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

  • 맑음동두천 21.3℃
  • 맑음강릉 28.1℃
  • 맑음서울 22.4℃
  • 맑음대전 23.9℃
  • 맑음대구 26.7℃
  • 맑음울산 24.4℃
  • 맑음광주 24.7℃
  • 맑음부산 20.2℃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1.3℃
  • 맑음강화 18.6℃
  • 맑음보은 24.0℃
  • 맑음금산 23.3℃
  • 맑음강진군 21.8℃
  • 맑음경주시 25.5℃
  • 맑음거제 20.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대업의 장 80회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이 어인 행차시오?”

서애 유성룡의 방문은 전혀 의외였다. 권율은 의관을 급히 살피면서 한 걸음에 달려 나갔다. 유성룡은 빙그레 말없이 웃으며 도원수 권율에게 수인사를 건넸다.

왜적의 준동이 심상치 않으니 도원수의 심기(心氣)가 얼마나 불편하시겠소.”

유성룡의 형식적인 인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의정 신분의 유성룡이 사전 예고도 없이 도원수를 찾아 온 것은 어떤 연유가 있으리라. 그것이 무엇인지 권율은 궁금했고 또 불안했다. 일전에 탈영을 감행했던 부하 병사를 즉결처분하는 과정에서 탄핵(彈劾)을 받아 지위를 박탈당한 적이 있었다. 물론 재차 기용되기는 하였지만 중앙의 정치라는 것이 탐욕(貪慾)과 간교(奸巧)함으로 무장되어 당파(黨派)의 대립 사이에 불꽃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얼음장처럼 냉각되어 파멸될 수도 있음을 체험한 터였다.

이 사람의 심사(心事)가 무엇 중요하겠소이까. 임진년의 실수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임진년의 초기 대응에 실패하여 불과 이십 여일 만에 한양을 적들에게 내주었던 일을 말 함이었다. 그때는 왕 선조와 대신들이 평양과 의주로 각기 도주하기가 바빴었다. 만일 의병과 명나라, 이순신의 함대가 선전하지 못하였다면 조선은 아마 그 임진년에 일본에게 완전 점령당하고, 선조 역시 명나라로 망명하여 조선은 비어버린 깡통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도원수에게 기대가 크오.”

유성룡의 단순한 말도 도원수 권율에게는 그리 들리지 않았다. 사실 임진왜란이 발발 하기 전에 서애 유성룡은 선조에게 여러 명의 장수를 추천 하였다. 그 중에도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여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것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도원수 권율이었다. 권율과 이순신에게는 무장이기 이전에 문인이었다는 공통점이 존재하며 두 사람 다 다소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올랐다. 특히 권율은 유성룡에 비해서 다섯 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율은 유성룡에 대해서 지극한 존경심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임진 원년 당시, 왕 선조는 실상 누구보다도 신립 대장군을 신뢰하였다. 그러나 신립 대장군은 충주 탄금대에서 왜적을 맞이하여 바로 장렬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러나 수군의 이순신은 바다에서 연전연승을 가두고, 권율장군은 이치전투와 독왕산성, 그리고 최대의 격전 중 하나인 행주산성의 대전을 승리를 이끌었던 것이다. 이제 육지에서 조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장수는 노장 권율 도원수뿐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왜적을 완전 궤멸시키지 못한다면 조선은 기름밭에 화약을 곁에 두고 있는 형국을 모면할 수 없소이다.”

동감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