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정석현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 이하 문체부)는 최근의 음원 사재기 논란과 관련하여 2013년 8월 8일, 음원 사재기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음원 사재기란 음악차트 순위 조작 또는 저작권사용료 수입을 목적으로 저작권자 또는 저작인접권자가 해당 음원을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전문 업체 및 기타 관련자로 하여금 해당 음원을 부당하게 구입하도록 하는 행위다. 음원 사재기는, 소비자에게는 왜곡된 정보를, 서비스사업자에게는 영업이익의 감소를, 음원 사재기를 하지 않은 다른 저작(인접)권자에게는 사재기가 아니었으면 누렸을 저작권료 수입의 감소와 방송출연 기회의 박탈을 가져올 수 있어, 음악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행위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음원 사재기는 온라인 음원시장 초창기부터 있어왔으나, 최근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부활, 저작권사용료라는 경제적 수익과 맞물려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온차트 비롯한 주요 음악차트를 다운로드 중심의 차트로 개선 문체부는 음원 사재기를 통한 음악차트 순위조작의 유인을 제거하고 부당한 저작권사용료 수익 기회를 박탈하기로 하고, 다음과 같이 음원 사재기 근절 대책을 발표하였다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신륵사에 있는 대장각(大藏閣) 창건과 운영에 대한 사실을 기록한 비. 이숭인(李崇仁)이 짓고 권주(權鑄)가 써서 1383년(우왕 9)에 세웠다. 높이 1.33m이며 보물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귀부와 이수 대신 장방형 대석과 가첨석으로 바뀐 형태이고 비신의 보전을 위하여 비신의 양쪽을 돌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다. 비신은 왼쪽 아랫부분이 크게 파손되고 윗부분에도 파손 자국이 크게 나 있으나 남아 있는 부분의 글자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 신륵사대장각기비 신륵사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있던 대장각은 고려말의 유학자 이색(李穡)과 신륵사에 입적한 나옹(懶翁)의 문도들이 발원하여 경율론 삼장을 수장하던 건물로서 이 비는 대장각의 조성 유래를 기록한 것이다. 비문의 내용은 이색이 상총의 권유로 돌아간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장경을 판각보시하고자 하나 힘이 부족하여 나옹의 문도들과 함께 각지에서 사람들을 모아 대장경을 인쇄하고 책으로 꾸며 신륵사에 봉안한 사실을 기술하였다. 특히 이 대장경 불사는 매년 정월 5월, 9월에 경전을 읽는 모임을 유지해 나갈 것을 명시하였다. 또한 대장경 봉안과 함께 각각의
[그린경제= 정석현 기자]민족미술협인협회 서울지회(이하 서울민미협) 는 해마다 우리시대 리얼리즘전을 열어 민중의 아픔과 바람을 그림으로 담아왔다. 2010년 삶/쌈 100년 전을 시작으로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우리시대 리얼리즘전은 우리 민족의 가장 슬픈 자화상인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전시 주제로 개최한다. 일본군이 조선의 여인들을 끌고가 침략전쟁의 위안부로 삼은 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폭력이고, 한 인간의 삶을 철저하게 짓밟은 가장 악랄한 인권유린이었다. 서울민미협은 전시를 통해 할머니들의 아픔과 슬픔을 그림으로 담아 사죄와 배상을 넘어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는 데 밑거름이 되어 일본군의 추악한 위안부 죄악상을 낱낱이 폭로 고발하고 일본 군군주의의 부활을 막고 세계 평화를 낳는 평화예술인이 되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사)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나눔의집,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정신대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기간은 8월 8일(목)부터 8월18일(일) 까지 10일간 진행하며 8월 8일(목) 오후 4시를 기해서 개막행사를 진행하며 장소는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제 1전시실과 제2전시실 전체를 동시에 사용한다. 전시
[그린경제=정석현 기자] 똑같은 것을 놓고 한쪽엔 고인돌, 또 다른 곳에서는 지석묘'라고 쓰여 있다. 토박이말과 한자말 뭐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보아야할 안내판은 그것을 읽을 사람을 배려해야만 한다.
[그린경제= 정석현 기자] 일명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도 하는데, 성덕왕(聖德王)의 공덕을 기리고 중대왕실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려는 목적에서 경덕왕(景德王) 때 계획되었다가, 혜공왕(惠恭王) 7년(771)에 완성되었다. 원래는 경주 봉덕사(奉德寺)에 있었는데, 봉덕사가 수몰된 뒤 세조 6년(1460) 영묘사(靈廟寺)로 옮겼으며,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하다가, 1915년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겼다. 그 뒤 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됨에 따라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찬자(撰者)는 조산대부(朝散大夫) 겸(兼) 태자조의랑(太子朝議郞) 한림랑(翰林郞) 김필오(金弼奧)이며, 서(序)는 한림대서생(翰林臺書生) 대나마(大奈麻) 김부환(金符皖)이, 그리고 명(銘)은 대조(待詔) 대나마(大奈麻) 요단(姚湍)이 썼다. 새긴 사람은 미상이다. ▲ 성덕대왕신종 명문 부분 현존 최대의 동종으로 제작연대, 각부양식, 음질 등 모든 면에서 신라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국보 제29호이며, 높이는 333cm, 구경(口徑)은 227cm이다. 630자로 된 서문과 200자의 명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문(序文)은 해서체, 명문(銘文)은 행서체이다. 이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서문안 마을에서는 서외리(西外里)의 안녕과 질병을 막아주는 수호신(守護神)으로 '철륭'이라 부르는 석조신간(石鳥神竿) 1쌍과 석장승부부(石長生夫婦) 1쌍을 당산신(堂山神)이라 하여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 또는 보름에 '지왕 모시는 사람'을 선정하여 돼지머리, 백설기, 삼색실과를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려왔다.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영매( 靈媒 )로서 솟대신앙 형태가 광범위하게 분포된 이곳 석조신간에는 조선 숙종(肅宗) 15년(1689년)에 건립했다는 명문(銘文)이 있으며, 형태는 반석(盤石) 위에 석간(石竿)이 있고, 그 위에 오리를 조각해 올려놓았다. ▲ 마을 수호신 석조신간(石鳥神竿) 솟대와 함께 동제(洞祭) 복합문화(複合文化)로서 공존하고 있는 수호신인 장승(長生)은 '할아버지' 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할머니' 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으로 이루어져 있고 얼굴은 한국 농어민의 한(恨)과 체념(諦念)을 조용한 인내로 이겨낸 우리 조상의 성스러운 모습이다. 연대 : 1689년(숙종15년) 문화재지정: 중요민속자료 - 제 18ㅡ1, 18ㅡ2호 크기:높이 220cm, 너비 210cm 소재지: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전북 남원군 운봉면 화수리에 세워진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이다. 황산대첩(荒山大捷)은 1380년(우왕 6년) 9월 이성계가 전라도 지리산 근방 황산에서 왜구를 격퇴시킨 싸움이다. 이보다 앞서 1376년 홍산싸움에서 최영에게 대패한 왜군이 78년 5월 지리산 방면으로 다시 침입하였고, 80년 8월에는 진포에 50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침입, 충청전라경상 3도의 연안지방을 약탈살육하여 그 참상이 극도에 달하였다. 이때, 원수 나세최무선 등이 화통, 화포로써 왜선을 격파, 전부 불태워버리자 퇴로를 잃은 왜적은 더욱 발악을 하여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이성계를 양광전라경상도순찰사로 임명, 이 지방의 방위책임을 맡게 하였다. ▲ 황산대첩비 적은 함양 운봉 등의 험지를 택하여 동서로 횡행하므로, 이성계는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남원에서 배극렴 등과 합류, 각 부서를 정비한 다음 운봉을 넘어 황산 북서쪽에 이르렀을 때 적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때 적은 산을 의지하여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성계는 고전에 빠졌으나, 이를 무릅쓰고 부하 장병을 격려하여 적을 대파하였다. 최영의 홍산대첩과 더불어 왜구 격파에서
[그린경제=정석현 기자]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조선 후기 사회에서 나타났던 새로운 사상으로 당시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성리학의 관념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경세치용과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학문 태도를 강조했던 실학! 하지만, 우리는 그 실학에 대해 얼마나 알까? 다산연구소에서는 경기문화재단과 실학박물관의 도움으로 매년 여름 실학기행을 시행하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도 실학을 새롭게 확인해볼 수 있는 실학기행 2013을 오는 8월 22일부터 8월 24일까지 2박 3일로 간다. 기행지는 남양주 다산유적지(다산생가, 실학박물관), 수원 화성, 안산 성호기념관, 부안 반계유적지, 흑산도 손암유적지, 강진 다산 유적지, 해남 고산유적지(녹우당) 등이다. 참가대상자는 50명으로 교육문화계 종사자로 실학정신 현양에 활약이 기대되는 분을 초청하고, 초중등 교사들을 대상으로 공모도 한다. 참가신청은 신청서를 내려받아 전자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 신청하러 가기 ☞ 문의 ☎ 02) 545-1692 (근무시간대에 전화)
[그린경제= 정석현 기자]정혜공주(貞惠公主)는 발해 제3대 문왕(文王)의 둘째 딸로서 737년(문왕 1)에 태어나 777년(문왕 41)에 4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정혜공주의 무덤은 중국 길림성(吉林省) 돈화시(敦化市) 강동향(江東鄕) 승리촌(勝利村) 육정산(六頂山) 고분군에 있다. 1949년 연변대학교에서 1차로 발굴하고, 1959년에 재차 발굴 조사하였다. 무덤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돌방흙무덤[석실봉토분]으로 묘지석은 널길 안에서 7조각으로 깨진 채로 발견되었다. 위가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진 규(圭:옥으로 만든 홀) 모양이며 크기는 높이 90cm, 너비 49cm, 두께 29cm이다. 앞면에 해서체(楷書體)로 음각하였다. 묘지에 글자를 21행으로 새겼는데, 전문 725자 가운데 491자만 명확하게 판독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정효공주묘지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비문의 내용은 정효공주묘지를 통하여 완전히 복원할 수 있다. 묘지석은 현재 중국 길림성 장춘시(長春市) 길림성박물관(吉林省博物館)에서 보관하고 있다. ▲ 발해 정혜공주 묘지석 그 내용은 정혜공주의 출신, 공주의 지혜로움과 아름다움을 칭송한 것, 출가, 남편과 아들을 잃고 수절한 사실, 장례,
[그린경제= 정석현 기자] 이 조상기(造像記)는 혜공왕(惠恭王) 2년(766)에 조성되었다. 본 자료는 경남 산청군(山淸郡) 삼장면(三壯面) 내원리(內源里) 산등성이의 암자터에 있던 석조비로자나불상(石造毘盧遮那佛像)의 대좌(臺座)에 안치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1947년 무렵 원 절터에는 석조 연화대좌(蓮花臺座)만 남고 불상은 절터에서 반출되어 625후 산 서남쪽 계곡에 있는 내원사(內院寺)에 이안(移安)되었다. 그 불상의 대좌 속에서 625 직후 주민들에 의해 사리호(舍利壺)가 발견되었고 이는 여러 경로를 거쳐 부산시립박물관에 수장되었다. 본 자료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을 만든 조상기(造像記)인데, 불상에 사리를 모시기 위해 대좌 속에 본 자료를 새긴 납석제 사리호(舍利壺)를 봉안하고 다시 그 안에 청동제 사리용기(舍利容器)를 넣어 사리장치를 이루었다. 사리호의 크기는 높이 14.5cm 입지름 9.0cm 몸지름 12.3cm인데, 호의 몸통을 돌아가며 15행에 걸쳐 모두 136자의 행서체 명문(銘文)을 새기고 호의 저면(底面)에도 4행 21자의 명문을 새겼다. 자료의 찬자와 서자는 미상이다. 본 조상기는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을 조성한 사실과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