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진의 영랑시인 생가 기다리기만 하면 모란 피나 (돌) 기다리지도 않으면 안 피나 (빛) 때 되면 피고 때 되면 지거늘 (초) 꽃이 피고 지던 저 세월 넘어 (달) ... 24.12.29. 불한시사 합작시 세모의 바람이 스산하던 날, 남도의 끝자락 강진에 이르러 우리 불한시사 다섯 벗들은 고요한 한옥 한 채 앞에 섰다. 그곳은 김영랑의 숨결이 아직도 머물러 있는 생가였다. 담장은 낮고, 뜰은 비어 있었으며, 모란은 아직 깊은 겨울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적막한 빈 뜰에는 이미 한 편의 시가 조용히 피어 있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오래된 시비는 마치 오랜 벗처럼 우리를 맞이하며, 보이지 않는 꽃의 시간을 가만히 들려주고 있었다. 겨울의 침묵 속에서도 꽃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기다림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영랑의 시는 기다림의 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기다림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절정이 다가오기를 향한 내면의 미묘한 떨림이며, 동시에 그 절정이 스쳐 지나갈 것을 미리 아는 상실의 시대 예감이기도 하다. 모란은 단지 한 송이 꽃이 아니다. 피기 전에는 설렘으로 가슴을 적시고, 피어나는 순간에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흥사(大興寺)가는 길 반세기 전 비바람 속 갔던 길 (돌) 일지암 바라며 옛 생각하네 (달) 차 한잔 속 담겨있던 깨달음 (초) 선차보다 초의 차맥 이었네 (심) ... 24.12.31.불한시사 합작시 이 시는 불한시사 시벗 다섯 사람이 남도 여행 중 해남 대흥사로 들어가는 숲길 한 주막에서 점심을 하며 함께 읊은 합작시이다. 오래전 비바람 속에 이 길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걷는 길 위에서 발구하고 각자가 한 구절씩 보탰다. 남도의 산길과 세월의 기억, 그리고 차향(茶香)이 겹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즉흥의 시편이다. 승구(둘째 줄)의 '일지암(一枝庵)'은 조선 후기의 선승이자 차인인 초의선사(草衣禪師)가 머물며 차를 달이고 사유를 펼치던 암자다. 대흥사 뒤편 산자락의 작은 암자지만 조선 차문화가 다시 살아난 중요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초의는 이곳에서 차의 이치를 정리한 글을 남기고, 다산(茶山)과 추사(秋史)는 물론 당대 한양의 여러 문인과 교유하며 차의 정신을 널리 전하였다. 특히 남도 차문화의 흐름을 말할 때 다산 정약용과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강진 유배 시절의 다산은 인근 절의 승려들과 교유하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무념무상(無念無想) 말 잊고 생각 없이 바라보네 (달) 염에 이르러 염을 다한 마음 (돌) 이제 아쉬움 다 없어졌느니 (빛) 지금 여기 이미 갖춰진 자리 (초) ... 25.2.10. 불한시사 합작시 옥광 시벗이 산책길에서 보내온 구절에서 합작시의 초구(初句)로 삼았다. 그의 “말을 잊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바라보네. 이것!”은 단순한 정경 묘사가 아니다. 그는 언어 이전, 사유 이전의 자리에서 세계를 마주한 체험을 건네주었다. ‘말을 잊는다’라는 것은 분별의 언어를 거두는 일이며,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라는 것은 개념의 그림자를 거두는 일이다. 그리하여 남는 것은 대상도 관념도 아닌,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드러나는 ‘이것’의 현전이다. 그가 말한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이것'은 멀리 있는 초월적 대상이 아니라, 각자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하는 생생한 현존이다. ‘이것’은 주관적 심상도 객관적 사물도 아니다. 마음과 사물이 나뉘기 이전, 곧 심물합일(心物合一)의 장에서 드러나는 일물(一物)이다.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한 “Es spricht(그것이 말한다)”의 ‘그것’ 또한 존재의 드러남을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