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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시사 합작시 58. 보리밟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보리밟기

 

   어영차! 들뜬 땅을 밟아주세 (초)

   꼭꼭 밟아 다지고 또 다져야 (돌)

   보리가 보리심의 새싹 될까 (달)

   올 봄엔 힘찬 보리밭 볼까나 (심)

                      ... 25.1.18. 불한시사 합작시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린다.

싹은 이내 흙 위로 얼굴을 내밀지만, 그 삶은 곧 겨울을 건너야 한다. 엄동설한, 얼었다 녹기를 거듭하는 땅은 부풀고 갈라지며 뿌리를 느슨하게 만든다. 이때 보리를 살리는 일이 바로 ‘보리밟기’다. 차가운 흙 위를 발로 꼭꼭 눌러 주어야, 흔들리던 뿌리가 다시 땅을 움켜쥐고 봄을 맞이할 힘을 비축한다. 밟힘은 꺾임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다짐이다.

 

인고의 겨울을 견딘 보리싹은 한때 보릿고개를 넘기던 민중의 삶을 지탱한 푸른 생명이었다. 허기를 달래고, 하루를 이어 주던 그 풀잎에는 말없이 버텨 온 세월의 체온이 스며 있다. 어린 시절, 겨울 끝자락 들녘에는 눈을 밀치고 솟아오른 보리밭이 장관을 이루곤 했다. 아직 봄농사에 손이 덜 가는 때, 온 가족이 들로 나서 보리를 밟았다. 조부모의 느린 걸음, 부모의 굳은 발걸음,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발자국까지 겹치며 그 밭은 하나의 몸처럼 단단해졌다. 그 풍경은 노동이자 놀이였고, 삶을 이어 가는 조용한 의식이었다.

 

지금 이 나라도 어쩌면 그렇다. 겉으로는 커 보이지만 속은 들떠 있고, 말은 많되 뿌리는 헐거워진 듯하다. 진영과 구호가 부풀어 오를수록 땅과의 접점은 멀어지는 느낌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외침이 아니라, 발을 맞추어 땅을 다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춘삼월이 오기 전,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대동의 몸짓으로 이 땅을 밟아 주는 일. 누군가를 꺾기 위한 발길이 아니라 함께 뿌리내리기 위한 걸음으로서의 보리밟기. 봄이 오면, 대한민국도 다시 단단해질 수 있을까. 나는 조용히, 그러나 오래 거국적인 ‘보리밟기’의 계절을 기대해 본다.(초암)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행 44자로 정착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으로 싯구를 주고받던 옛선비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