라" 풍운의 장 79회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위대한 목숨이란 단어에 누르하치는 힘을 주었다. 김충선의 생명을 가치 있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김충선의 목숨과 일패공주와의 혼사를 명국과 비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으나 그것이 누르하치의 시각에서 발생하자 결코 우습지도 않았고, 가볍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소신의 생명을 그리 높게 평가해 주시는 것이옵니까?”

”당연한 일이 아니냐. 그대는 이제 짐의 사람인 것을!“

“황공하옵니다.”

“그런데 정작 너의 영혼은 조선의 이순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어떠하냐? 너의 답변을 듣고 싶구나.”

누르하치는 집요한 구석이 존재했다. 일패공주가 김충선의 궁색한 모습을 대변하고 나섰다.

“아바마마, 그 사람의 청혼을 수락하셨다면 이제 그를 자유롭게 하소서. 속박을 하시는 것은 칸답지 못하신 처사이옵니다.”

누르하치는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대와 이순신의 관계에 대하여 일패로부터 많은 보고를 받았다. 이제 조선의 이순신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때의 김충선은 여전히 그다웠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소신의 우상이옵니다.”

누르하치의 표정이 급변했다.

“우상이라고 했느냐?”

“이순신 장군은 소신의 양부(養父)이옵니다. 천륜을 어찌 거역할 수 있단 말씀이옵니까? 칸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기원하옵니다.”

일패공주의 가슴이 또 다시 두근거렸다. 누르하치의 침묵에 몸이 달아올랐다. 식은땀이 목덜미를 적셨다. 어째서 저리도 강직하게 진심을 털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일패공주는 김충선의 융통성 없는 담대함이 야속하였다.

“의지와 신의가 몸의 뿌리를 이루고 있으니 신뢰할 만하구나. 우선 그대를 건주 여진의 장수로 임명한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각궁을 그대에게 하사하겠다. 이번에는 단순히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넌 그 각궁으로 아직 통합되지 못한 해서여진을 정복하여라.”

“칸의 명령을 어김없이 실천하겠나이다.”

누르하치는 비로소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가 웃음을 짓자 홀연 모든 것이 평화스러워지는 느낌이었다.

“혼사는 여진의 부족을 완전 통합하여 만주국을 건립하는 날 올리도록 하자.”

일패공주의 볼이 붉게 상기되었다.

“아......칸이시여.”

“너희들은 사전에 교감을 했던 것이겠지?”

청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일패공주는 살며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렇게 담대하게 청혼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랬겠지. 조선의 이순신이란 자에 대해서 놀랬었는데 이 녀석도 꽤나 놀라운 짓을 저지르는 물건이야. 내 너희들을 지켜보겠다.”

누르하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장내를 떠나갔다. 순식간에 고요함이 김충선과 일패공주를 찾아 들어왔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눈빛을 교환 했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그들 앞에는 생사(生死)가 오고가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선의 명운과 명나라의 붕괴가 예측 되었으며 여진의 통일로 만주국(滿洲國)이 거론되었다. 뿐인가. 김충선과 일패공주. 그들은 운명적으로 혼인을 해야만 하는 처지로 돌변하였다.

“내 청혼이 진심이었다고 생각하오?”

“진심은 아니었어도 그냥 거짓은 아니라고 믿었지요.”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만주 땅에서 그들 남녀는 서로를 오래 동안 침묵으로 탐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