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월간 《시(詩)》 창간호(2014년 1월호)부터 민윤기 시인의 권유로 (허홍구 시인의 100인 100시)를 이어쓰기 시작하여 9년째 2022년 5월호에 마지막 100번째 글로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만 다 귀하고 귀한 것 가운데서도 사람이 그 으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귀한 인연으로 내가 만났던 사람들! 혹 만나지는 못했지만 본받고 싶었던 역사의 인물들! 그리고 이름 없는 풀꽃처럼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삶이 향기로운 사람들! 또 화제가 되었던 여러분들! 그 사람을 찾아 그분의 아름다운 무늬를 읽고 닮으려 했습니다. 일기장처럼 내 삶의 길라잡이처럼 맘에 담아두고자 했었지요 이 이름을 길라잡이로 어두운 길 밝혀 걷고자 했었고 그 이름을 닮고자 했던 내 맘에도 꽃무늬처럼 아름답게 새겨 두고자 했습니다. 오늘은 <북랜드>란 출판사 대표이며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을 지낸 수필가로 멋진 책을 만들고 있는 출판사 대표이며 또 후진 양성에 힘쓰는 장호병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장 호 병* 내가 알고 있는 많고 많은 문학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 함께한 멋쟁이 신사! 우린 나이를 떠나 서로를 존대하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파릇한 생명으로 오는 3월을 맞이합니다. 이달 9일은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 날이고, 이어 6월에는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가 있다고 합니다. 문득 50여 년 전부터 형제의 정을 나누고 있는 일흔이 넘은 아우가 생각납니다. 호적엔 없지만, 맘으로 믿고 사랑하는 아우입니다. 경북 군위군 시골 마을에서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자라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대구로 나와 혼자 자취하며 꿈을 키우던 아우입니다.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당시 은행 취업은 성공의 길이라 믿었지만 이를 포기하고 영남대 정외과를 진학하여 일찍부터 국회의원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가 대학 졸업 뒤에는 매일신문 기사 생활을 끝내고 30대의 나이에 특정 정당의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지역에서 정의감에 불타는 젊음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국회의원에 도전했었지만 내리 3번이나 낙선의 쓴맛을 본 아우입니다. 기득권의 정당과 세력에 맞서 젊음이 내세운 새 정치의 깃발은 끼어들기조차 어려운 도전이었는데 그 꿈은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지요. 그래도 더 많은 청년이 참여하고 도전하는 그 날을 기대한다면서 멋진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수만의 이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누가 제주도를 이야기하면 성산포의 채바다 시인을 생각한다. 1996년에 <하멜기념사업회>를 만들어 25년째 활동 중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멜이 표착한 터에는 <난파 희생자 위령탑>을 세우고 해마다 여러 행사를 해 오고 있다 96년, 97년, 2001년에는 제주에서 뗏목 배를 타고 목숨을 건 항해로 대한해협을 3번이나 건넌 바다의 사나이 해양탐험가다. 채길웅 이란 자신의 이름을 채바다로 바꾸고 제주-강진, 고대 뱃길, 왕인 박사 뱃길, 삼별초 뱃길로 탐험을 이어갔다. 1653년 하멜 일행 64명을 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무역선이 일본 나가사키로 가다가 풍랑으로 제주에 표착했을 때 하멜은 그때 나이가 23살이었으며 선원 중에는 15살 전후의 10대도 있었다. 그래서 채바다 시인은 젊은이들의 도전을 기대하며 해양대국을 꿈꾸도록 독려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고, 해양의 역사를 알리고, 왜곡된 일본 역사문화를 일깨워준 공로로 대통령 표창과 해양수산부 장관상인 <장보고상>도 받았다 값어치 있는 일에 흥미를 갖고 일을 한다면 늙음을 치료하는 최고의 처방이라 믿는다는 78살 채바