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저승꽃 세월에 쫓겨 마지못해 피네 (초) 이승에서 피는 검은 저승꽃 (돌) 저승에 갖고 가나 놓고 가나 (빛) 꽃이라 하니 아름답긴 하네 (심) ... 25.1.16. 불한시사 합작시 세수하다가 문득 거울 속 얼굴을 마주하니, 몇 해 사이 검버섯이 부쩍 늘어 있음을 본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찌 당연하지 않으랴마는, 마음 한구석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피부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 얼굴 위에 찍은 표식이며, 남은 날들이 유한함을 조용히 일러주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이 검버섯을 ‘저승꽃’이라 불러왔다. 꽃이라 하나 봄의 화사함과는 거리가 멀고, 기쁨보다는 쓸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꽃이란 본디 피고 지는 존재,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 이승에서 피는 검은 저승꽃은, 삶의 끝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피어나는 시간의 꽃이라 할 만하다. 자연을 보아도 다르지 않다. 오래된 바위의 얼굴에도 검고 희미한 얼룩들이 피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돌꽃이라 부르며, 바위에 붙은 이끼나 지의류로 여긴다. 바위는 움직이지 않는 존재처럼 보이나, 그 위에도 세월은 어김없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보리밟기 어영차! 들뜬 땅을 밟아주세 (초) 꼭꼭 밟아 다지고 또 다져야 (돌) 보리가 보리심의 새싹 될까 (달) 올 봄엔 힘찬 보리밭 볼까나 (심) ... 25.1.18. 불한시사 합작시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린다. 싹은 이내 흙 위로 얼굴을 내밀지만, 그 삶은 곧 겨울을 건너야 한다. 엄동설한, 얼었다 녹기를 거듭하는 땅은 부풀고 갈라지며 뿌리를 느슨하게 만든다. 이때 보리를 살리는 일이 바로 ‘보리밟기’다. 차가운 흙 위를 발로 꼭꼭 눌러 주어야, 흔들리던 뿌리가 다시 땅을 움켜쥐고 봄을 맞이할 힘을 비축한다. 밟힘은 꺾임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다짐이다. 인고의 겨울을 견딘 보리싹은 한때 보릿고개를 넘기던 민중의 삶을 지탱한 푸른 생명이었다. 허기를 달래고, 하루를 이어 주던 그 풀잎에는 말없이 버텨 온 세월의 체온이 스며 있다. 어린 시절, 겨울 끝자락 들녘에는 눈을 밀치고 솟아오른 보리밭이 장관을 이루곤 했다. 아직 봄농사에 손이 덜 가는 때, 온 가족이 들로 나서 보리를 밟았다. 조부모의 느린 걸음, 부모의 굳은 발걸음,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발자국까지 겹치며 그 밭은 하나의 몸처럼 단단해졌다. 그 풍경은 노동이자 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광 야 (曠野) 백마 탄 초인은 언제 오는가 (돌) 분토된 땅 초인 올 자리 있나 (초) 초인이 와도 볼 눈이나 있나 (심) 눈 내리는 광야 텅빈 그곳에 (달) ... 25.1.16. 불한시사 합작시 이 시를 새해의 문턱에서 읽을 때, 자연스레 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넓은 대륙을 가르며 달리던 북방 민족의 말들, 눈 덮인 초원을 바람처럼 질주하던 생명의 리듬. 말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태도였다. 멈추지 않음, 주저하지 않음, 방향을 몸으로 아는 감각. 말 위에 올라탄 인간은 사유 이전에 결단을 배웠고, 말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광야를 광야로 견딜 수 있었다. 올해가 붉은 말의 해라는 사실은 상징적으로 깊다. 붉음은 생의 기운이며, 피와 열정, 저항의 색이다. 북방 기마 민족의 기상은 단순한 정복의 기억이 아니라, 광야에서 스스로 잃지 않기 위한 긴장과 절제의 역사였다. 그 기상에 대한 그리움은 과거 회귀가 아니라, 오늘의 삶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땅에 붙잡혀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이육사의 시 "광야"가 떠오른다. 이육사의 "광야"는 자연 풍경이 아니라 정신의 지형이다. 그 광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