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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쓴맛이 사는 맛이라 합니다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9]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이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채현국 선생의 이력입니다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1961년 한국방송 피디로 입사했으나

권력의 나팔수로 살기 싫다며 입사 3개월 만에 PD를 때려치웠습니다.

 

그리곤 부친이 운영하던 강원도 삼척 도계로 들어가서

흥국탄광을 운영하며 광산업자로서 성공했으나

유신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스스로 재산을 정리하여

주변에 나눠주고 말았다고 합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며 도피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셋방살이하는 해직 기자들에게는 집을 사 주기도 했던 파격의 행동!

1988년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서는 무급으로 일을 했습니다.

사업을 접으실 때는 일반적인 퇴직금의 3배를 주었으며

나눠준 게 아니라 돌려준 거라고 하였다네요

 

10월 유신 이후 이대로 가다간 또 권력과 얽혀

앞잡이가 될 상황이 올까 우려했고,

개인적으론 돈 버는 맛에 중독되어가는 자신을 경계하며

사업을 정리하고 자유인으로 살다가 가셨습니다

 

오래전 인사동에서 돌아가신 시인 강민 선생님과 걸어가시던

선생을 처음 뵙고 인사를 드렸지만 그땐 선생을 잘 몰랐습니다.

 

2021년 4월 2일, 노환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향년 86세. 장지는 충북 음성군 한마음선원에 마련하였지요.

 

 

 

                            채현국

 

 

 

 

가는 사람이 있어야 새 사람이 오는 법이지만

오고 가는 길은 이렇듯 이어지고 이어집니다.

 

누구는 거리의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누구는 풍운아 채현국 선생이라 불렀습니다

 

세대 갈등이 깊어 가지만 세간의 편견을 깨며

젊은 세대에서도 진짜 어른으로 존경을 받았고

건달 할배라는 낭만의 이름을 가졌던 지유인!

지난 4월 86세의 일기로 이승을 떠나갔습니다.

 

약자에 겸손하고 강자에 강직하셨던 건달 할배!

돈에 굴복하고 팔리면 자신을 잃어버린다 했고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며 추종하고 순종하면

자신은 없어지고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된다고 생각하셨다

 

발은 시려도 가슴은 뜨거웠던 거리의 철학자!

마주하고 손을 잡지 않아도 팔이 저려옵니다.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