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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대업의 장 93회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예엣?”

임진년으로부터 난 무적의 장수로 군림해 오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목포해전으로 시작하여 사천과 한산도대첩, 부산과 웅포 해전 등 불패의 신화를 남기셨습니다. 명나라와 일본군들 사이에서도 숙부님의 전승은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회자(膾炙)되었습니다.”

그것이 나 이순신을 방자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하여서 감히 성상의 어명조차 거부할 수 있는 역심을 내게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찌 나의 불찰이 아니겠느냐? 오로지 나만이 이 나라를 수호 할 수 있고, 오직 나만이 백성들의 고단함을 구휼(救恤)할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 이런 방자하고 무례한 심성을 지니게 된 것은 내 승리에 도취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공적(功績)이 과해질수록 경계해야 한다는 공자님의 말씀을 잊었던 어리석은 무부(武夫)의 최후가 아니겠느냐.”

그것은......”

이분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면 이순신의 견해가 옳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의 어명을 거역할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신하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순신이 탄식했다.

내 잘못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못내 담담한 자세로 의금부로 압송 당해 갔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34일 간의 감금 생활을 끝내고 백의종군의 신분으로 돌아온 지 99일 만에 재회였다.

계십니까?”

청량한 목소리였다. 낭랑하면서도 음색이 고와서 마치 깊은 산속의 샘물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이순신을 비롯한 일동의 시선이 문가로 향하였다. 청년문사 차림이었다. 갓과 도포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선비는 대략 이십 칠, 팔세 정도로 보였다. 눈빛은 고요했으나 콧날은 준령처럼 빼어났고 입술이 여인처럼 고왔다. 피부 역시 난리를 전혀 격지 않은 양반처럼 뽀얗게 윤이 나고 있었다. 이완이 불쑥 물었다.

뉘신지요?”

장군을 찾아온 신객(信客)이외다.”

이순신 역시 처음 대면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백의종군의 신분인 사람이요. 장군은 예전의 신분이니 혹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가?”

여인네처럼 곱상한 선비는 입가에 찰랑거리는 미소를 담았다.

천 명의 백의종군이 등장한다 해도 소생은 장군을 알아볼 것입니다. 소생은 죽도(竹刀)에서 온 정도령이라고 하옵니다.”

이순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죽도는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정도령이란 이름은 역시 생소했던 탓이었다.

이름이 정도령은 아닐 테고? 누구의 문하인고? 본명은 어찌되고?”

이순신은 아들 또래로 보여 지는 정도령에게 제법 진지하게 물었다.

소생의 신분에 관심을 두지 마시길 바랍니다. 단지 올리고 싶은 말은 장군에게 하대 받을 정도로 어리지 않으며, 금일 방문한 까닭은 천기를 누설 하고자 함이외다.”

신분을 묻지 말아 달라는 소리였다. 게다가 어리지 않으니 반말을 삼가 해 달라는 경고까지 있었다. 다소 성격이 급한 이완의 안색이 돌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