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향후 20년 간 서울의 도시경영에 있어 최상위 가치판단의 준거가 될 서울의 미래상(未來像)이 1박2일 시민 마라톤 논의 끝에 소통과 배려가 있는 행복한 시민도시로 정해졌다. 뉴욕의 'Green, Greater', 런던의 'Sustainable World-City',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그 도시만의 시대정신을 담은 미래상이 있는 것처럼 서울도 2030년을 목표로 서울이 당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이번 게획안은 소통(疏通)과 배려(配慮)를 중심으로 2030년 서울을 시민이 행복한 도시로 만들고자하는 시민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시는 밝혔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시민이 머리를 맞댄 가운데 서울의 미래상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와 전략을 담아「2030 서울플랜(도시기본계획(안))」을 26일(목)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지난 4월 서울시가 올해를 미래 도시계획 100년의 元年으로 정해 서울 도시계획에 관한 합의된 철학과 원칙을 정립하고, 도시계획 체계를 정교하게 보강하겠다고 밝힌데 이은 것이다. 2030 서울플랜은 2030년까지 서울시가 추구하는 변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조선 광해군 8년(1616)에 세운 경희궁의 정문이다. 그러나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건립하고자 궁내의 많은 전각을 헐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 그 후 일제는 1932년 남산 자락에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위한 사당인 박문사(博文寺)를 건립할 때 정문으로 사용하였다. 해방후 박문사는 폐사되고 흥화문은 영빈관(迎賓館) 및 신라 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 경희궁흥화문 (慶熙宮 興化門) 1988년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 계획의 일환으로 흥화문을 지금의 자리로 이전(移轉) 복원하였다. 그러나 원 자리는 동향을 보고 배치했다고 하나, 그 위치는 현재 찾기 힘들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의 다포 양식 건물로, 정전인 숭정전, 황학정과 더불어 건축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호 출처: 문화재청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종사가 지금에 와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내가 어찌 감히 살아 있는 인간으로 자처하겠는가 -이중언의 가장(家狀) 중에서- ▲ 이중언 독립투사 *이중언(1850-1910) 선생은 누구인가? 1879년(고종 16) 문과에 급제한 뒤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성균관전적사간원정언을 역임하고, 1880년 사헌부지평 등을 지냈다. 1882년 정국이 혼란하자 봉화의 임당산(林塘山)에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1895년 8월 일제에 의하여 명성황후시해가 자행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김도현(金道鉉)이 안동영양 등지를 중심으로 창의하자 이에 가담하여 전방장으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을사오적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상소하였으나 간신배들에 의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의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집 밖에 좁다란 방 한칸을 마련하고 외부와 접촉을 끊고 때때로 을사조약 체결 때 상소하였던 글을 읽으면
[그린경제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제군이여! 제군의 행하는 바는 인도(人道)니라 고독하나마 넘어질까 염려 말고 뛰어라 제군의 뛰는 곳에는 이천만 민족의 후원이 있다 제군이 표방하는 바는 정의니라 처량하나마 부르짖어라 반드시 16억 인류의 화답이 있으리라 -학우회주최순회강연변사제군 중에서 1920.7.17- ▲ 독립투사 이준태 어록 *이준태(1892~?) 선생은 누구인가?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安東). 이명은 권혁(權赫) 또는 권철(權哲). 호는 일봉(一峰).1919년 8월(음력) 고향 사람인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북 교통부장 안상길(安相吉), 『만주일보』 신문기자 김재봉(金在鳳)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운동에 가담하였다.1922년 1월 김한(金翰), 신백우(申伯雨) 등과 서울에서 사회주의사상단체인 무산자동지회 발기에 참가하였다. 같은 해 3월 무산자동지회와 신인동맹회가 합동하여 만든 무산자동맹회의 상무위원이 되었고, 기관지 『무산자(無
[그린경제=정석현 기자]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무엇일까? 허튼가락의 창시자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풍류』공연 속에서 함께 답을 찾아보자. 15세의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해 20세에 완벽한 피아니즘을 획득한 그는 서양클래식, 재즈, 국악, 대중음악 등 세상의 모든 음악을 자유롭게 유희하는 천상 예술가이다. 삶과 사랑,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바람처럼 흘러가는 풍류라는 깨달음을 관객과 함께 나눈다. 특별히 이번 공연에는 대금명인 이생강 선생과 판소리 명인 전인삼, K-classic의 기대주 송도영 그리고 임동창 선생의 제자들로 꾸려진 흥야라 밴드의 소리와 연주가 더해져 그야말로 풍류한마당이 펼쳐질 예정이다. 본 공연은 9월 26일(목) 오후 7시 30분에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R석 2만원, A석 15,000원에 만나볼 수 있다.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경상남도 사천시 향촌동에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암각 비문. 1417년(태종 17년) 2월 15일과 1418년(태종 18년) 2월 15일에 수륙제(水陸齋)와 무차대회(無遮大會)를 베풀고 그 참여자의 명단을 적은 것이다. 매향(埋香)은 향을 땅에 묻어 미륵보살을 공양하고 도솔천의 미륵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종교의식이며 행사의 연유, 시기, 장소 관련된 사람 등을 기록한 비문이 매향 비이다. 이러한 비는 15세기 왜구의 침략이 잦았던 해안지역에 주로 세워져 불안한 민심을 달래는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참가자는 대시주(大施主)로 전자솔(前刺率) 김수산(金壽山) 김락풍(金落風), 진산군(晋山郡) 부인강씨(夫人姜氏), 양연(良燕) 만호(万戶) 윤첨(尹瞻), 전사직(前司直) 김존상(金存尙), 위화부(位和府) 양욱(良旭), 전사의(前司議) 정길상(鄭吉祥), 전부사정(前副司正) 임경(任慶) 김원(金元), 전사정(前司正) 정지(鄭芝) 김무(金戊)를 비롯하여, 윤낙동(尹洛東) 이귀(李貴) 박봉(朴逢) 신선(信仙) 각자(覺玆) 박만(朴万) 신성(信成) 신담(信淡) 진재(陳在) 해심(海心) 혜근(惠根) 지의(志宜) 해지(海志) 엄전(奄全) 혜홍(惠
[그린경제=정석현 기자] 길을 가다보면 횡단보도란 팻말이 보입니다. 횡단보도(橫斷步道)는 사람이 가로로 건너다닐 수 있도록 안전표지나 도로 표지를 설치하여 차도 위에 마련한 길을 말합니다. 이것은 오우단호도(おうだん‐ほどう)의 일본말이기도 하지요. 그런 말보다는우리 토박이말인 건늠길 또는 건넘길 로 하면 어떨까요?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인왕산 기슭에 위치한 국사당은 무속신앙에서 섬기는 여러 신을 모신 당집으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세운 굿당에 속한다. 원래 남산 꼭대기에 있었던 것을 일본인들이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이전을 강요하자 건물을 해제하여 현재의 인왕산 기슭에 옮겨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인왕산을 택한 이유는 이곳이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에 속하고 현재 무속신으로 모셔지는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이고 양끝의 2칸은 이곳으로 이전한 후 새로 지은 것이다. 1칸은 4쪽의 여닫이문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내부의 3면에는 무신도가 걸려있고 마루에는 제상을 차리고 굿을 하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 건물보다 구조는 간단한 편이나 그 규모는 더 크다. 1925년 무렵에 새로 지은 국사당은 영정조때의 건축기법을 바탕으로 한 원래의 국사당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내부 대들보가 아치형으로 된 것이 특이한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목재 짜임새가 튼튼한 것이 목공 솜씨가 돋보인다. 인왕산 국사당은 다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전라남도 나주 운흥사에 있는 석장승의 새김이다. 운흥사 석장승은 장대하고 오래된 석장승의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로서, 숙종 45년(1719년)에 제작되었다. 장승 전면에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새겨져 있어 마주보고 있는 남성형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짝을 이루어 여성형을 이루고 있다. 제작 사업의 화주(化主)가 승려인 변학(卞學)이라 기록함에서 사원에서 주도적으로 일반인들의 신앙인 장승 신앙을 수용하여 제작하였음을 알게 하는 자료이다. ▲ 운흥사석장생(雲興寺石長栍)) * 1719년(숙종45년) *중요민속자료: 제 12호 *크기: 높이 270cm, 너비 60cm, 두께 23cm *서체: 해서체 *출토지,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암정리 954번지 출처: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사람이 세상에 나서 이미 바른 길을 찾아 오다가 중도변절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행할 수 없다 -김원식이 아들 김성로에세 보낸 편지 중에서- ▲ 김원식 선생 어록 ▲ 안동독립운동가 어록 전시장 *김원식 (1888~?) 선생은 누구인가? 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9년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였다. 1921년 서로군정서 독판(督辦) 이상룡(李相龍)의 지시로 비밀리에 입국하여 전국 유지들과 연락,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1922년 서로군정서를 비롯하여 대한독립단벽창의용대(碧昌義勇隊)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평북독판부(平北督辦府)보합단(普合團)광한단(光韓團) 등 각 군단 대표들이 모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로 통합하는데 협력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동북면군사연락위원으로 임명되어 북경에 상주하면서 60여 명의 학생들을 난징(南京) 등지로 유학시켰다.1924년 이후 정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